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을 지나다가 구슬픈 피리 소리를 듣고 혹시나 해서 계단을 뛰어올라가 보았다. 역시 그랬다. 인간극장에서 보았던 그 칠레 아자씨. 무대 옆에는 검은 오바에 털목도리로 무장하고 열심히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드는 그녀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냉수로 세수를 한 듯 정신 바짝 나는 또렷한 그녀의 이목구비에 홀린 듯 한발 두발 그녀 옆으로 접근하는 나. 마침 해질녘의 어두워져가는 하늘과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바람 속에서 그들의 공연은 웬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마침 연주되고 있던 곡이 'Siboney'라서 그랬을까?(화양연화에 나왔던 곡) 그럴 이유도 전혀 없구만 공연히 눈시울이 뜨끈해져왔다. 사실 그들의 결혼이 세간에 의외로 여겨졌던 것은 '외국인과의 결혼'이었을 뿐 아니라 '가난한 외국인과의 결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어쩌면 '가난한'에 더 방점이 찍혔을지도 모르겠다) 잘나가는 외국인과의 결혼이라면 그게 인간극장깜이었을까? 재력이 우선시되는 요즘의 결혼풍속에 비추어보면 그녀의 선택은 분명히 대책없는 '에러'로 보일 만하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에 어디 내다놔도 빠지지 않는 미모에 똑똑하기까지 한 그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택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똑똑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모를 밑천으로 재력을 얻는 여자들이 널린 세상이다. 럭셔리한 생활이 행복감을 선물해줄 수도 있고 그 행복에 휩싸여 일생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과연 물질이 주는 행복감이 영혼을 전율하게 하는 행복을 능가할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비굴해지기 쉬운 '삶의 조건'이라는 놈의 콧대를 누르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따라나섰던 그녀, 그래서 오늘도 바람부는 서울역 광장에서 거리의 악사 남편이 연주하는 리듬에 신나게 몸을 싣고 있는 그녀.... 잠시 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감정의 정체는 두려움없는 사랑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스텝을 신나게 밟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한 부러움인지도 몰랐다. 아랫글은 퍼왔음. ----------------------------------------------------------------------------- < THEME STORY Ⅰ >국제결혼에 대한 우리들의 오만한 편견을 벗다 잘나가는 광고 회사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 현재는 회사를 그만두고 라파엘의 공연을 관리하고 녹음 작업 등을 따라다니며 그의 음악을 전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페루 청년이었던 라파엘은 여종숙씨로 인하여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여종숙씨는 그의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하기 위해 회사도 그만두었다. 너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들을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나의 생각은 오만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충무로의 지하철 역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97년 공연 때문에 한국을 찾았던 라파엘 몰리나Rafael Molina, 2003년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그 때 여종숙씨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0월의 어느 날 대림역에서 있었던 안데스 음악을 하는 다른 팀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그들은 각기 그 곳을 찾았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단다. 그러나 다음날 라파엘의 공연장에서 해후한 그들. 라파엘은 그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고 고백한다. 여종숙씨 역시 그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보면서 그의 팬이 되었다. 그 날의 공연에서 라파엘은‘베사메무쵸’를 불렀다. 평소 여종숙씨가 너무도 좋아하던 그 노래를 불렀단다. 당시에 그런 노래를 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라파엘이 여종숙씨의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공연장에서의 모습은 화려하잖아요. 그런데 공연이 끝난 뒤 뒷모습이 애틋하고 안쓰럽고 그러더라구요.”애틋함과 안쓰러움, 그리고 안데스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그들 사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라파엘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당신 좋아요.”라는 라파엘의 고백으로 시작된 그들의 사랑.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음악 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로만 남기를 바랬다던 그녀. 그러나 뒤돌아가는 그의 축쳐진 어깨가 또 다시 안쓰러웠다. 그래서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대답했던 그녀,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3년의 연애 끝에 그들은 서로의 반려자가 되었다. “이 사람이 음악적으로 아주 천재적이거나 그렇진 않아요. 그가 살아오면서 어려움도 슬픔도 많이 겪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단지 기회를 못 만나서 자기 행복을 다 찾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가는 길에 이 사람을 끌어들인다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의 일상을 담았던 다큐에서 그들은‘아기’문제로 작은 다툼을 일으켰던 사실을 떠올렸다. 당시 아이를 갖자고 조르던 라파엘과 한사코 안 된다고 말하던 여종숙씨의 모습이 기억났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하여 다시 한 번 물었다. 반갑게도 변화가 있었다. 여종숙씨는 아직 망설이고 있기는 하나 내후년 중에는 그들의 2세를 가질 계획이란다. 라파엘은 이제 한국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고 여종숙씨가 전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그들이 꼭 그들의 2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넘치는 사랑과 애틋한 눈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생명이 보고 싶다. 얼마 전 그들은 3개월 동안 함께 페루에 다녀왔다. 라파엘의 부모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나라, 페루. 그 곳에서 그들은 서로를 조금 더 알고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친다.“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을 던질 이유가 무엇이 있을지 오히려 궁금해요. 국제결혼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의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내가 접해보지 못한 문화권의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서 그리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그런 점에서 우리의 만남이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어요.”오히려 국제결혼 커플이라는 말이 국제적으로 아주 유명한 두 사람이 만났다는 느낌을 주어 나쁘지 않다고 맞받아치는 그녀다. 이제는 집안 어른들의 우려 섞인 걱정이나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호기심 어린 눈빛 같은 것은 담담하게 받아 들인지 오래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시선에 대한 의식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할 숙제는 각자의 몸에 익숙한 것들을 배우고 익혀나가야 한다는 거다. 