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7080-18 : 간이역

張萬玉 2006. 4. 28. 09:13

두 달 이상 앉은뱅이 신세로 지내야 하니 암만해도 일단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정말 이 양반과 결혼을 할작시면 먼저 우리 가족과의 관계부터 풀어둬야 할 것 같고, 노동운동 1, 2년 하다 말 것도 아니라면 이 기회를 잠시 숨 고르며 그간의 경험을 정리해보는 것도 필요하겠지.

 

하루 휴가를 내어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그때 부모님만 남게 된 우리 집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온양으로 이사를 갔다) 열정씨를 보는 엄마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아직 어린애로만 여겨지는 딸네미를 꼬드겨 가출하게 만든 자가 바로 자네였군... 싶으셨을 것이다. 마음 약하신 분이라 내놓고 푸대접은 못했지만 아마 성질 다 부리는 분이었다면 뜨거운 물이라도 한바가지 끼얹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열정씨가 돌아간 후 '저 사람하고 결혼할 거야' 하니까 부모님의 얼굴에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과, '에구, 너 사고쳤구나... 이 딱한 것을 어쩌면 좋아' 하는 난감한 표정이 교차했다(엄마, 맹세코 저 사고 안 쳤거든요. 사고 쳤다고 생각없는 결혼에 목매는 바보도 아니구요...ㅜ.ㅜ).

나이도 많고 가진 것도 없고 홀시어머니에 아래로 시누이가 줄줄이고....

그러나 결정적인 반대 이유는 '뭐하는 사람인지 모른다'(공장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집에서는 그걸 직업으로 생각하질 않았다)와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울 엄니, 다른 편견은 별로 없으신 분이 이상하게도 키 작은 남자는 남자로 보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ㅎㅎ)

 

내게는 남들이 흔히 따지는 결혼조건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이 분명한 내 손을 잡아일으켜주고 곁에서 변치않는 걸음걸이로 함께 걸어줄 사람이면 고맙지... 하는 심정이었다. 그동안 내 곁에서 보여준 그 성실한 모습은 그런 조건에 넘칠 정도로 충분했고...

사실 결혼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려본 것이 없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치도 별로 없어서 결정이 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결혼에 대해 이렇게 초연(?)한 마음을 갖게 된 걸 보면 나도 거친 세월을 겪으며 그만큼 성숙해진 건지도.... ㅎㅎ

 

그래도 약간은 섭섭하게 비어 있는 '연애감정'에 대한 사치가 발동할까봐 그가 돌아간 후 일주일만에 편지를 썼다. '그날의 약속은 내가 훗날 어떤 변덕을 부릴지라도 절대로 유효하다. 나 장만옥은 당신 최열정과 꼭 결혼한다. 어머니 탈상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올리자. 하루라도 빨리 당신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 

공증만 안 했지 결혼서약서나 마찬가지인 이 편지를 받고 기뻤던 열정씨, 휴가를 내어 당장 온양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미심쩍고 미운 이 노총각을 위해 그래도 엄마는 씨암탉을 잡더라. ^^

  

그렇게 석 달이 지나고, 아직도 팔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지탱하느라 목발을 짚은 상태였지만 만옥이는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쇠심줄 같은 고집을 막을 방법이 없던 엄마는 눈물만 흘리고... 그래도 무단가출의 전적이 있었던지라 그때처럼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셨다. 부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만 되풀이하셨지.

 

그 사이 최열정씨는 광명시에 신혼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다시 구로공단의 B사에 미싱사로 취직을 했다. (이 시절이 궁금하신 분은 카테고리 '그 시절에'의 '내사랑 광명시 음악밸리로 다시 태어나라  http://blog.daum.net/corrymagic/3810973를 보시길).  

우리의 결혼식은 예상대로 우리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다니고 있는 현장에 알릴 수는 없어도 불러도 문제가 없는 지인들이라도 불러 조촐하게나마 잔치를 하려고 남산자락에 있는 '한국의 집'을 예약할 생각이었는데 신부측 자리가 텅텅 빌 것을 생각한 자상한 최열정씨, 그냥 우리 식으로 가자고 했다. (요 얘긴 '즐거운 언약식' http://blog.daum.net/corrymagic/1487739 을 보시라) 

 

보너스 트랙... ^^

 

 

얼마 전 아침마당에 60 가까운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그시절의 신혼여행' 얘길하시는데, 그분의 신혼여행지는 창경원이었단다. 그것도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분들 50여분을 모시고 가는...

결혼식을 마치고 신부가 직접 팔걷어부치고 밤새 김밥을 싸야 했던.... 그것도 모자라 대열에서 탈락한 친척들을 챙기느라 '신혼여행' 내내 신랑조차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요즘 애들이 들으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신혼여행.....

그분은, '지금 들으면 재밌을랑가 몰라도... 그런 '불행한' 신혼여행은 나로 마지막이었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게는 남들이 웃을지도 모를 저 초라한 결혼식이 너무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다시 하라고? 저 귀한 장면과 쇼쇼쇼와 바꾸라고? 절대 그렇겐 못하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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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옥이 인생의 3막1장이 올라가고...

다음회부터 격동의 80년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즐거운 연애 얘긴 더 이상 없으니 달콤새콤한 얘길 기다리셨던 분들은 이제 이 정거장에서 하차하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