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D-(-)87 : 드디어 지르기 시작

張萬玉 2007. 11. 16. 18:24

아침에 무지하게 바빴다. 차를 두고 왔으니 아침에 출근 좀 시켜달라고 남편이 청하는데, 나는 세일기간에 백화점 문 열기를 기다리는 아줌마처럼 오늘 아침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중요한 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꼽아두었던 순간이었는데 남편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아 남편보다 십 분 일찍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것이 무슨 순간이었냐면.... 바로 여행용품을 판매하는 웹사이트 '트래블메이트'의 주말장터. ㅋㅋㅋ

 

집에 배낭이라고 있는 게 거반 30년 전에 구입한 구닥다리라 낡고 추레하기도 하지만 끈이 가늘어 암만해도 장시간 메고 다니려면 어깨가 아플 것 같아서 새로 하나 구입할 작정이었다. 

좋은넘으로 사려고 몇군데 뒤져보다가 에이, 내가 무슨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그냥 오불당들이 애용하는 거 쓰자 하고는 트래블메이트를 찾았더니 주말장터(금요일~월요일 오전 10시)를 이용하면 만 육천원 싸다는 광고가 걸렸더군(그게 지지난주 주중의 일이었다). 그럼 이번주말에 사야지 했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일요일 밤에 클릭했더니 품절이란다. 이번 주말엔 잊지 말아야지....

그게 오늘 아침이었다. 왜 하필 남편이 출근시켜달라는 오늘 아침이냐고오..(아니, 거꾸로 됐나?)

암튼 마음 먹었던 일이기에 필요한 몇 가지와 함께 서둘러 장바구니에 담고 잽싸게 결제를 했것다. 아침밥 차려먹이느라고 오락가락하는 중에 성급하게 이루어진 쇼핑이었다. 

 

 

               

          

 배낭 45리터                                보조배낭 5만 8천원                              도둑방지 및 우천시 대비

8만원짜리 주말장터에서 6만4천원    접으면 씨디케이스 크기/심히 가벼움      배낭커버 8000원  

 

                             

 

잘 마르고 작게 접히는                 세계의 날짜와 환율, 계산기 겸용     접이식 수저, 포크 나이프

스포츠타월 2종세트  9,800원          알람시계 11,000원                       (깡통따개, 병따개 장착) 7,500원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쓸 수 있는                                        옷 속에 감춰 착용할 수 있는

멀티 어댑터 세트22,000원(갈곳에 따라 골라 휴대)                 안전복대 7,500원

 

헌데 결제 클릭을 하는 순간 갑자기 배낭가격에 주말장터 가격이 반영 안 된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자동계산되니까 맞겠지 하고 자세히 안 봤는데 암만해도 찜찜하다.  

남편을 데려다주고 돌아와 다시 창을 열고 계산해보니 확실히 할인가격이 반영이 안 됐더군. 에고, 덜렁이... 찜찜하면 스톱해야지 그냥 막 가면 어떡하냐?

근데 어쩐 일이지? 이벤트 취소 광고도 없는데.....혹시 이 자들이 사기치는 거?

한참 들여다보고 알아냈다. 쿠폰적용가격을 콕 찍지 않은 거였다. 으이그, 할매!

 

얼른 전화를 했더니 결제 총액이 203,800원인데 주말장터 가격을 적용하면 187,800원이니 16,000원을 환불해주겠단다. 두말도 없다. 상냥한 아가씨 같으니라고....

아, 그런데 잠깐! 20만원을 넘어가면 만 원이 할인되는데 배낭을 장터가격으로 할인받으면 만원 추가할인혜택을 못받게 되잖아. 아가씨, 잠깐만요....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할께요.

 

만 육천원을 아끼려다가 오히려 만 삼천 팔백원을 더 쓰는 뻘짓.... 이것이 오늘날의 쇼핑풍습이렷다.

쓸데없는 거 잘 안 사는 장짠순씨, 할인혜택 안 받으면 손해보는 것 같은 이상한 상황에 밀려 다른 것들을 더 사야 하는 이유를 찾기로 결심한다.  

 

까짓꺼, 몇 푼 된다고.... 일단 제품들이 다 콤팩트하잖아.

그래, 여럿이 쓰는 도미토리에서 빨랫감 봉지 부스럭거려 남의 단 잠 깨울 일 없지.

그래, 컵 하나 있으면 편할꺼야. 커피나 스프도 끓여먹고.... 접으면 부피도 안 나가잖아. 

그래, 30그램밖에 안 나간다니..... 끊을 수 있는 나이롱줄보다 쇠줄이 낫겠지.

 

'저기요.... 환불해주지 마시구요... 그냥 요것들 챙겨주세요.'

 

 

      

 

속옷, 양말, 빨랫감 등을 싹 정리해주는   다용도 접이식 스텐컵              다용도 와이어(1.5m)+

양면 웨어팩 16,800원                           4,320원(이것도 장터가격)        미니번호 자물쇠 B형 4,700원

 

 

아뜨뜨.... 자백할 게 하나 더 있다.

엊그제 결국 방한용품에 좀 질렀다.

내년 2월이면 우리나라 반대쪽에 있는 남미는 한참 더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다. 적도가 지나가는 동네나 카리브해쪽은 뜨거운 여름이지만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들은 여름에도 오슬오슬 추운 데다 우유니사막의 밤은 난방시설도 없는 숙소에서 영하 20도에도 못미치는 강추위와 싸워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즉 사계절 옷을 다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얇은 옷이야 몇 벌 더 챙긴다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그 며칠밤 때문에 챙겨가는 뚱뚱보 패딩이나 침낭은 여행길 내내 애물덩어리가 될 터.... 그렇다 해도 호흡도 곤란할 고산지대에서의  냉동수면은 절대 사양이다. 우짜믄 좋겠노.

 

할 수없이 기능성 의류 쪽으로 눈을 돌린다. 부피는 크지 않지만 강력한 보온성을 약속해주는 윈드 스토퍼 한 벌, 방풍방수 효과가 뛰어나면서도 가볍고 접어도 비교적 얄팍한 고어텍스 자켓 한 벌, 기능성 내복 한 벌.... 마침 세일기간이어서 저렴하게 사가는 거라는 축사(?)를 들으며 50여만 원어치 질렀다.

제품을 아는 사람들은 크게 지른 것도 아니라 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정장 한 벌도 없는 나로서는 대단히 큰맘 먹은 거다. 한번 장만해서 5개년 여행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입으려고....

특히 자켓은 늘 비가 뿌리는 유럽 쪽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입을 것 같다.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든다.

이로써 묵직한 배낭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았다.

 

주초에는 일본을 거쳐 멕시코를 왕복하는(뱅쿠버 스탑 안 함) 항공권도 끊었다(146만 원, 세금 등 별도).

챙겨야 할 물품들도 거반 확보했으니 당분간은 들뜬 마음 저만치 밀어두고 열심히 체력단련,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다. 장기부재가 미안하면 그동안 가족들에게 꿀이라도 좀 듬뿍 발라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