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는 나에게 크리스마스란, 일생을 인류의 구원에 바쳤던 예수의 탄생일을 기해 그가 평생에
보여주었던 이웃사랑의 메시지를 되새겨보는 날이니,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 뭔가 작은 마음이라도 전하는 것이 이 명절을 기억하는 일이
되겠지.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복 받아라(복 많이 주어라...가 아니고?) 즐겁게 지내라는 메일을 자꾸 받다 보니 웬지 크리스마스에는
나를 위한 무슨 특별한 이벤트라도 벌여야 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안 그래도 매일 똑같이 지나가는 나날이 너무 지루해 엊저녁에는 푼수떼기처럼
유학생 조카 송년파티 하는 데 쫓아갔다 왔다).
그래서 내가 지냈던 마흔다섯 번의 크리스마스... 아니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잠깐 추억해보는 것으로 2003년 크리스마스의 흔적을 남길까 한다. 움.. 글구 낼은 뭔가 좋은 일을 해야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라.... 먼저 친정엄마 생각부터 난다.
신앙심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아름다웠던 엄마... 수제비를 밥보다 더 많이 먹었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성탄이 다가오면 양말 한 켤레씩이라도 간수해두었다가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나 우체부아저씨에게 전해주곤 했지.
어린시절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모두 축제 색깔이다. 끼가 많았던 나를 한껏 행복하게 해주던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나의 멍석마당)... 출연은 물론 선생님의
영역인 기획까지 넘나들곤 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는 부자간에 대를 이어갈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이었는데, 얼마나 합창이
좋았던지 어른들의 성가대 연습시간에까지 끼어들어 파트연습에 열을 올렸지.
그리고 지금도 기억이 선연한 눈 내린 첫새벽의 새벽송.... 예배
마치고 새벽이 될 때까지 사치기사치기 삿뽀뽀 하며 놀다가 남들 한참 자는 시간에 어둠을 헤치고 다니며 고성방가를...ㅋㅋ 요즘도 새벽송 하나?
요즘 인심으론 경찰에 신고 들어갈 일이겠지??
중2 때...
교회행사가 시시해진 건방진 남녀(불량? 아닌데...)중학생들이
교회에서 뛰쳐나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밤거리를 싸돌아다녔지. 아현동에서 마포까지 걷다가 그것도 모자라 여의도를 횡단하는데, 아무도 없는 어둠 속
허허벌판에 미쳐서 당시 유행하던 아침이슬 등등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지.
움.... 여의도 거반 다 건너가서 단속에 딱
걸려따!! 하늘이 노랗더군. 특별히 나쁜짓한 건 없으니 그 자리에서 관등성명 적고 몇 마디 훈계 듣고 풀려났는데.... 신기하게 이후 아무
소식도 없더라구... 근신 내지 정학까지 각오했는데...
난생 처음 홀로 보낸 대학 3학년 때의 크리스마스 이브.
무신론자가
되고 나니 정말 크리스마스 이브는 별 볼일이 없는 날이 되더군. 그런데 하필 그때가 실연한 지 얼마 안 되어 몸도 마음도 다 아팠기에 식구들과
공유하는 공간조차 힘겨워, 방학을 맞아 귀향한 친구 하숙집에 삼박사일을 숨어있었다.
밥도 안 먹고 불도 안 켜고 청승맞게 누워있는 내 귀에
어느 집 티브이에선가 내일 성탄은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못참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멈추기 위해 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하하.. 뭐가 그렇게까지 슬펐지?? 평생을 두고 그 아픔을 잊지 못할 것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아련한
그리움이다.
움..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우리아이가 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나보다. 시집간 네 명의 시누이들이 다 가까이
살았고 시누올케랄 것 없이 사이가 좋았고 아이들도 다 또래들이라서, 여름휴가나 명절, 주말 등 명분만 있으면 모여들어 애들은 애들끼리 어른은
어른끼리 집안이 난장판이 되도록 놀곤 했다. 그때도 성탄절을 빙자하여 모였는데 아이들 줄 선물을 일괄 구입하여 거실 한구석에 숨겨놓았던
게(아이들 자면 포장하려고) 화근....
저녁 해먹고 밤이 늦었는데도 애들이 노느라고 통 자지를 않는 거다. 애들이 자기를 기다리며 할 수
없이 시누이들과 고스톱을 쳤는데.... 처음 배워 쳐보는 10원짜리 고스톱에 정신을 팔다 보니 어라~ 새벽 서너 시가 되었네.... 잠깐 눈들을
붙였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일어나보니 애구구... 먼저 일어난 애들이 선물보따리를 개봉하여 서로 이거 갖겠다고 야단이 났다.
크리스마스 아침은 눈물바다로 변하고.ㅋㅋ
하하... 쓰다 보니 잊었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 쓸 수가
없군.
오늘 밤은 성탄 전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한 해가 저무는 때이니 잠시 일손을 멈추고 마음의 촛불을 켜 지난 얘기들을 한번
밝혀볼까 한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 매듭을 지어놓기 위해서...
'그 시절에(~2011) > 花樣年華'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의 추억 (0) | 2005.05.16 |
---|---|
즐거운 언약식 (0) | 2005.04.28 |
개 이야기 (0) | 2005.02.05 |
첫눈과 첫사랑에 관한 짧은 회상 (0) | 2004.12.23 |
미숙이 1 (0) | 2004.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