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시간표 관리…연애-결혼도 진두지휘… |
성인 자녀 일상생활-인생계획 결정 부모 늘어
기말고사 '족보'- 기업체 채용일정까지 챙겨
취업 깊이 관여 … 결혼시기도 엄마뜻 따라
"경제적 여유 있을수록 집착하는 경향 보여
자녀출세가 가족 평가기준…돈-시간 투자 " |
지극한 사랑인가, 지나친 간섭인가.
대학생 자녀의 일상생활부터 인생계획까지 모든 결정을 100% 대신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K대 경영학과 06학번 김모씨(20ㆍ여)는 2007년 1학기 시간표를 100% 어머니의 뜻대로 짰다.
골프 수업을 듣고 싶었다는 김씨는 "엄마가 성적이 안 나온다면서 절대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원 스케줄 관리는 물론 친구들의 필기노트까지 직접 빌리러 다녔다.
자신의 소원대로 딸이 명문대에 입학한 후에도 이런 '극단적인 개입'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주위 인맥을 총동원해 수강신청 및 학점관리, 자격증, TOEIC/TOEFL, 해외연수 등 정보를 캐고 심지어 기말고사 '족보'와 기업체 채용일정까지 직접 챙긴다.
김씨의 어머니는 마치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키우듯 딸의 일상사에 깊숙이 자리잡은 채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하고 있다.
김씨의 어머니처럼 교육열이 뜨겁기로 소문난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일대의 극성엄마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학생 자녀의 인생을 직접 '매니지먼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씨가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엄마 덕분에 장학금까지 탔다. 엄마 없이는 대학생활이 힘들 것 같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극성 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대학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개입과 간섭'은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 끝나는게 결코 아니다. 자녀들의 완벽한 대학 생활을 위해 성적은 물론 연애까지 전방위적인 인생설계를 대신한다.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독후감 보고서를 요구하는 서울 S대 조교 김모씨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지난 학기 독후감 성적이 발표된 뒤 한 학생의 아버지가 조교실로 전화를 걸어와 "내 아들이 C를 받았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펄펄 뛰었다. 그는 "내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전문적인 논술교육을 받았다. 도대체 어느 문장이 잘못됐는지 밝혀달라"며 "대학교수인 친구에게도 보여줬는데 C학점짜리 독후감은 아니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조교 김씨는 "조교는 필요없으니 당장 교수를 바꾸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사례는 대학교 1,2학년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심지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버젓이 취직한 성인들도 부모가 만들어준 '인생계획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모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황모씨는 "졸업을 앞둔 자녀의 취업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부모님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2년전 모 은행에 입사한 안모씨(26ㆍ여)의 인생 역시 엄마의 '작품'이다. 안씨는 "엄마가 28세에 시집을 가라고 해서 그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소문난 '퀸카'였던 안씨가 대학 4년 내내 남자친구를 한번도 사귀지 않은 것 역시 "어차피 결혼할 사람은 졸업 후에 만나야 한다"는 엄마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사회 현상에 대해 이종한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 평가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집단주의적 전통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부모의 자기과시의 일환으로 '양식된 자녀'는 성인이 돼서도 정서, 가치관, 행동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부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모일수록 자녀교육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자녀의 출세가 곧 가족 전체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곽승훈 기자 european@ 김지현(고려대) 명예기자 jhkdaniele@hotmail 정상희(서강대) 명예기자 heeya0116@na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