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사에서 카타니아까지 버스로 3시간 가량 걸렸다.
버스터미널에서 여행자 숙소가 많은 두오모 광장까지 15분 정도? 배낭 짊어지고 걷기엔 좀 먼 거리지만 길도 좋고 구경거리도 많아서 걸을 만하다.
첫번째로 들어간 호스텔이 딱 마음에 들어 바로 짐을 내려놓았다. Ostello degli Eleffanti.
호스텔이 갖춰야 할 미덕을 다 갖고 있는 19유로짜리 여성 4인실인데 비수기라 손님이 없어서 상냥한 스탭이랑 둘만 쓴다.
짐 내려놓고 곧바로 버스 2시간 거리에 있는 타오르미나로!
320도씩 꺾으며 가는 길의 풍광이 너무 근사해 중간에 내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 감흥에 비하면 오히려 관광지라고 내려준 곳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 경치를 볼 만한 곳은 다 호텔들이 차지하고 있는 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거리에 늘어선 상점들은 고만고만한 기념품들 팔기에 바쁘다. 하지만 대극장 유적이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니 턱이 떨어질 만한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절벽을 타고 차곡차곡 포개진, 10년 전에 보았던 포지타노 마을이다.
막 흥분해서 버스 길을 버리고... 막다른길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동네 골목으로 들어서서 돌계단을 한없이 내려가니 Isola Bella 가 마주하고 있는 몽돌해변.
홀린 듯 보낸 두 시간, 그런데 중간지대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어떻게 다시 올라간다냐?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갈 때는 거의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이미 세 시가 다 된 시각, 3시 15분으로 알고 있던 버스 시간에 맞춰 기를 쓰고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토요일이라 5시 45분 막차밖에 없다네. ㅠㅠ
바람은 씽씽 불어대지요, 점심도 잊었던 뱃속에서 거지는 깍깍 울어대지요, 화장실은 급하지요...
할 수 없이 가격 쫌 받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호기롭게 구운 송어요리를 시켰다.
추위를 피해 인터넷도 쓰면서 최소 다섯 시까지는 개길 생각이었는데, OMG 네 시가 되니 닫는 시간이라고 나가달란다.
대합실도 까페도 하나 없는 터미널에서 달달달 떨다가 오호라, 나의 예민한 후각이 또 냄새를 맡았다. 터미널 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는 불빛!
아쿠아리움처럼 꾸민 길고 긴 지하통로를 살금살금 따라 가보니 Hotel Ariston 리셉션이다.
살았다! 폭풍의 언덕에서 구해준 너, 체면 불구하고 개기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너, 잊지 않겠다.고마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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