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제주허씨 한달살이

제주허씨 일기 10 - 한담산책길

張萬玉 2014. 11. 18. 11:16

11월 17일

 

예래리 집을 보여주고 의견을 구할 참으로 바쁜 친구에게 일정을 비우라고 했다.

친구를 데리러 가는 길.

산록도로가 편안하지만 심심하다면 516도로는 흥미롭지만 (일기에 따라) 사람을 긴장시키는 코스다.

며칠 전 진눈깨비 날리던 이 도로를 오늘은 짙은 안개가 휩쓸고 다닌다.

성판악 지나 길 양쪽 목장 풍경이 안개 속에 아련하길래 잠깐 차를 세웠는데,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에 아련이고 뭐고 금새 五里霧中으로 변해버렸다.

 

역시 집은 여러 사람이 봐야 한다.

시멘트 블럭으로만 둘러싸인 부엌과 샤워장 외벽을 하다못해 시멘트로라도 마감해야지 바람 숭숭 들어올 텐데 어찌 살겠냐,

아무리 외풍 없고 볕 잘 드는 집이라고 해도 온수매트 하나 의지해서 어찌 살겠냐,

아무리 안전한 촌동네라고 하지만 잠금장치 없이 어찌 살겠냐, 등등......

살피는 고비마다 '어찌 살겠냐'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하루 이틀 놀다가면 모를까, 막상 사는 건 다른 문제일 것 같긴 하다.

하여튼 나는 모든 문제를 너무 쉽게 보는 게 문제라니까.

 

모슬포항에 가서 늦은 점심 먹고(지금이 제철이라고 난생 처음 먹어보는 방어회, 내 입맛은 아니다. 너무 기름져...)

길목의 Travel이라는 작은 까페(쥔장이 세계일주 후에 정착한 곳 아닌가 싶은..)에서 커피 마시며 수다 떨다가 제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저녁 먹고 들어온다는 전화를 받은 친구, 앗싸!를 외치며 나를 데려간 곳...... 이곳이 오늘의 하일라이트!

곽지해변 인근 한담산책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파도가 몰아치지 않는 한 바닷가는 대개 고요하고 심심하기 마련인데 이 바닷가는 사진은 찍어놓고 보니 상당히 다이나믹하다.

제주 아니면 볼 수 없는 구름의 버라이어티 쇼, 그리고 멋대로 나뒹구는 검은 현무암들 때문에. 그리고 때는 일몰이었다. 그것도 서해의......

 

이 마을 출신의 장한철이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까지 표류하게 되었는데

그 역경 속에서도 그는 선비답게 그간의 겪은 일들을 '표유록'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남겼는데

사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학적 가치까지 인정받아 제주유형문화제 27호로 지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 12월에 완공된 따끈따끈한 산책로. (이효리가 즐겨걷는 길이라 하여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네, )

이 아름다운 산책로 초입에 새겨진 애월읍장 명의의 표지석에는 이 마을이 낳은 인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여 보는 이의 마음까지 뿌듯하게 한다.

 

 

 

 

기가 막힌 구름 쑈!

 

 

중간쯤에 캠핑카 주차장과 Factory Story라는 까페가 있다.

덩그라니 큰 건물과 고구마까페라는 특이한 주제가 눈길을 끌길래 들어가보니 고구마를 주재료로 하는 간식거리와 커피를 팔고 있었고

뭔가 고구마를 주제로 한 박물관도 있는 듯한데 거긴 안 들어가봤지만 푸딩도 맛있고 주인아가씨도 친절하고......

다음에 분명 또 찾을 것 같은 예감...

 

 

멀리 보이는 게 곽지해수욕장

 

 

 

 

뒤를 돌아보면 '봄날' 까페 & 게스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