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7시에 호텔을 나서는데 프런트도 각 층 담당도 모두 자고 있다. 아차, 여기는 상해보다 한 시간 반 정도 해가 늦게 뜨지. 아침 7시면 상해의 5시 반, 한국의 4시 반경이니 얼마나 이른 시간이겠어.
이해하는 마음으로 자는 아가씨 흔들어 깨워 가지고 체크아웃하고 짐 맡겨놓고 석림 가는 버스를 타려고 도보로 3분 거리의 장거리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이거야 원, 버스터미널에서 정식으로 표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외국인들뿐일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창구에서 표를 사기는 샀는데 버스를 타려고 개찰구로 나가보니(이런 걸 중국말로 롼치빠짜오라고 하지) 장거리 버스 시외버스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엉켜 도대체 어느 버스를 타야 할지 막막하다.
탈 버스 못 찾아서 못 가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허둥대며 15분 정도 마구 찾아 헤매는데 어떤 아줌마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석림 간다고 했더니 자기네 승합버스를 타란다. 우리 표에는 엄연히 차 홋수가 찍혀 있는데 그래도 되나?
아무튼 간신히 석림을 향해 떠난 시간이 8시 40분(원래 버스는 8시 10분발).
문명도시 상해에 살다가 오랜만에 이런 난장판을 보니 새삼스럽다. 쿤밍의 버스터미널이야말로 과거 중국 버스터미널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옆자리에 탄 네덜란드 커플은 중국여행에 도가 텄는지 아예 표도 안 사고 올라앉아 있다가 버스 출발한 후에 차장이 검표하러 오자 그때야 돈을 낸다. 맞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저게 바로 중국인민들의 방식.
아무튼 우리가 탄 버스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2시간 반을 돌아 석림에 도착했다.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노란 꽃이 눈부시게 피어 있는 유채밭과 과수원, 계단식 논이 아름다운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석림 거의 다 갔는데 석림 안에는 먹을 데가 마땅찮으니 점심 먹고 가라며 어느 식당 앞에 내려놓는다(물론 거짓말이다). 거기서 강제로 맛없는 점심을 먹는다(운남 오리구이가 중국 3대 카오야 중 하나라나. 근데 오리 비린내가 몹시 난다고 비교적 비위가 좋은 아들네미까지 불평을 하는군. 비린내가 나거나 말거나 발이 부족한 동물을 무조건 안 먹는 나는 펄펄 날아가는 쌀밥에 청경채 볶은 것으로 대강 배를 채웠다).
관광지로 이미 널리 알려진 석림.... 미녀 현지 가이드들 다수 대기중.
석림은 카스트지형의 전형으로 총면적 350평방킬로에 달한다는데 우리가 관람한 곳은 대석림과 소석림.<세계를 간다> 94년판에 의하면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두 군데 모두 보게 해놓고 입장료를 올렸다.
최하 5미터 이상, 가장 높은 것은 40미터가 넘는 시커멓고 길쭉한 바위들이 우후죽순 솟아나 자칫하면 길을 잃을 정도의 밀림을 이루고 있는 괴상한 곳이다. 다 보려면 두 시간 가량 걸리는데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름도 붙여놓고 전망대와 호수도 만들어 완벽한 관광지로 개발해놓았다.
평원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나는 기괴한 돌숲..
원시적인 경이로움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약간 실망했지만 아무튼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비경을 본 것으로 비싼 입장료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 역시 순조롭지 못했다.
16인승 버스에 열 사람쯤 올라 있어 가장 먼저 출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버스로 다가가자 버스에 앉아 있던 아줌마와 아이들이 몹시 기뻐하며 우리를 맞는다. 우리 네 사람 합치면 열 네 사람이 되니 바로 출발할 것을 기대했겠지(그때가 1시인데 그 아줌마네는 네 시 반 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그런데 웬걸. 잠시 후 기사가 엔진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아직 두 사람이 더 타야 한다는 것이다.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자(3시가 넘도록 놀다 가는 게 보통이라) 다급해진 아줌마가 자기가 두 사람 분 30원을 낼 테니 가자고 조르는데 기사는 요지부동. 흥정 끝에 50원 더 주기로 하고 기사를 일으키니 버스는 두 시 가까이 되어서야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석림을 돌아다닐 때는 길 잃지 않도록(미로 : 길을 잃는다는 뜻) 조심하라고 써 있는데 석림 왔다가는 길이야말로 미로여행이다.
버스터미널로 돌아와 일단 대리행 야간버스 표를 사러 갔는데... 와, 1인당 200원씩이나 달란다. <세계를 간다>에서는 47원이라고 했는데...
흥정을 거듭하여 맨 뒤칸 2층 제일 나쁜 자리로 110원에 받는 데 성공.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시내 중심가로 진출한 우리는 아직 문을 안 닫은 취호공원으로 들어갔다.
곤명 시민의 휴식처인 이곳은 아름다운 호수풍경이 일품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에 2월 16일부터 열리는 세계 꽃박람회 준비의 일환으로 튤립과 난초, 갖가지 이름 모를 꽃으로 잔뜩 장식되어 운치를 더했다.
1시간 정도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이 지방의 특미라는 구어챠오미시엔(過橋米線)을 먹으러 갔다. 책에서 본 대로 진삐루(金碧露) 부근 먹자골목의 과교미선청을 찾아가려는데 도시 재개발로 인해 현재 위치에서 멀지 않은 원통사 부근에 새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름도 바뀌어 신세계과교미선청이 되었는데 그 명성대로 깔끔하고 서비스가 그만이다.
20원짜리 과교미선 세트 네 개와 쓰촨김치 비슷한 쏸차이, 버섯볶음, 돼지족발과 따리맥주를 시키니 복무비까지 모두 139원- 시골음식 치고 싸다고는 할 수 없지 않지만 비싸지도 않은 가격에 푸짐한 세트요리, 모두 만족해하는 눈치다.
과교미선은 명나란가 당나란가 하여튼 옛날에 다리 건너 서원에 나가 공부하는 선비를 위해 식사를 나르던 아내가 하루는 따로 챙겨 들고 오던 야채와 고기를 다리를 건너며 실수로 국물에 떨어뜨렸는데 오히려 그 맛이 너무나 훌륭하여 유래하게 된 음식이라고 한다. 닭을 고아낸 국물에 샹차이, 청경채 그리고 상해엔 없는 이름모를 채소와 버섯, 날 메추리알 등을 샤브샤브 식으로 넣고 쌀국수를 말아 아주 맵고 독특한 양념장을 넣은 것.
식사 후 숙소에 맡겨놓았던 짐을 찾고 버스터미널로 가 화장실에서 대강 양치 세수를 마친 우리는 야간여행을 위해 이층 맨 뒤칸에 짐을 풀어놓고 새로운 진을 쳤다. 왠지 이제부터가 진짜 여행인 것 같은 기분! 중국여행의 진수인 야간버스에 누워서인가 보다.
8시 반에 출발하기로 된 버스는 9시 반에야 터미널을 떠났고 새벽부터 시작한 여행에 지친 우리는 이불에서 땀내가 나든 말든 뒤집어쓰고 곧 곯아떨어졌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도 깨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등 안마 받는 꿈을 꾸면서...
199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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