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내 아들넘의 중국인 친구 2

張萬玉 2004. 6. 25. 13:17
 

기차를 타고 하룻밤을 가서 시외버스로 다섯 시간을 더 간 다음 다시 마을버스격인 IVECO(승합차 이름)를 타고 두 시간 더 가는 두메산골... 거지는 대부분 하남성 출신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낙후된 하남성, 그 중에서도 제일 가난하다는 지역의 한 소읍을 찾아가는 아들놈 등짝을 바라보며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45일만에 아들넘이 시커멓게 타서 돌아왔다. 바이과(참외와 멜론의 중간 정도 되는 과일) 30여개와 수수 비슷한 낟알을 미어터지도록 담은 대형 手製 배낭(외지에서 온 노가다 팀들이 메고 다니는 것 같은)을 짊어지고...

 

울 아들이 도착하던 날 그 친구 집에서는 돼지(!)씩이나 잡아 동네잔치를 했더란다.

공안국에 다니는 형, TV방송국에 다니는 형 등등 외지로 떠나지 않은 덕분으로 젊은 나이에 동네 유지노릇을 하고 있는 형들이랑 어울려 밤늦게까지 떠들고.... 낮에는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실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손님대접 받고...

 

그곳에 다녀온 뒤에야 아들넘은 와의 관계를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찐한 45일의 합숙을 거치고 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지만 이상하게도 더 가까워진 것 같지가 않다는 얘기를 한다. 어릴 때부터 빈부차이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이 자랐기 때문에 그런 데서 오는 거리감은 아닐 텐데....

 

작년 여름 아들은 군에 입대를 했고 는 정주에 있는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본과에 진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점수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아들넘은 없지만 "숙모"를 찾아 진로상담을 하는 전화가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걸려왔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전화통에 대고 끊임없이 자기 얘기만 해대는 이녀석이 귀찮아져서 때론 쌀쌀맞게 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들넘이 돼지고기를 질리도록 얻어먹은 탓에 "애들은 애들끼리 놀아!" 하고 끊지도 못하던 중...

 

아들넘이 느꼈던 거리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힐 일이 내게로 넘어오고야 말았다.

 

이번 방학에 상해에 오고 싶은데 자기에게 일할 기회를 줄 수 있냐고 한다. 자기는 졸업하면 고향의 TV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으나 젊은놈이 시골에 묻혀 한심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며 대도시로 진출할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친구가 우리 회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직뿐이다.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거의 분명하다. 생산직도 좋다고 한다. 우리 회사 생산직은 화학재료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등짐을 지는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단다

 

남편은 본인이 원하면 기회를 주겠다고 하지만 나의 심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濤는 우리 아들 친구인가?

외지에서 오는 工人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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濤가 올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