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넘의 중국인 친구 4
월급날 저녁 늦게
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뱉는 첫마디가 “이 회사 월급수준이 너무 형편없”단다.
이제까지 듣던 사근사근한 말투와는 180도 다른
격앙된 말투에 내 감정도 졸지에 울컥해지는 것을 억누르며 얼마를 받았느냐 물어보니 900원(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13만 5천원 정도)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고졸 학력에 생산직이고, 각종 보험혜택도 없는 외지호구에, 3개월이 안 된 수습사원...
잔업도 전혀 안
했으니... 크게 잘못된 계산도 아니다.
4개월 전에 조사한 바 상해시 공인 초임 평균이 700원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잔업을 하면 좀더 받을 텐데? 하니 자기네 고향에서는 5시 정시 퇴근을 하고 점심시간도 2시간인데 1500원은
받는다며(설마? 했더니 자기가 졸업하고 TV방송국에 취직하면 그렇게 받는다는 얘기였다), 자기는 초보라고 시켜주지도 않는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九亭鎭이 너무 멀어서 회사 근처에 600원짜리 방을 얻었는데 다른 사람과 같이 부담한다 해도 교통비에 식대까지
하면 도무지 손에 쥐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생존의 문제란다.
확실히 사회주의에서 잔뼈가 굵고 아직 자본주의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사고답다.
이 아이와 임금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인간적인 잣대로 보자면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차피 입장의 대결이 될 수밖에....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치열한 경쟁상황에 놓여 있는 경영자
입장으로 가자...
회사는 왜 공인들의 임금수준을 통제할 수밖에 없나...
상해시 공인 초임이 얼마인 줄
아나....
왜 우리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높아야 하는데?
왜 너는 다른 공인들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인정사정 없이 나가자 자기 입장만 쏟아내던 기세가 잠시 주춤해진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슬그머니 “백모”(걔가 그렇게 부른 바)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내가 너 온다고 할 때 말리지 않았느냐....
대도시가 지방도시보다 월급이 조금 세다고 해도 생활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 않았느냐...
일단 학교부터 졸업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전문대 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어차피 너의 학력이 네 직무에 사용되지 않으니 고졸대우를 받는다 해도 불평할 수 없다...
어차피 너는
지금 사회를 배우고 있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배우는 것이 좋겠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빨리 결단을 내려라...
앞으로 네가 수습을
할 3개월간 임금에 변동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마음에 품어온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네가 상해에
온다고 할 때부터 너를 우리 아들 친구로 보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회사 규율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한국사람의 정서상 우정에
기타 다른 이유가 끼어드는 것은 순수한 우정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이고... 요, 방정!! 한번 입밖에서 흘러나온 말
주워담을 수도 없고...
이 대목에서 나는 濤가 그토록 공을 들여온 한국인 기업가 가족과의 인연에
이제 종지부를 찍을 거라는 예감을
했다.
분명히 그애는 내가 떠들어댄 좀 황당한 "우정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친구란
기본적으로 도움(사는 형편상 물질적인 도움이 주를 이룸)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처음에 입으로 요란하게 "친구, 친구" 떠들어대기는 해도
여간해서는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차츰차츰 도움을 주고받으며 신뢰관계를 쌓아 탄탄히 영근 친구(自己人)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친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정말 확실하게 밀어주고 도와주는 것이 중국인이 말하는 우정관이요 친구관계인 것을...
순수한
우정이라...
내 말은 사실 틀렸다. 거짓말이다.
이해관계와 거리가 먼 청소년시기에나 가능한 얘기 아닌가..
한국이라고 뭐가
다른가.
어찌 보면 중국인의 친구에 대한 개념이 더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솔직한 것 아닌가?
며칠 내로 가겠다는 인사를 하러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가버릴지도 모르지.
무슨 트집을 잡아 노동국에다 투서를 하고 가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얌전하게
일하던 친구가 그만두면서--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만둔 것도 아닌데-- 성립되지도 않는 트집거리를 가지고 노동국에 한번씩 들르는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가슴 한켠이 뻐근하면서도 홀가분한 이 묘한 기분....
아들넘이 날
원망하려나?
.
.
수채화로 시작해서 불투명 추상화 같은 화두를 남기면서
“아들넘의 중국인 친구”
시리즈... 이제 싱겁게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기대가 크셨던 여러분께 죄송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