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말갛게 닦아내기 -- 아장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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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수다 한판 벌려본다.
돌아보면 내 마음의 창에 뿌연 먼지가 끼어들기 시작한 게 아마 2004년 가을 무렵부터였지 싶다. 당시 내 나이 마흔일곱.
다니던 회사 그만뒀지, 아들넘도 군대 가 있지, 남편이라고 한 달에 절반은 외지출장이지, 살림은 건홍이가 다 해주지, 절친한 옆집 후배는 학교 나간다고 바쁘지....그렇다고 교회엘 다니나, 골프 치고 쇼핑 다니는 내 또래 싸모님들의 라이프사이클에 익숙하길 하나...그나마 마음 편히 만나는 '멤버'들의 모임에 끼어봐도 나랑은 열댓살 가까이 차이 나는 젊은엄마들이라 애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공연히 쓸쓸한 내 맘 눈치 챌 리 없고....그렇게 무소속의 중년 아줌마는 마음의 미로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만옥이는 잘 몰랐다. 인생은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드디어 인생의 그늘이 서서히 내게도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걸.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것은 오랜 시간생활에서 벗어난 한때의 게으름으로 치부했고, 사람 만나기 싫어지는 마음을 쇼핑이나 하고 밥이나 먹는 의무사교를 벗어던지는 자유라고 합리화했다. 꼼짝 하기 싫으니 쉽게 매달릴 수 있는 건 인터넷밖에 없었다. 허나 우울증(?) 자가치유 1단계에 해당하는 2004년 하반기에 쓴 글을 돌아보니 몇 개 되지도 않을 뿐더러 제목들도 하나같이 꿀꿀하기만 하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어쨌건 그 기간은 블러그를 도우미 삼아 무사히 헤쳐나갔나보다.
블러그가 부질없어지자 이번에는 중국어연수 고급반에 등록했다. 우울증 자가치유 2단계.
처음엔 약발이 듣는 듯하더니 한두달 지나니 그것도 심드렁하더라. 아무리 공부에 집중하려 해도 마음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공연히 심란하기만 하고.... 게다가 빡세게 공부하려던 처음 결심이 예전같지 않은 체력과 집중력으로 상처를 받으니 이왕 등록한 거 그저 면피나 하겠다는 심정이 되더군. 이때부터 내가 예전같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지.
결국 제대하여 복학하는 아들네미를 핑게삼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젊은언니들 속에서 원로 역할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가 싶어 내 또래들을 찾았다. 자가치유 3단계...
내 또래들은 아직도 쌩쌩한 듯 보여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 아직 괜찮다. 다시 힘내고 내 삶을 다시 세팅해보는 거야, 참신발랄 허무맹랑하게! 블러그 이름도 '발랄한 중년일기'로 바꿨다.
허나 독자적인 운신을 시작하기도 전에 남편과 아들네미가 번갈아 요동을 쳤고 중국과 한국을 오락가락하면서 한국에서의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느라 겨드랑이에 불이 날 지경으로 날갯짓을 하다 보니 2005년 하반기와 2006년 상반기가 그럭저럭 흘러갔다. 사이사이로 그 망할놈의 공허감이 머리를 들기도 했지만 오늘은 괴로워도 내일은 괜찮아지리라는 희망으로.... 머지 않아 이 사회 속에 내 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내 마음을 확실하게 붙들어매리라 다짐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아들넘도 복학을 하는 등 사방이 안정되자 서둘러 취직을 했다.
지난 겨울 일이다. 갱년기 우울증 자가치유 4단계?
허나 석 달을 못채우고 그만두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야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체력도 순발력도 딸리는 자신을 나 스스로가 용납하기 어려웠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이기도 했고...(이 얘긴 다음에 쓸지도 모르겠다.) 그만두고 나니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네가 왜 그 일을 하려는지 의아했다"고....
그래도 왜 진작 말리지 않았냐고 할 수도 없다. 그때 누가 말렸어도 아마 내 고집대로 했을껄. 그만큼 나는 외롭고 절박했다. 사회생활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이었다고나 할까.
아마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이었으면 죽어라고 매달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살찌고 게을렀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미움으로 한동안은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들만 나올 것 같아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중간한 중년 여인네들이 살기 힘든 세상 어서어서 지나가 빨리 60고개를 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천벌을 받지!)
종일 문밖에 한번 안 나가고 소파에 묻혀 보지도 않는 tv채널이나 하염없이 돌려대던 2월의 어느날.
자가치유 5단계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천성이 명랑한 만옥이는 감흥도 없고 자존감도 없고 열의도 없는 이런 세월을 견뎌낼 재간이 없거든.
그런데 귀차니즘 증세는 여전히 勝하여 끌려나가지 않으려는 나를 이끌어내려면 내가 무얼 할 때 가장 신이 났었나, 그 중에서 현재 내 손이 쉽게 뻗치는 곳에 있는 게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했다.
일단은 아침햇살 밝게 빛날 때 하는 운동이다. 산엘 가면 되지만 의지력이 현저히 약해진 지금으로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가야 하는 수영보험(!)에 들었다. 이 전략은 비교적 성공적인 듯하다. 즐거운 수영이 자발적인 산행까지 북돋워주어 실시 2주차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여덟시 반에 집을 나서게 하고 밤에도 숙면을 보장해준다.
또하나의 사교보험은 영어회화학원 등록이다. 웬만큼 떠든다면서 새꼽맞게 웬 영어학원? (게다가 이 학원은 이미 20여년 전에 1년 코스를 마치고 졸업을 한 곳이다) 외국어라는 게 사용 안하면 어휘나 유창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마련이고 마치 수영이나 헬스처럼 훈련을 할수록 강하고 아름다워지는 법....
그래도 어학실력에 대한 욕심만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은 게 다행이다. 게다가 값싸고 가까운 학원이 가까이 있는데 그거 엇따 써먹겠냐고 따질 필요 있나. 덤썩 즐기기로 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안전장치를 설치해놓고 나니 그것도 소속감이라고... 건조한 먼지만 풀풀 날리던 마음에 제법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전상순님 말마따나 마음을 부웅 띄워주는 질료에 몸을 던진 게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남편과 이혼한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후배, 정신과 처방을 받은 약을 복용하니 꼬리를 물던 잡생각이 싹 없어지고 마치 사춘기 소녀 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말짱해지더란다. 허나 나는 약 먹기 싫어서 대신 아장아장 걷기로 했다. 자신이 없을 때, 내키지 않을 때는 내 페이스로 움직이면 된다.
젊음의 강을 건너기가 왜 이리 힘드냐고 어느 젊은 처자가 비명을 지르더라만
중년의 강을 건너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강인 줄 알고 기를 쓰고 건너고 있지만 어쩌면 그건 건너면 그만인 강이 아니라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이 될 수도 있다. 바야흐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시점(更年)인 것이다.
원하든 원치않든 지금껏 살아온 만큼 더 가야할 길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나만의 가치, 나의 자긍심, 나의 기쁨이 무엇인지 잘 살피고 개발하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
老婆當自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