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의 추억 -- 엄마생각
2002년 월드컵...
우리 국민들에게는 4강진출을 기뻐하는 환호의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내게는 사랑하는 엄마와의 이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해 들어왔지.
엄마는 의식이 없는 중에서도 계속 막내를 찾으셨다네.
아마 내가 올 때까지 힘겹게 버티며 기다려주셨던 건지
엄마는 꼭 하룻밤 나와 함께 지내시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감으셨지.
의사의 사망선고를 들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지.
잡고 있는 엄마의 손이 얼음장처럼 자꾸만 차가워지는 게 믿기지 않을 뿐...
병원 영안실로 엄마를 옮기고 나니 엄마의 부재가 점점 뼈속으로 스며들어 몸서리치게 하더군.
엄마, 난 여기 있는데... 날 두고 대체 엄만 어디로 간 거야...
그날 비가 무섭게 쏟아졌어.
아마 미국과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지.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이별을 하러 온 사람들도 월드컵이 궁금했던 모양이야.
식당 뒤쪽 어디선가 와~~~ 하며 함성이 터지더군.
내 가슴에선 눈물이 터져나왔지.
올해로 엄마 가신 지 4년.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때마다, 거리에 붉은 함성이 터져나올 때마다
아마 나는 엄마와의 이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9일 저녁(6월 10일에 돌아가셨으니 그 전날 저녁이다)
그동안 중국에 있다고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던 엄마 추도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할 양이었는데....
달력을 보니 그날이 공교롭게도 시아버님 기일 아닌가.
시아버님 기일은 음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두 날이 겹치는 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시'짜가 붙은 집안행사라고 해도 그저 참석만 하는 입장이라면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참석하는 엄마 제사라고 양해를 구하고 이번 한번 빠질 수도 있겠지만
외며느리가 되다 보니 내가 제삿상을 차려야 하는 입장...우리 집으로 딸네미(시누이) 가족들이 모일 것인데....엄마에게 양해를 구하는 수밖에....
이해심 많은 울엄마, 내 입장 충분히 알고 아마 그날밤 우리동네로 건너오셨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거긴 어떠신가요... 편안하신가요?
여기는 월드컵의 함성이 떠나갈 듯 천지를 뒤흔들고 있는데... 막내딸은 엄마가 몹시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