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다시 시작하는 산행일기

張萬玉 2007. 1. 14. 11:44

밤동네를 가까스로 빠져나오며 결심했던 대로 '매일아침 무조건 산에 가기' 실행 닷새째.

여전히 눈이 다 녹지 않아 미끄럽지만 지팡이에 의지하니 그런 대로 다닐 만하다.

처음 이사왔을 때야 '산동네로 왔으니 이제 산을 벗삼으리라'는 야심찬 결심이었지만

가파른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한 뒤 찾아오는 수상한 무릎통증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이가 되다 보니

점점 그 산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갔다.

그래도 구태여 산자락을 선택하여 이사했던 보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 코스라면 어떨까, 저 코스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탐색을 계속한 끝에

드디어 저 멀리 연주대, 가까이는 삼성산 전망대는 못되어도 산자락을 끼고 돌아가는 '노인코스'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으니... 노약자에게도 길을 열어주는 산의 넉넉한 품이 고마울 따름이다. 

자, 운동화끈 매고 나랑 함께 가보실래요?  

 

일단은 신림동쪽으로 난 단지입구로 나가(처음 우리집에 온 사람은 이 길조차 버거워한다) 버스길을 따라서 국제산장아파트 건너편까지 가야 한다. 

 

 

열 개 정도 놓인 짧은 계단을 올라서면 멀리 삼성산 전망대가 눈에 들어오면서 

  

 

나 어릴 때 살던 동네와 아주 흡사한 야산 풍경이 나타난다. 누군가가 쳐놓은 비닐움막, 자기가 가꾸는 밭임을 알리는 야트막한 울타리들,

 

 

콘크리트를 치고 대롱을 빼놓은 약수터. 늘 건성으로 지나쳐 이름은 모른다.    

약수터 오른쪽 길을 택하면 약간 경사길이 나오지만 그래봐야 10도 정도.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테니스장이 나오고 바로 아래 '만년약수' 가는 길이 나오지만 막판 경사길이 싫다면 테니스장 왼쪽길로 가야 한다.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빠른걸음으로 15분 남짓 걸렸으니 이제 등줄기에서 서서히 땀이 솟기 시작하고 다리근육이 올라갈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럼 이제 능선을 향해 올라가 보세!  

 

가파라봐야 이 정도다. ㅎㅎㅎ 

 

 

요 정도라니까? ㅋㅋㅋ 

 

 

'미니 깔딱고개'를 넘어서면 서울대 쪽으로 넘어가는 길과 삼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 그리고 내가 선택하는 호암산문 가는 길의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휘파람 불며 가는 우아한 산책길이다.

 

 

새소리도 나고 다람쥐도 출몰한다.(아, 즐거운 산책길이라니까요~ )

 

 

산책길은 아쉽게도 채 5분이 안 걸린다. 우리 아파트와 이웃하고 있는 벽산아파트에서 호암사로 올라가는 콘크리트 길이 산책로 허리를 끊어냈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건너 다시 열 개 정도의 가파른 계단을 기어오르면 다시 산책로 시작. 

 

 

이어지는 잣나무 숲길. 북풍한설을 견디며 황량한 겨울산을 지켜주는 저 고마운 푸르름이여... 

교토 은각사 부근에 있는 '철학자의 길'처럼 나로하여금 잡념에 푹 빠지게 만드는 길이다.  

 

 

길 아래로 아랫동네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곳곳에 나 있다. 내가 산으로 들어선 코스는 관악구관리구역이지만 주차장 건너서부터는 금천구 관리구역으로, 서로 다른 관리 스타일이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나 정돈이 잘 된 계곡... 여름이 되면 저기에 물이 흘러넘칠까?

 

 

 

물 받는 곳에서는 그 무엇도 세척을 금해서일까?

유리컵 하나만이 달랑 이 약수터를 지키고 있다.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는 잣나무약수터는 쨀쨀쨀 흐르는 한줄기 약수를 기다리는 플라스틱 병들이 줄을 서고 할아버지들의 침튀기는 정치토론으로 늘 시끄러운 곳인데 말이다.

(유해물질 나온다고 떠들든 말든 PET병은 산에 물길러 오는 사람들의 필수품목. ^^)

 

 

 

이곳이 다른 운동시설에 비해 이용자들이 월등히 많은 이유는 아마도 구에서 설치한 시설 외에도 집에서 쓰던 자전거머신, 정성껏 매달아놓은 샌드백, 타이어, 전신거울, 시계, 아령, 훌라후프 등등 시흥동 독산동 일대 주민들의 정성이 만발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여기서 약간 시간을 보내며 근력 키우는 흉내를 내보곤 한다.

    

 

 

 

여기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왔거나 삼성산 전망대로 향하는 가파른 경사면으로 올라간 남편들을 기다리는 아줌마들이 해바라기 하는 곳. 

 

 

이제 귀로에 오른다. 왔던 길을 되집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까지 와서

올라왔던 길을 버리고 왼쪽 길 클릭!

 

 

왼쪽은 침엽수 숲이고 오른쪽은 활엽수 숲이다. 지금은 황량해도 여름에는 짙은 녹음 그늘을 드리운다.

 

 

어라, 지금이 몇 신데 벌써 해질 준비?

 

 

이제 오롯한 산책길은 끝났다. 왼쪽길 클릭!

 

 

조금 가파른 경사면 내리막길... 지팡이가 도우미로서의 진가를 발휘하는 구간이다.

 

 

시흥과 난곡으로 갈리는 길에서 오른쪽 길 클릭, 다시 난곡 종점과 아파트입구로 갈리는 길이 나오면 계속 오른쪽 길 클릭. 예전에 고마운 누군가가 망가진 장롱문 한쪽을 걸쳐놓아 도랑을 건너게 해주었던 자리에 이젠 예쁜 계단이 설치되었다.

 

 

이제 여정이 끝난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단지 내로 들어와서도 1킬로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중간지점에서 마지막으로 정리운동 좀 해주고...

 

 

이제 진짜 다 왔다. 남의 집 베란다 살짝 한번 들여다봐주는 매너. ^^

 

 

휴... 우리 아파트 단지가 높긴 높다.

정면으로 멀리 보이는 소나무 아래로 그만큼 더 내려가줘야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계단 말이다.

물론 나는 이용 안 하지.. 멀더라도 비실비실 돌아서 다닌다.

관악산에 오른다고 꼭 연주대나 삼성산 정상만 가란 법 있나?

8부능선이면 어떻고 5부능선이면 어떠랴.

이게 내 다릿심이고 내 스케일이고

내 즐거움이고 내 삶인 것을.

 

노력하여 즐겁게 살자꾸나.

깡통로봇님의 신혼결심처럼 나도 뒤통수 땡기는 결심 한 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