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10 : 구로동 연가 2
시대상황을 설명하느라고 앞글이 무미건조해졌는데, 이번 포스트는 최대한 달콤새콤하게......^^
아껴뒀던 두 장의 그림을 보여드릴까 한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 첫키스의 추억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고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다지만 이런 글제목을 달아놓고 망설여지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사생활인데...ㅎㅎ
허나 누구에게나 이 추억은 (좋았든 나빴든, 상대가 누구였든.... 이 '첫'이라는 단어의 소중함 때문에) 혼자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까운 보물단지....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이 푼수아줌마는 별렀던 푼수짓을 감히 한번 해볼까 한다. (켕기면 얼른 내리지 뭐... 누가 좀 말려줘유!)
켕긴다구?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키스가 흔해진 요즘 같지 않게(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술자리에서 게임까지 한다며?) 우리 때만 해도 결혼 전에 키스를 한다는 건 양갓집 규수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었다 해도 쉽게 발설하면 안 되는 일급비밀에 속했다. 그러니 유교적 관념의 뿌리가 깊이 남아 있는 우리 세대로서는 아직도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 상대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얘기가 '고백'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 그것이 영 껄쩍지근한 것이다.
그러나 '첫키스의 추억'이야말로 나의 순정이 꽃피워낸 청춘만화 최고의 장면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나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장면 그대로 액자에 넣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님, 기분나빠하실 필요 없어요. 이건 그냥 내 애장품일 뿐이니까....)
사설이 길어졌다. 사실 장면은 순간일 뿐인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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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MT에서 돌아오던 날, 나는 바로 직장으로 직행해야 했다. 다음주일에 쓸 주보를 인쇄소에 맡겨야 했기 때문에.... 허나 한달 이상 떨어져 있으면서, 그것도 서로의 부재중에 확인한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연인들은 헤어질 수가 없었다. 여럿 속에서 떨어져나와 비로소 둘이 된 우리는 손을 꼭 잡은 채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갔다가 을지로로 갔다가.... 그 애가 숨어지내기로 했다는 신림동 자취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미 땅거미가 깔린 저녁....서울대 사거리에서 서울대 쪽으로 올라가는 어두컴컴한 숲길.
그애가 갑자기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뽀뽀 한번 하게 해달라고 했다.
당황해서 (당연히 '안 돼!' 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머뭇거리는데, "그냥 이마에 살짝만...' 하는 말과 함께 대답도 기다릴 새 없이 뜨거운 입술이 이마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바로 입술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별이 보였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달까, 어디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달까.... 내 인생의 전무후무한 느낌이라고 할 만한...('처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는 너무 부끄러워 얼굴도 똑바로 못 들고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서둘렀다. 서툴렀던 그애도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주고.....
뽀뽀를 하고 나면 연애의 국면이 확 달라진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는 불꽃이 튀었다. 일 때문에 만나 일 얘기를 하는 중에도 뽀뽀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 눈이 많은 곳에 있으면 어디 좀 으슥한 장소가 없을까 안달이 났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달콤한 맛을 알아가지고 낮이나 밤이나 내 눈 앞엔 그애 입술만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도때도 안 가리고 뽀뽀를 해대는 젊은애들의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화학작용이 뭐 아무하고나, 아무때나 일어나주는 게 아니잖아....^^)
# 홍천강변의 추억
여름휴가철이었다. 직장도 야학도 쉬는 2박3일을 이용해서 어디로 놀러가자고 했다. 허나 걔도 나처럼 순진했는지.... 나와 둘만 지내게 될 밤을 우려하여 친구를 하나 꼬여 데리고 나왔다.
그때는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 내가 제일 멀리 가봤던 청평에서 버스를 내려 배로 갈아타고 한참을 가니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강변이 나왔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한 강물과 흰 모래밭, 뒷쪽을 둘러친 소나무 병풍, 파란 하늘에 꿈같이 흘러가던 구름...
함께 온 친구는 노래패에서 활동하던 애답게 기타를 챙겨가지고 왔다. '시인의 마을'을 기똥차게 부르는 애였다. 수영하다 지치면 노래하고 또 수영하다가 배고프면 밥해먹고....
그러고 나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별이 나왔다.
드디어 친구가 담배를 사러 간 틈에 애타게 기다리던 뽀뽀시간이 돌아왔는데...
헉, 이건 평소에 하던 뽀뽀와는 확연히 다르다. 숨도 못 쉬게 사납다. 자기 기운에 못이겨 날 결국 모래밭에 '자빠뜨리'더니 모래밭을 마구 뒹군다. 하늘도 돌고 별도 돌고.....
한참을 그러다 일어나 앉으며 한다는 말이...."휴, 이제 좀 낫다..."
뭐가 낫다는 건지 난 그때 전혀 몰랐지. 당시 그 애가 보여준 자제력이 상당히 탁월했다는 건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돌아온 친구, 웬지 수상쩍은 분위기를 느꼈던지....낮에 셋이 어울려 놀면서도 둘 사이에 비밀스레 오고가는 눈빛이 영 거북했던지....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 잊을 뻔 했다고 내일 첫차로 돌아간단다. 당황한 우리는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친구는 단호하게 짐을 꾸렸고 풀이 죽은 우리도 같이 짐을 싸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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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와 나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끼어들 틈 없이 순전하게 서로에게만 몰두하던 시절의 그림은 불행하게도 여기까지다.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 상봉버스터미널에 갔다가 우연히 '모곡'이라는 지명에 눈길이 닿았다.
모곡... 모곡?
굉장히 익숙한 이름인데... 저게 어디더라?
세상에.... 기억력 하나는 탁월한 내가, 잊을 수 없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이름을 그렇게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나이아가라였다. 배를 갈아탔던 정류장 이름이.....우리는 홍천강을 따라 모곡에 갔던 것이다.
그렇게도 잊혀지기도 하는구나. 결코 지워질 것 같지 않던 가슴의 멍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그래, 그렇게 잊으니까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