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7080-7 : 이념서적에 혼을 뺏기다

張萬玉 2006. 4. 7. 23:16

해가 바뀌고 기숙사 생활은 실습주택 생활로 바뀌었다.

Cottage라고 불리던 방 세 개짜리 빌라형 주택에 아홉 명이 입주하여 밥 해먹으며(그것도 주어진 재료와 식단에 의거해서 제대로..) 학교에 다니는 생활이었는데, 마음을 두었으면 그것도 퍽 깨가 쏟아지는 나날이었겠지만 몸만 학교에 두고 마음은 야학으로, 세미나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놓고(평소에도 안 하긴 마찬가지였지만... '레포트 찜쪄먹기'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소위 '대학생 권장도서목록'(당시 운동권 서클에서는 신입생들의 '시각교정'을 위해 커리큘럼 비슷한 것을 짜놓고 있었다. 비밀리에 전수되던 이 '목록'의 절반 이상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불온서적'이었는데 학생운동이 대중화되어가면서 서적으로 출판될 정도로 '당대 지성'의 좌표 구실을 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 검색어를 쳐보니 이것을 소개하는 사이트들이 주르르 뜨더라. 세상 참 좋아졌다) 뿐 아니라 꽤 전문적인 경제학, 철학의 경지까지 답사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은 제목밖에 생각 안 나는 <서양경제사론>, <서양철학사>는 노트정리까지 해가며 정독을 했고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 등 출판이 금지되어 비밀리에 마스터 판으로 제작된 일어서적까지 읽겠다고 벼락치기 일어강좌를 들었다. 지금은 다시 읽으라고 해도 도저히 불가능할 자본주의 이행논쟁에 관한 돕과 스위지의 원서까지 들고 다녔으니....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완전히 전공서적 중에서도 학문적 논쟁과정에 있던 테마들인데 왜 그런 것까지 읽느라고 낑낑거렸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정하게는 다른 동료교사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과시욕이 작용했겠지만, 어쨌든 3학년 내내 깊이 빠졌던 사회과학공부(그래봐야 수박 겉핥기 수준이지만)는 단순히 지식의 차원을 넘어 20여 년간 함께했던 나의 세계관과 역사관, 인생관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은 게 사실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상당히 거창한데.... 사실 그때까지야 무슨 세계관이니 인생관이니, 이런 것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새로이 맞닥뜨린 사회과학적 시각(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념)이 기존에 定理처럼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근본적으로 위협하였기 때문에 고지식한 나로서는 그 도전을 회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종교가 그러하듯) 인식론과 세계관, 역사관, 그리고 실천적 테제까지 이어져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全一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정말 성령의 감화감동을 받은 것처럼 '학습'에 몰두했던 듯...

 

남들 모르게 사회주의 학습에 빠져들던 그 시기에 학생운동의 무풍지대였던 우리 학교에서도 작은 학내시위가 두 건 있었다. 2학년 초에 해프닝으로 끝났던 식사거부투쟁(아마 학내문제를 내걸었던 것 같다)과 3학년 초 전교생 채플 시간에 기습적으로 동일방직(권리투쟁을 하는 여공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운) 사건을 알리는 유인물을 뿌린 사건.....

 

그 시위를 준비하고 주도하다가 연행된 선배들은 모두 학내 사회과학 학습 서클의 멤버였는데, 학내조직과는 관계없이 혼자 공부만 하던 나로서는 조용하던 여자대학에 풍파를 일으킨 저 생소한 행동이 '도대체 무슨 내용이며 왜 저러는지'야 짐작은 했지만 '꼭 저래야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로 나의 '학습'과 '실천'간에는 간극이 있었으며, 특히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개념이(따라서 관심이) 거의 희박했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나의 이미지는 불순한 학생들과는 거리가 먼, 공부만 열심히 하는(무슨 공부인지 몰랐겠지) 범생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껍데기만 다녔던 첫학기의 불성실함은 뜻밖의(사실은 예정되었던) 결과로 내게 되돌아왔다.

 

4년 장학생이라고는 했지만 전제가 있었다. 한 과목이라도 B학점 이하를 받으면 장학금 수혜조건에서 탈락하게 된다. 레포트도 강의도 슬슬 빼먹고 시험날이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탈락 안 하는 게 이상하지....이 일을 어쩐다? 큰오빠에게 부탁해서 대출을 좀 해달랄까?

 

그러나 정말 '쥐약을 먹었는지' 이 사태는 내게 반성은 커녕 걱정도 일으키지 않았고 한편으로 '잘 됐군,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싶은 후련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이 시점에서 잠시 내려보고 싶었다. 어쩌면 쉽게 들어간 학교,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에 도사린 얕보는 마음을 떨쳐내지 못한 탓에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하등의 고민도 없었던 건지도.....

가족들이 걱정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그만큼 내 문제에 몰두해 있었나보다.

 

 

어쨌든 한 학기 등록금은 벌어둬야겠기에 신문광고를 뒤져 찾아간 곳이 연립주택 분양사무실.... (이 직장 얘기는 '그 시절에' 카테고리 중 晝讀夜耕 4 - 이런저런 雜의 세계 http://blog.daum.net/corrymagic/1758612 에 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으로 출근... 시간을 쪼개 세미나 준비...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존재 이전'(뒷날... 학생운동 층이 두터워지고 조직화되면서 사회변혁의 근간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학생 신분을 버리고 공장 노동자가 되려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맥락에서 사용되던 용어)을 준비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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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점점 딱딱해지는 것 같아 민망하군요.

지루하면 넘어가주시길... 저 스스로도 대강이나마 정리해볼 겸 쓰는 거니까...

그래도 가능하면 드라마 줄거리 위주로 쓰도록 노력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