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雪中高兒夫

張萬玉 2006. 2. 19. 09:30
어제 상하이에 폭설(?)이 내렸다.

어느 정도 내려야 폭설이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상하이에서 하얗게 쌓인 상태로 반나절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면 가히 폭설이라 부를 만하다.

원래 상하이에선 겨울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대신 사흘에 한번 꼴로 비가 내렸지. 

그런데 최근 몇년 들어 비오는 날이 많이 줄어들었고 ('몇십년 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눈이 '날리는'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억나기론, 비듬처럼 두 시간 정도 날리다가 사라졌던 5년 전, 그리고 5센티 정도 쌓여 상해 어린이들에게 '눈이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줬던 재작년 새해 첫날....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상해의 눈오는 날의 전부다. 

 

오전 9시로 부킹이 된 고객들과의 골프 약속을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던 남편이 창밖을 보더니 소리를 친다. "야~ 눈 온다. 폭설이야!!"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걸까. 이미 밖은 하얀 천지로 변해 있었고 거짓말처럼 굵은 눈송이가 하늘에서 푸짐하게 내리고 있다. 남편은 골프 취소될까봐 걱정인데 나는 이 년만에 내리는 눈이 신기해서 어쩔줄을 모르고 카메라를 찾아 돌아다닌다.(근데 충전은 바닥이 났고 충전기는 이삿짐 속에 들어버렸다. 아까비! 상하이에 눈이 내린 이 역사적인 날을 남기지 못하다니...)

 

예상대로 부킹을 해두었던 태양도는 오늘 영업을 안 한단다. 하지만 같이 게임을 하기로 했던 멤버 중 한 분이 태양도 안 되면 부킹 필요없는 서상해라도 가보자고 계속 전화를 하신다. (이곳은 자그마한 나인홀로, 회사가 태양도 법인카드를 사기 전에 싸고 가까운 맛에 자주 갔었는데 안 가본 지가 2년이 넘었다) 색깔 있는 공을 쓰면 게임이 가능하다니 빨리 나오라고 재촉이다.

예정 멤버 두 사람이 빠지는 바람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 이렇게 궂은 날씨엔 대부분 사절이지만 오늘처럼 설원에서 골프를 칠 기회가 평생에 한 번이나 올까...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따라나섰는데....   

 

과연 별미는 별미. 

쏟아지는 눈발을 뚫고 날아간 공은 백색 사방천지 어디에 떨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시야가 흐려서 방향도 잘 안 보이는 데다가 끝까지 방향을 봤다 하더라도 떨어진 공은 눈속에 파묻혀 종적이 묘연하다. 앞에서 치는 사람들이 없으니 발자국도 공자국도 없는 순백의 설원이라 어쩌다 눈에 띄는 검은 자국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오! 있다... 있기는 있는데...

 

마치 김밥 말아놓은 것처럼 또르르 굴러간 자리에 오똑 서 있는 누드김밥형 눈말이 골프공...

공을 발견한 뒤에도 다음 샷을 하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1. 일단 겉에 붙은 두툼한 눈옷을 털어내고

2. 샷에 걸리지 않도록 공의 앞뒤를 웬만큼 쓸어낸 뒤에

3. 발을 탁탁 굴러서 걸어오는 동안 신발창에 붙은 눈얼음을 털어내 스탠스를 안정시킨 뒤

4. 굴러가지 못하는 거리를 뺀 거리를 계산하여 클럽을 선택한 다음...샷!!

(헉, 그런데 몸이 얼어 돌아가지를 않네.. ㅜ.ㅜ)

 

이런 걸 딱 사서 고생이라고 하지... 그러나 이상한 건 이 번잡스러운 놀이가 짜증스럽기는 커녕 재밌게만 느껴진다는 거다. 하얀 눈밭을 헤매며 공도 함께 찾고 치기 나쁜 곳은 서로 옮겨주기도 하면서 꼭 눈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달까. 평소에 퍼팅이 좀 긴 경향이 있는 나는 그린이 젖은 덕분에 적잖이 홀컵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금상첨화였고....

 

그렇게 다섯 홀쯤 돌고 나니 눈이 멎고 서서히 해가 나온다. 두번째 라운딩을 할 때쯤은 눈도 드문드문 녹기 시작하고 제법 훈훈해졌다. 원래 눈오는 날은 거지가 빨래하는 날이라 했던가?

흰눈으로 깨끗이 세수한 대기는 더할 수 없이 청신하고.... 몸은 이미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낀다.

 

상하이에서 마지막 골프... 이렇게 인상적인 게임이 될 줄은 몰랐다.

눈 속에서 골프 쳐보신 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