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미숙이 1

張萬玉 2004. 12. 10. 15:03

미숙이와 만나게 된 것은 교회 중등부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예배시간에... 교회가 아닌 교회 근처 분식집에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남학생 여섯 명 여학생 여섯 명으로 구성된 ‘멤버’들과 함께....


그 애들이 눈에 들어온 건 어느 봄날, 예배를 마치고 중등부 전체가 멀지 않은 야산으로 소풍을 나갔던 때로 기억한다.

그때 나는 오빠가 치는 통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워 노래만 알면 뭐든지 반주가 가능했기 때문에 판만 벌어지면 물 만난 고기처럼 당시를 풍미하던 통기타 가수들 노래를 끝도 없이 뽑아내며 분위기를 이끌던 (sing along-한참 유행했던 청소년들의 놀이방식이었다) 우리동네 최고의 가수였다. 그런 판을 깨고 新星이 나타났으니...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일단의 그룹 중에 기타를 들고 온 남학생이 있었다. 노래를 시키자 내 ‘막걸리 기타’(막걸리 마시고 부르는 노래의 반주처럼 간단한 비트로 일관하는 반주를 말함)와는 비교되지 않는 고급스런 주법이 흘러나왔다.

“어제 나는 슬펐네.... 그 여인은 떠났네...”


사방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고 그 아이의 뒤에선 후광이 빛났다.

J라고 했다. 교모를 납작하게 찌그러뜨려 눌러쓰고 판탈롱형 교복바지를 입고 다니는... 한눈에 봐도 날나리 티가 나는 애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어도 잠은 안 오고 그 애의 기타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어떻게 말을 붙여보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지?

저 애랑 듀엣을 하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당시 ‘라나에로스포’니 ‘뚜아에 무아’니 하는 혼성듀엣이 한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친한 척 할 순 없잖아. 존심도 존심이지만 아마 나같은 애는 붙여주지도 않을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괜히 외로움이 솟구친다. 못난이!! 어린애!!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열등감의 공습을 받고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너무 화가 나서 이불을 푹 뒤집어쓸 수밖에...


그 애는 너무 멀리 있었다. 걔와 함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무리의 애들은 기존의 교회 멤버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다녔는데, 모두 복장불량, 태도불량한 녀석들이었다. 그 중에는 고속도로 머리를 한 여자애들도 두엇 끼어 있었다. 그 애들이 볼 때 나는 얼뻥하고(순진하다는 뜻이다) 칠칠맞고(그때까지만 해도 칠칠치 못한 건 여전했다) 여드름 투성이인 데다가 예배시간에 떠들지 말라고 잔소리나 해대는 ‘밥맛없는’ 애일 터였다.


기타리스트 J에게 가까이 가려는 마음은 그 일당들 내부의 역학관계를 집요하게 살피기 시작했고 곧 미숙이라는 아이를 발견해내었다.

 

미숙이.. 그 애는 내 사춘기를 함께한 또래집단 2群의 보스였다.

찐빵같이 두툼한 얼굴에 역시 두툼한 눈두덩... 노르끄레한 머리카락에 메기처럼 큰 입, 육감적인 입술... 살짝 내려깔고 옆눈으로 흘겨보는 시선 등등... 결코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술맞다거나 도도해 보이는 쪽으로 불쾌감을 줄 만한 그런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 애에게는 애교 넘치는 미소가 있었다. 머리통은 컸지만 키도 자그마하고 손발도 자그마한 데다 제스처에는 귀여움이 넘쳐흘렀다. 주변에 그럴 듯한 남학생들을 몇이나 거느리고 다녔고, 그 틈에 끼고 싶은 바람난 여자애들이 앞다투어 그애의 ‘꼬붕’이 되었다.


그 카리스마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설득력 있는 말솜씨였을까? 배 째라는 깡다구였을까? 화끈한 의리였을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대범함과 솔직함이었을까?

아니... 그 애는 사춘기 또래집단 리더가 가져야 할 그 모든 덕목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걔의 간택을 받아 그 집단에 끼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나는 J와 친하고 싶어서 그애에게 접근을 했다가 그 애와 단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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