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 프라방 가는 길
한반도보다 조금 큰 라오스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고 사람들은 국토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도로가 개발이 안 돼서 유동인구가 적은 건지, 유동인구가 적어서 도로가 개발 안 된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황이 그래서 대중교통 상황은 상당히 열악하다.
잘 닦인 도로가 있다면 두세 시간에 주파할 길을 여섯 시간씩 걸려서 간다. 비포장도 비포장이지만 포장된 구간도 곳곳에 구덩이가 파여 비포장 도로나 크게 차이가 없고, 거기에 대부분의 차량 상태도 좋지 않으니...
나보다 한 달 먼저 이곳을 다녀간 JM이 하도 버스여행이 힘들다고 하길래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경치가 좋으니 그리 힘든 줄도 지루한 줄도 모르겠다.
구름관을 쓴 황제 같은 풍모의 당당한 산봉우리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했지만 버스가 요동을 치는 바람에 볼 만한 사진은 한 장도 못 건졌다. 위 아래로도 덜컹대지만 산의 품이 넓다 보니 그 산을 끼고 도는 커브가 대단해서.... ㅎㅎ 열 구비까지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휴게소 전망대에서 아쉬운 대로 기록사진 찰칵.
자전거를 타고 이 높은 고개를 넘는 鐵脚女人...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게 바로 이 무쇠다리다.
까시? 인가 어디서 출발했는데 오늘 사흘째란다.
뒤이어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올라오는 커플. 출발은 비엔티엔에서 했고 오늘 아침 방비엥에서 떠나 두 시간 걸렸다고 한다. 자고로 여행은 저렇게 해야 한다. 적어도 원하는 곳에 멈출 순 있어야지.
그 첩첩산중에도 몇 집 안 되는 작은 마을들이 가끔 나타나는데, 남녀노소 모두 나와 갈대 같이 생긴 것을 모아서 열심히 털고 있다. 저걸로 뭘 하게?
단순노동에 목숨 거는 인생이 간편한 것 같기도 하고 어이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보니 도시를 제외한 라오스 전역에서 저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더군. 그게 뭐하는 작업인가 하면....
(루앙 남타 가서 알려드리죠)
버스에서 내래면서 발견한 운전석 앞 장식품.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지만 돈을 접어 공작 모양을 만들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루앙프라방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버스가 없으니 이동 수단은 택시 격인 툭툭 뿐이다.
함께 버스 타고 온 사람들이 툭툭도 함께 타서 만 낍씩 냈지만 혼자 타게 되면 2만낍을 내야 한단다. 2만낍이면 점심 한 끼다.
시내로 들어오긴 했는데 거리는 설 휴가를 맞아 단체관광 온 중국인들로 붐비고, 그래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빈 방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어쩌다 빈 방이 있어도 어찌나 비싼지....몽희가 소개해준 도미토리도 꽉 찼고 론리에 15달러라고 소개된 집도 25달러를 부른다.
어렵사리 십만 낍짜리 호스텔을 찾아 겨우 배낭을 내려놓았다. 좀 깎아볼까 했더니 이빨도 안 들어간다.
잠깐 뻗었다가 빨래부터 해널었다. 관광객이 판치는 이노무 동네, 빨래만 마르면 떠나자고 다짐하면서.....
루앙프라방 여기저기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위로 뽑힌 루앙프라방.
그 명성에 걸맞게 거리는 깨끗하고 나무와 꽃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조용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집들도 라오스 전통가옥 느낌을 살리면서 서양풍의 멋을 더해 일제히 새단장을 한 듯했다.
방 비엥이 좀 흐트러진 bohemian이라면 루앙프라방은 빈틈없는 dandy랄까.
작은 골목들의 표정도 서늘하고 조용하다.
방비엥처럼 루앙프라방도 작고, 두 개의 주 도로를 작은 골목들이 이어주는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 점은 두 개의 주도로 모두 강을 끼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방 비엥보다 강이 멀고 개발되지 않아 강변에서 노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하지만 강이 보이는 도로변에 근사한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우연히 발견한 한국 식당 big tree cafe & gallery.
정갈하고 우아하다. 갤러리에는 주인 아저씨가 짬짬이 찍었다는 사진들이 걸려 있다.
친절한 여주인(새댁 같다), 별로 드릴 건 없고... 하며 떡국을 조금 준다. 라오스에서 설 음식을 먹게 되다니!!
음식도 (배낭족 예산 치곤 가격이 조금 세긴 하지만) 제대로 정성을 들인 한국 음식이다.
한국음식점에 가면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루앙프라방에 산다는 가족들이 옆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시내는 구 시가지에서 4킬로 떨어진 곳에 있단다. 물건구입 등 불편한 점이 없진 않지만 여러모로 여유있게 살 수 있어 라오스 생활이 즐겁다고 한다.
나처럼 배낭 메고 혼자 다니는 40대 중반의 비혼남도 만났다. 남쿤강 건너에 있는 5만 낍에 묵고 있다고 해서 귀가 번쩍 했으나 벌레 나온다고 해서 더 묻지 않았다. 빨래만 마르면 떠날 건데 뭐.
