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7080-9 : 80년 서울의 봄

張萬玉 2006. 4. 12. 12:27

‘80년 서울의 봄'이라 불린 그해 봄....

실제로 대학에는 봄이 찾아온 듯했다.

'짭새'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비상계엄 상태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학교 곳곳에는 대자보가 넘쳐났으며 70년대 민주화투쟁으로 제적, 해직되었던 학생과 교수들도 돌아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운동권) 학생들은 유신정권 시절에 빼앗겼던 총학생회를 부활시키기 위해 각종 집회와 토론, 그리고 학생회장 선거를 조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군부가 쿠데타의 명분을 갖지 못해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이 틈에 학생운동의 조직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현 시점의 급선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야학교사 대부분이 학내활동에 깊이 관여하느라 불철주야 뛰는 입장이니 야학 일은 학교에 적을 두지 않은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아니, 야학을 책임지기 위해 복학을 한 학기 더 미루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더 깊은 문제는 내 속에 있었다. 내 인생에서 대학이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암만 생각해도 도대체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꼭 현장으로 가겠다, 노동운동에 투신하겠다는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질곡의 역사 속에서 떳떳하게 살려면....'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전제하에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에....내 인생의 나침반은 당시의 '안개정국' 만큼이나 무거운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쨌든 '서울의 봄'이 절정에 이르렀던 5월 15일...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일찍 나와 (직장이 여의도였다) 마포대교를 걸어 서대문을 통해 서울역으로 갔다. 마포부터는 이미 신촌 쪽 학교들로부터 쏟아져나온 학생들이 성난 물결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소속이 없던 나는 구경꾼 열에 서서 따라가는 신세였지만 그 감개무량만은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 못지 않았다.

지금이야 정치적인 시위는 물론 작은 이익집단들까지 나서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심지어 개그 무대에 소품으로까지 등장할 정도로 흔한 풍경이 됐지만, 말 한 마디 섣부른 단체행동 하나도 화근이 될 수 있던 군사독재하에서 길들여진 우리 세대에게는 폭력적 진압과 구속이 예상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사람들이 두려움없이 모였다는 사실만도 놀라고 흥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서울역 광장에 전국 10만여 학생들이 운집한 광경.... 참으로 감격적이었지. 내가 이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흥분했던 그날.

그러나 학생운동 지도부의 '회군' 결정(이 사건은 훗날 학생운동 내에 격렬한 노선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소위 '霧林', '學林'이라 불린 조직사건을 불러온다. 이 사건들과의 실낱같은 인연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자못 컸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언급)으로 미진하게 해산해야 했던 그날 자정..... 그것이 ‘서울의 봄’의 마지막이었다.


이틀 후인 5월 17일, 아마도 일요일이었나보다.

교회에 갔는데 '신등교회' 멤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기숙사가 폐쇄되었고 학교가 문을 닫았고 학생회 간부들이 대거 연행되고 운좋게 연행을 피한 애들은 다 숨었다고 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부랴부랴 야학 쪽에 연락을 취해보니 그곳 역시 마찬가지.... 얼굴 내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교사는겨우 두세 명 뿐....

 

계엄령과 탱크의 무력시위 속에서 쥐죽은 듯 숨막히는 몇 달이 흘러갔다. 졸지에 교장이 된 나는 다시 교사들을 모집하고 소모임 수준이지만 그나마라도 수업을 유지하기 위해 외로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불온한 낌새를 챈 교회로부터 쫓겨나 다른 교회를 물색해야 했고 새로 모집한 학생들이 빠져나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강의의 수위도 약간 낮추면서 하루빨리 함께했던 멤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고향으로 잡혀간 그 애도 어서 내 곁으로 돌아와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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