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새 아파트 꾸미기

張萬玉 2004. 7. 18. 00:30

중국에서 새로 산 아파트들은 시멘트벽에 문도 없다. 그 다음부터 살 만하게 꾸미는 것은 입주자의 몫이다.
97년에 구입한 회사 사택 역시 우리가 직접 내부공사를 했는데, 당시에는 쓸만한 자재들이 무척 귀했고 다른 사람들 꾸미는 수준도 그랬기 때문에 중국 수준이 다 그런 거려니 대충 해놓고 살았다. 당시 장식비로 인민폐 5만원 정도 썼나?

기초자재가 부실한 탓에 몇 년 안 가 깨지고 망가지고 녹슬고... 그래도 그런 대로 조금씩 고치고 참아가며 어언 7년이 흘렀다. 언젠가 날 잡아 완전히 새로 고쳐야지 마음먹고 있던 중....

가까이 지내는 후배가 새로 짓는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따라갔다가 은행대출 50% 해준다는 말에 얼떨결에 분양신청을 했다.
평수는 비슷하지만 주거환경이 훨씬 좋고 무엇보다도 어두컴컴한 1층을 벗어날 수 있다! 이제는 좀 제대로 한번 꾸며보리라는 기대로 아파트 열쇠받는 날을 기다렸는데...

작년 혹은 재작년부터 상해 사는 아줌마들의 가장 큰 화제거리가 “집 사서 꾸민 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 사람이나 안 산 사람이나 마찬가지....
총비용이 얼마 들었느냐부터 시작해서 싱크대는 어떻게 설계했는지, 수납장은 어떻게 짰는지... 공사에 대한 불평, 바닥은 무엇을 깔고 커튼은 어디서 했고 오븐은 어느 메이커가 좋고....
얼추 인민폐 20만원 정도의 작지 않은 예산 집행이기 때문에 연구도 많이 하고 골머리도 많이 썩는 듯... 나도 드디어 이 골아픈 “내 집 꾸미기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과제는 시공업체의 선정.
중국회사가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한국 가정에 가장 중요한 보일러 공사를 잘 모르고,
취향도 좀 다르니 설계와 자재선택에 간섭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일일이 쫓아다닐 시간적 여유도 없고,
특히 믿을 만하게 마무리공사까지 잘 해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결국 한국회사로 결정하고 몇 군데 한국회사에 견적서를 요청했다.

네고 한다고 오락가락 하다 보니 서댱개 라면 끓이는 격으로 전혀 무지하던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처음에 계약할 때는 총액에 목숨 걸었는데 진행을 하다 보니 총액이나 자재의 지정은 그저 이 수준에서 해달라는 정도의 의사표현일 뿐이라는 것.

최근 한국에서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자재시장이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다.
그러니 가격조사를 해두면 네고할 때 유리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근무 중 시간도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먼저 시장에 나가본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결정적인 도움은 안 된단다.

왜냐..... 같은 메이커라 해도 모델에 따라 질도 천차만별이고, 짝퉁이도 많고, 유통방법도 할인정도도 가지가지인 중국시장이라서 그렇단다. 알듯 모를듯한 얘기다.
아무튼 어설프게 총액을 깎으려 들다가는 그 금액에 맞춰 자재를 선택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으니 결국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뻔한 결론이다.

공사가 시작된 지 3주째.
보일러 놓고 단열재 넣고 문틀 짜고 천장 덴조공사가 끝났다고 이제 욕실과 주방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고르러 가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쉬는 토요일이기에 건축자재상가가 모여 있는 이산로에 갔는데...
97년에 와보고 처음인데 정말 많이도 변했다.
이층 건물도 드물었던 그 거리에 으리번쩍한 빌딩들이 수도 없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그 빌딩들마다 가득가득 쌓인 물건들을 보니 “이야~~”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욕조 하나만 봐도 600원짜리 아크릴 욕조부터 12000원짜리 수입욕조까지(곱하기 150하면 한국 가격).... 구색도 다양하고 물량도 엄청 많다.

원터치로 켜고 끌 수 있고 좌우로 돌려 냉온수를 조절할 수 있는 수도꼭지 구하려고 얼마나 발품을 팔았던가. 지금은 중국산 어떤 수도꼭지도 그런 기능은 기본이고 크게 부담 없는 가격대에서도 고급 커피숍 화장실에 어울릴 만한 세련된 디자인 제품을 고를 수 있다. 한국을 떠나올 때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나 보았던 아일랜드형 주방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 상해사람들 주머니가 정말 두둑해진 모양이다.

싱크대와 타일, 욕조, 변기, 문짝, 마루 등을 고르고 나니 벌써 집이 다 된 기분이다.

나와 같이 분양을 받고 내부공사에 들어간 후배는 그동안 임대한 집에서 갖춰준 가구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입주할 때 가구와 가전제품들을 거의 모두 장만해야 한다.
공장에 직접 주문을 하면 저렴하다고 내일 소주에 있는 가구공장에 갈 건데 같이 가잔다.
나도 중국에 살았던 기념으로 중국맛 나는 장식장 하나 장만하는 것이 오랜 희망사항이었기 당근 오케이. 이왕이면 시내 나온 김에 고급가구 취급하는 데 들러 안목이나 높여놓자 하고 홍교개발구에 있는 국제가구전람관에 갔다.

이태리 가구부터 영국제 홍목가구, 투박한 네덜란드 가구, Zen 스타일의 일본가구 등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가구로부터 명청대 전통가구 디자인을 살린 중국산 고급 가구까지...
눈요기는 잘 했지만 흐미~ 가격을 보니 장난이 아니네.
침대 하나에 12000원 정도...반면 샤오캉(소부르조아) 수준에 어울리는 수수한 침대는 2000원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시내 외곽지역인 우리 동네에서는 600원짜리 침대도 많이 팔린다.)

좋은 물건 구경하러 다니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인 것 같지 않다. 짠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달까..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타는...
꼭 내 목이 탄다는 건 아니지만, 예쁜 장식장과 식탁을 수도 없이 보다 보니까 기능적인 면에서 전혀 하자 없이 20년째 사용하고 있는 낡은 식탁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암만해도 새집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라....

에구, 이러다간 암만해도 집장식이 한국에서부터 끌고들어온 낡은 세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변해가는 세상이 보여주는 대로 새로운 견문에 놀라고 업그레이드의 욕망에 목말라하며 허겁지겁 쫓아가는 것이 과연 발전이고 성공일지? 갑자기 쌩뚱맞은 마음이 든다.
......

그래도 우쨌든 약속은 했으니 내일 소주 가구공장 견학은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