이 관광구역을 벗어나면 8만낍(10달러) 이하의 방은 많이 있단다. 허나 결정적 단점은.... 이 동네로 올 때마다 툭툭 비용이 만만찮다는 거..
결국 나는 비교적 괜찮은 선택을 한 셈이다.
강으로 내려가는 급한 비탈에 여러 층을 내어 만든 전망 좋은 노천까페.
Lao Beer가 원래 맛좋기로 유명한 맥주지만 고단하니 내 주량 두 컵을 넘어 한 병이 술술 들어간다.
만땅으로 취해서 9시쯤 뻗었다가 북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 6시다. 장장 9시간도 넘게 잤다.
북소리가 심상찮길래 얼른 눈꼽만 떼고 나가 보니.... 탁발공양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정성들여 싸온 찰밥을 시주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미얀마와는 비교할 수없이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탁발 현장.
사진 찍는 사람들 속에 끼어 좀 찍긴 했는데 웬지 모르게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존중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탁발 현장을 찍지 말아달라는 포스터를 보고서야.......
아침 풍경은 어디나 그러하듯 소박하고 평화롭다.
동쪽에 있는 남쿤 강가로 나가니 동이 트고 있었다.
날이 흐려 산봉우리 사이에 걸린 햇님의 자태는 그저그렇고....
오히려 아침을 준비하는 종업원 아가씨의 자태가 훨씬 싱싱하다.
조금 전에 시주행사에 참여하셨던 할아버지.
저 근면하고 부지런한 표정의 원천이 바로 지극한 불심 아닐까 싶다.
할머니가 하는 노점에 나와 아침 먹는 꼬마.
저 찹쌀빵은 베트남에서 먹었던.... 아유, 반가워라!
정치적 신념도 때로는 훌륭한 판촉수단이 된다.
이건 정치포스터가 아니라 레스토랑 광고포스터... ^^
꼬마야, 아침부터 왜 멍때리고 있니? 학교 안 가?
Big Mouse Bother라는 간판과 함께 정말 큰 쥐가 앞을 지키는 집이 눈에 띄길래 들어가보니, 영어회화를 배우고 싶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영어로 대화를 하며 놀아주는 자원봉사 기관인데, 거리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놓고 서양 여행객들을 기다린다.
스탭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반색을 하며 아침 9시부터 시작하니 들어와서 좀 기다리란다.
글쎄, 원어민도 아닌 주제에 서양애들이랑 섞여서? 이 동네 오래 있는다면 혹시 또 모를까....
아침도 아직 안 먹었으니 먹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돌아나왔다.
서양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사탕 대신 책을 주세요" 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왕쥐형님 프로젝트는 라오스의 관광지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는 듯했다.
루앙 남타에서도 봤고 영어 좀 하는 라오스 청년들로부터 이 왕쥐형님 프로젝트 얘길 여러 차례 들었다.
라오스의 영어 배우기 열풍은 한국보다 더 거센 듯하다. 영어를 하고 못하고에 따라 밥줄이 왔다갔다 하는 게 확실히 보이니 안 그럴 수가 있겠나.
절은 이제 그만! 했는데 켐콩 거리 끝에서 왓 시엥통을 발견하고는 빨려들듯 또 들어가고 말았다. 예전에 따리에서 본 백족들의 절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란하게 금칠을 해서 몰랐는데 태국 절의 원형 역시 이 소박한 절이 보여주는 백족 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맞는지는 모른다) 게다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벽화가 너무 생생해서 흥미롭게 구경했다. 나중에 론리 플래닛을 찾아보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절이다. 역시 그랬군.
밖에서 벽돌담 보수작업을 하고 있던 청소년 스님이 부르더니 영어회화 연습을 시작한다.
사진도 좀 찍어보내달래서 이메일 주소 적고....
같이도 찍자고 해서 나란히 선다는 것이 거리가 좀 가까웠던지 어깨가 부딪혔는데 이 소년 스님, 나를 홱 밀치며 자기는 승려라고.... 저만치 떨어지란다. ㅋㅎㅎ 내가 여자라는 얘기냐?
짓꿎은 생각이 들어 고개라도 가까이 들이밀어봤다. ^^
(나중에 사진을 보내줬더니 바로 'THANK YOU!'라는 짧은 답장이 왔다. 스님들도 메일 자주 보시나봐. ^^)
점심 먹고 로열 패밀리 박물관에 갔다. 1890년대에 왕이 살던 궁이라고 했다.
신 벗고 모자도 벗고 가방과 카메라를 맡겨야 한다. 사진을 못 찍으니 슬쩍 김이 새는군.
얼핏 보고 지나쳤던 태국 수공예품들이 이제 좀 이해가 간다.
금실 섞어 복잡하게 놓은 자수, 멀미가 날 정도로 세밀한 조각품과 티크 가구 등등....
화려한 취미는 놀아야 생기는 감각 아닌가 싶다.
