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4. 7. 2. 14:36

사람을 처음 사귈 때는 일정한 거리를 인정한다.

호감이 가고 호기심이 생긴다 해도 자제할 줄 안다.

그와 내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나의 생각이 다른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해도

그것을 입밖에 내어 더 파보려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쿨한 관계.

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관계.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람과 가까워지면

이 점잖은 관계를 운영하는 기술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나와는 엄연히 다른 객체이며 다른 사고의 사이클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왜 잊어버린단 말이냐.

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원한단 말이냐.

같지 않다는 걸 확인한 후에도 무엇이 성이 안 차서 

당신의 같지 않음을 끄뎅이 잡아 흔드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왜 그 뿌리까지 파보려고 하냔 말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이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인 줄 짐작하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게 내버려두어라.

그 허위의 뿌리를 파서 온천하에 드러내고 작살을 내면

내 마음이 시원할 것이냐?

 

논쟁이라는 것은 서로의 다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서로의 의도와 입장을 이해하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그의 무지, 그가 구사하는 논리의 불합리함을 밝혀내려는 유혹이나

그의 부정직을 밝혀내려는 의협심 비슷한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절대로 거기서 멈춰야 한다.

 

그의 다름이, 그의 거짓말이 타인을 위해할 만한 위력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만 거기서 멈춰도 된다.

 

내 입장에서 한번 명명백백하게 재단해보겠다는 욕망은 과욕일 뿐이다.

어찌 보면 또다른 개체에 대한 월권이다.

정신적인 미성숙일 뿐이다.

 

이 월권에 취하여 젊은시절을 낭비했건만

무엇이 부족하여 또 그 버릇이냐.

정의감도 의협심도 다 부질없는 짓... 

자기가 믿는 바가 있으면 자기나 그대로 살아가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