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무슨 '문학의 밤'이 그리도 많았는지...학교마다 교회마다 가을이면 '문학의 밤' 안 열리는 곳이 없었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런 걸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무슨 낭송회 같은 걸 한다고 하면 애들은 다 도망가든지 꿈나라로 갈 것 같다. 종합예술제라고 하여 춤도 추고 밴드도 부르고 하면서 혹시 한두 프로그램 끼어들지도 모르겠지만... 암만 생각해도 요즘 시대에는 안 어울린다.
어쨌든 '낭만이 넘치던' '문학의 밤 전성시대'에 편승하여 문학소녀
장만옥의 전성기는 당분간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시를 아주 많이 썼다. 지금이야 유행가 가사를 읊조리는 게 내 詩魂을 표현하는 전부이지만 ㅎㅎ ...
원체 책읽기를 즐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치셨던 박선생님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 같다. 국어 선생님이라는 명칭보다 문학선생님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그분의 수업시간... 교과서에 나온 시를 낭독하시면 얼마나 즐거운지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오종종한 이목구비... 말소리조차도 조용조용하신 분이었지만 그분 앞에서 아이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요즘 말로 '아우라'가 있는 분이셨던 것이다.
그분 역시 나를 주목하셨음인지 시화전으로, 문학의 밤으로, 교지편집부로 이리저리 불러내시고. 애들이 써봐야 얼마나 좋은 것을 썼겠는가만 정성스러운 감상평과 과분한 칭찬으로 내 문학혼(?)에 불을 지르셨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다 잊었지만 짐작컨대 내가 썼던 시들은 아주 애매모흐~ 하고 함축적인 시어의 집합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습작노트나 시화작품이 한 점이라도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에도 서투른 시나마 몇 편 소개하여 여러 사람 웃길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교내활동을 빙자하여 늘 뭉쳐다니던 대여섯 명의 ‘멤버가 있었다. HOT하면 까무러치는 팬클럽 모양 우리는 ‘헤르만 헷세’로 인해 까무러쳤다.
문학의 밤 준비니 교지편집이니 전국 고전경시대회 준비니... 이 핑계로 만나고 저 핑계로 만나면서 우리는 공연히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운동장 스탠드에서 노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하거나 문학토론(사실은 군것질과 수다였겠지)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행사준비가 없어도 도서실 지정석에 가면 늘 멤버들이 모여 있다. 수업시간 중에 그럴듯한 싯귀가 떠오르면 쉬는 시간에라도 달려가 함께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고.. 그야말로 죽고못사는 사이였다.
사춘기 때는 부모도 뒷전이고 그저 친구라면 좋아 죽는 시절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 시기에 합당한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킨 듯하다. 이 범생이 문학소녀들은 내 사춘기 1群의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 강력한 영향을 준 2群 친구들은 뒤에 소개하겠다)
이 시기의 얘기는 칼럼 카테고리 ‘**의 추억’ 중 ‘사춘기의 독서’와 ‘회개의 추억’으로 대치하고자 한다. (원래 범생이 얘기는 다들 재미없어 하는 줄 잘 알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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