일몰 보러 왓 푸시에 갔다. 순전히 내 취향이지만... 여기가 루앙 프라방 최고의 명소 아닐까 싶다.
400여 개의 계단이 꽤 가파르지만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사방 전망이 툭 트여 앞강 뒷강 다 보인다.
최대한 땡겨봤다.
일몰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기 때문에 사람 많지 않을 때 일몰 보기 좋은 자리를 차고 앉았어야 하는데
전망이 더 좋은 동쪽 방향에 넋 놓고 앉아있다가 그만....
아줌마, 딱 가리네요.
아저씨, 저 아드님이랑 잠시 자리 좀 바꾸면 안 될까요? ㅜ.ㅜ
Je ne sais pas comment repondre....
시야를 완전히 가린 프랑스 가족들 머리통과 송전탑을 이리저리 비켜가며 몇 장 찍긴 했는데....
여전히 나무가지들이 어지럽다.
왜 이리 일몰에 목숨을 거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긴다.
어쨌든 오랜만에 마음에 파고드는 경치를 보니 라오스 땅을 밟으면서부터 끈질기게 날 따라다니던 정체모를 미진함이 확 풀리는 듯하다. 붉은 강물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앉아 있다가 어두워져서야 내려왔다.
왓 푸시부터 박물관까지 야시장이 섰다.
티켓 예매의 진실
여행사와 기념품가게, 인터넷 까페가 몰려 있는 시사방봉 거리는 일찍부터 투어 나가는 차들로 붐빈다.
참, 나도 내일 루앙남타 가는 티켓을 구해야지?
숙소에 물어보니 15만 낍 달란다.
좀 비싼데? 싶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설마 자기네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랴) 싶어 예매를 부탁하고 놀러나갔다. 헌데 바로 앞에 있는 여행사에 붙은 가격을 보니 11만 낍 아닌가.
심부름값 정도야 줄 수 있지만, 세상에 4만 낍이나 붙여먹다니. 내가 눈뜬 장님인 줄 알았더냐?
열 받고 돌아와 그 녀석을 찾으니 벌써 터미널에 예매하러 갔단다.
전화로 불렀더니 오토바이 타고 5분 만에 나타났다.
'나 계획 바꿨다...'고 둘러대다가 구질구질하길래 정색을 하고 따졌다.
'사실 여행사 앞에 써붙인 거 봤는데 너 너무 많이 받았더라. 기분나빠서 캔슬하려는 거다' 했더니
그러면 3만 낍 빼줄테니 그냥 자기에게 맡기란다.
'내가 왜 여행사에서 받는 것보다 더 내고 네게 사야 하는지 말해달라'고 따졌더니 '이미 표는 샀으니 환불하려면 패널티 물어야 할 꺼고, 내가 오토바이 타고 다녀온 값 2만낍 줘야 할 꺼고, 네가 다시 직접 가려면 툭툭 값 4만낍 들어야 하니 그게 그거잖아' 하며 능청맞게 구슬른다.
버스터미널까지 10분 내로 왕복할 거리가 아닌데 벌써 표를 샀다고? 거짓말쟁이 같으니...
표가 얼마나고 물어보니 8만5천 낍이란다. 그 애가 제안하는 대로 12만 낍에 산다면 여행사에서 사는 것보다 1만 낍을 더 주는 게 되지만 그 애의 제안대로 무른다면 14만낍에 패널티까지 해서 오히려 15만낍도 넘게 줘야 한다. 진퇴양난이네, 괘씸한 생각하면 무르고 싶지만 그래봐야 내 손해고...
이 녀석 그래놓고는 미안한지... 여행사는 여러 장을 사니까 전화만 하면 터미널에서 갖다주지만 내가 직접 심부름을 하려니 기름값이 들어서 만 원 더 받는 거라고, 이해해라고 한다.
그럼 내가 따지지 않았다면 기름값으로 6만5천낍이나 받으려고 했던 거냐? 이 뺀질이 같은 녀석!
걔 욕해봐야 뭐하나. 여기저기 좀 알아보지 않고 덜커덕 해버린 내가 멍청이지. 나사가 풀린 게야.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이 녀석...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급명랑 모드로 전환하여, '오늘 일일투어 안 하냐, 자기가 미안하니 투어는 여행사보다 싼 값에 소개시켜주겠다'고 한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라오스 사람들 순박하다고... 베트남에서 바짝 켜놓았떤 바가지요금 탐색기를 완전히 꺼버렸는데.... 라오스에도 이런 녀석이 있네.. 하긴 1만낍 더 줬다고 해봐야 겨우 1.5달러인데 돈 많은 내가 참는다.
1회 인출한도액이 있어서 70만낍씩 두 번 뽑아 썼는데 버스표값 방값 계산하고 나니 또 주머니가 가벼워졌다.
쇼핑도 안 하고 투어도 안 했는데..... 진짜 돈 쓸 거 없네. 라오스 물가 싸다고 누가 그랬어!!
어제 널어놓은 빨래가 거반 말랐다. 갈 때가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