타 문화권에 근접하고 이해하고 익숙해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존중하기 위해서는 아마 평생의 시간을 소요해도 모자랄 것 같다는 그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언어소통의 문제는 이 숙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표피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라파엘은 어떤 생각일지 들어보기로 했다.“다른 문화권의 두 사람이 만나서라기보다는 저희 두 사람의 취향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페루에서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건 그다지 주변의 관심을 살만한 일이 아니에요. 저에게도 역시 그렇구요. 셋째 형수는 프랑스인이고, 주변의 친구들 중 독일인 아내나 일본인 여자와 결혼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으니까요. 가끔 아내의 친구들이나 저의 카페 회원들이 우리 두 사람을 정말 특이하다고 말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신혼집에 초대 받은 손님들에게 저희는 백과사전만한 결혼 앨범을 보여주는 대신 남미 뮤지션들의 동영상을 보여주거든요. 그것부터가 남다르게 보인다는 거죠.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아내와 남미 사람인 저로선 이런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우리의 사는 이야기를 읽고 더함도 덜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만큼만 보여 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주변의 나와 다른 현상이나 대상들을 이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요소들로 인식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라파엘의 1집‘디페렌시아-차이 혹 다름’을 발표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다양함을 지속적으로 느끼다 보면 전혀 다른 세계로 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2집 제목은‘Salida-비상구’에요. 음반 작업은 단순히 곡을 정하고 녹음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이것은 라파엘과 나 자신을 여러분에게 소통시키는 큰 도구죠.”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에서‘소통’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소통은 단순히 말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말이 서툰 남편을 위해 스페인어를 배워 대화를 하는 아내. 공연 사회를 보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행복해하는 부부의 모습. 아내가 보이지 않으면 우울하다가도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입가 가득 웃음이 번지는 남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정의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그 하나의 형태를 마치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국적을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들이 빠져 있는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바래본다.
임보연 기자 limby@inewspeople.co.kr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진 녀석이다. 때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들고 때로는 눈물짓게 만들며 때론 다채로운 색을 가진 무지개 같기도 하다가 모노톤의 드라마처럼 무미건조한 색채를 띠기도 한다. 어떤 이는 사랑을 하며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통해서 고통을 잊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이지 신기한 것은‘사랑’에는 그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투영되어 있는 결정체가 바로‘사랑’인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페루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도 어여쁜 모습의 여인이 즐겁게 흥을 돋우고 있다. 그들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부부였다. 지난해 여름 인간극장이라는 휴먼다큐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 있던 그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여전히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라파엘과 그의 음악을 전적으로 후원해주는 여종숙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부라는 운명으로 묶인 채.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그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베사메무쵸‘열정적으로 키스해 줘’
▲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랑 - 그 하나의 형태를 마치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위해서 전화를 걸었던 날, 수화기 건너편으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공연이 있는 날, 인터뷰 약속을 잡는다. 라파엘의 스케줄을 그녀가 관리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 당일 날 그들이 악기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악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폐쇄하여 이수역으로 악기들을 옮겨놓았단다. 그들과 함께 전철을 타고 이수역으로 그리고 악기를 들고 다시 그날의 공연이 있는 충무로역으로 이동을 했다. 모든 것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지하철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라파엘과 여종숙의 2세에 대하여
▲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라파엘과 여종숙 씨
그들의 결혼, 일반적인 시선으로는‘왜?’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타당했다. 지금의 그들이 행복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알게 될 것이다. 라파엘에게 여종숙씨와의 결혼은 페루를 떠나 새로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결단이었고 책임감이었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녀에 대한 그의 애틋한 사랑이 깔려 있었다. 그렇다면 여종숙씨는 어떤 생각으로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을까?
외국인과의 결혼이 관심을 살 만한 일은 아니죠
▲ 연주하는 라파엘과 그를 바라보는 여종숙 씨 - 그들의 사랑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국적이 다르다. 라파엘은 페루, 여종숙씨는 한국. 결혼에도 종류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형태를‘국제결혼’이라고 부른다. 국제결혼을 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안데스 음악, 그것은 그들을 소통시키는 도구
라파엘이 푹 빠져 있는 그의 음악은, 그리고 여종숙씨가 매료되어 버린 그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가 하는 음악은 라틴 음악이다. 그 중에서도 안데스 음악과 중미음악이라고 한다. 안데스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하며 그는‘엘 콘도르 파사’를 이야기한다. 이 음악은 그의 조국 페루의 곡이며 안데스 음악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가장 유명한 곳이란다. 그의 부모, 그의 땅은 바로 안데스 음악이 피고 자란 곳이란다. 그 정서가 자연스럽게 습득되어 있는 음악을 그와 그녀는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그의 팬 카페에는 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두 사람을 걱정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을 느낄 때 행복이라는 단어를 실감한다고 이야기한다.“사람 부자라는 말씀을 어느 분이 하시더라구요. 세상에 우리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우리자신 말고도 이렇게 많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행복했고, 이것이 미래 완료형이길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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