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블러그 아이러니 3 - 시소 타기 1

張萬玉 2005. 1. 29. 15:49

내적인 동기와 외적인 조건이 맞아떨어지자 미련없이 까페를 탈퇴해버렸다.

 

갑자기 탈퇴를 해버리자 짧지 않은 세월 우정을 쌓아온 ‘網友’들의 충격이 컸던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 연일 허접한 개인홈페이지에 도배를 하니, 언니 오빠 조카까지 드나들며 안부를 묻는 곳이라 영 보기 민망하여 당분간 화풀이 뒷풀이할 만한 곳을 찾았다.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눈에 띈 것이 칼럼이라는 공간.

칼럼은 마땅히 칼럼다워야 하겠지만 일단 나의 소용에 닿았으니 이것은 국을 끓이든 밥을 삶든 확실한 나의 공간.... 누가 뭐라겠는가.


애당초 ‘내가 관계를 보존하고 싶은 친구들’ 을 만나는 것 외에 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당시 칼럼니스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독자들은 무엇이며 유저로서의 불평은 또 무엇이냐... 그냥 갖고 놀면 되지, 왜 이런 문제제기가 왜 필요하지?'

또 써보니까 긴 글 쓰기를 선호하는 내 취향에도 적합했다. 혹시 독자가 있어준다 해도 까페 게시판만큼 독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그 단순무식한 생각에 크게 변함이 없다. 일천한 아마추어의 의식수준이 그렇지 뭐. 그러나 시야가 조금 넓어진 것 같긴 하다. 블러그라는 것을 하나의 대중매체로 인식하게 되고 이렇게 리뷰도 시도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아이고, 또 거창하게 판 깐다~ 어찌 감당하려구..ㅎㅎ)


이제 본격적으로 블러그(칼럼) 분석에 들어가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블러거의 심리분석 쪽이 맞다. 블러그냐 칼럼이냐... 이런 종류의 문제의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중독 3기에 접어들 듯한 위기감으로 블러거의 한 사람인 나 자신을 분석해보고 싶은, 그래서 잘 통제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을 객관화시켜보고 싶은, 그래서 결국 ‘내게 블러그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끌어내어 내 생활의 불균형을 합리화시켜보고 싶은 심정 때문일지....   


블러그는 ‘시소’라 푼다.

(시소님, 이 제목 보고 경끼하실라)

내가 어린 시절에 ‘재치문답’이라는 라디오 프로가 있었다. 그 프로의 한 코너를 연상하게 하는 제목을 한번 달아봤다. 상반되는 측면이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소... 그 아이러니한 두 측면을 대비시키는 포맷으로 분석을 진행해보기로 한다.

(허허, 점점 더 거창하게 판 까네 그려... 도대체 뭐가 나오려고 이러나... ㅎㅎ

 이것이 나름대로 스타일을 추구하는 만옥이가 노는 방법이다.)   


1. 익명성 VS 커밍아웃


인터넷 동네에는 익명성이 기본예절 비슷하게 되어 있다. 해커나 스패머나 스토커 등등 골치아픈 무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시스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익명의 바다에서 숨겨진 자기 욕구를 마음껏 실현해보라는 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익명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인 필자-독자의 ‘관계’가 형성되면 막연하게나마 독자들은 필자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한다. 특별한 분야의 매니아거나 선문답의 고수들 사이에서가 아닌 이상.... 최소한 상대방의 나이, 성별, 하는 일 내지 노는 동네 등등을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명성을 추구하려면 아주 완벽하게 익명성을 추구해야 한다.

 

익명성의 매력은 일일이 들지 않아도 독자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실 것이다.

통쾌한 솔직함, 금기를 뛰어넘는 엑스터시, 필요할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해꼬지, 무책임한 부화뇌동의 쾌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신선한 흥분, 아무 방해없이 가라앉을 수 있는 퇴폐와 무기력의 심연 등등...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 마음의 평안을 주는 익명성은 독자 입장에서 불만을 가져다준다. 충분한 신뢰나 친밀감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로 이야기의 뒷면을 슬쩍 뒤집어보거나 불가능하면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버리는 수밖에....


대부분의 필자들은 좀 어정쩡한 길을 택한다. 익명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여 '해우소'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끔 자기 신변 얘기를 칼럼의 소재로 삼거나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과정에서 점차 익명을 포기함으로써 닉네임만 사용할 뿐 오프라인에서의 모습을 거의 드러낸다. 그러면서 할말과 안 할말을 가리게 되고 위험한 소재를 다룬다 하더라도 깊이 천착하지 않으며 뾰족한 말을 꺼내려면 한번 갈아내는 지헤를 짜내게 된다.  

 

온-오프 생활의 일관성이 느껴지면 인간적인 신뢰와 친밀감이 생기게 되는 건 인지상정... 이것이 커밍아웃 노선의 장점이다. (꾸준히 전문적인 지식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사람들 역시 개인적인 면면은 알 수 없어도 그 성실성을 통해 저절로 신뢰를 쌓게 된다).


크게 보면 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외향적이고 좀 뻔뻔한 구석도 있을뿐더러 산전수전도 대강 겪었기 때문에 '인간사에 뭐 그리 낯가림하거나 금기할 일이 있을까, 솔직한 게 최고다.... ' 스스로는 대담한 척 그렇게 여기는 편이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커밍아웃은 외줄타기 같이 어려운 길이다.

커밍아웃을 하려면 자신의 약점이나 충동을 잘 다룰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발언도 조심해야 하고 실수도 가능한 적어야 한다. 필자들을 의식해서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면 최소한 자신에 대해 충분히 너그럽기라도 해야 한다. 


물론 생래적으로 단순명쾌건전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별로 문제가 없지만 그런 이가 얼마나 되나. 대부분이 어둡고 밝은 두 얼굴이 있으며 일상에 충실하려고 애쓰면서도 일탈에 대한 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부지런에 찬 날도 있지만 만사가 다 무의미한 황폐한 날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단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면 망가지고 싶을 때 마음놓고 망가질 도리가 없다. 자칫 지나치게 망가져버렸다간 뒷감당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도 가끔 익명성을 그리워하며 다른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까 하는 쓸데없는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 어휴, 왜 이렇게 주저리가 길어지는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아무래도 두 회 정도는 더 써야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