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 놀러왔던 친구가 마지막날 신세(!) 갚는다고 쎄게 한방 쏘겠다고 큰소리 치데요.
상해 물가가 얼마나 쎈지 모르고 겁도 없이 그런 소리 하냐고 손사래를 쳤더니만, 자기도 입소문 요란한 '제대로 된 광동요리' 구경 한번 하고 싶다는 거예요.
하긴 그 친구 요즘 주머니사정이 괜찮다는 풍문도 있고 해서 '좋다, 그럼!!'하고 수소문 해봤지만(제가 비싼동네 사정엔 밝질 못해서리...) '제대로 된 광동요리'라는 조건 때문에 '여기야!'하는 확신 드는 곳이 잘 안 떠오르더라구요. 중국생활 8년차라고 해도 제가 가본 고급 광동요릿집은 (그것도 VIP 접대차 갔던) 화산로 정향화원 안에 있는 신오헌뿐이거든요.
근데 예약하려고 보니 설 대목이라 그런지 사흘 전인데도 예약이 다 끝났더군요.
할수없이 인터넷 두들겨 찾아낸 곳이 衡山路 부근 建國路와 永嘉路 사이의 名軒... 코스요리가 288원부터 888원짜리까지 있더군요.
흠~ 그 정도라면.... 하고 예약을 했죠. 주방장도 국제요리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진 홍콩인이라고 하니 친구도 분명히 만족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가보니 아주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4성급호텔 安亭別墅 안에 있더군요. 세 개의 건물 중 1號樓인 이 건물만 1934년 스페인 풍으로 지어진 저택이고 나머지 별장식 고층 호텔 건물은 최근 지어진 것들... 일단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예약할 때 미리 2층이나 3층으로 해두는 건데.... 몰랐거든요.
1층은 분위기고 뭐고 없습디다. 좀 답답했죠.
앗, 그런데...
제가 테이블당 가격으로 알았던 코스요리 가격이 사실은 1인당 가격이군요. 원래 뱃심 두둑하게도 888원짜리 최고급을 맛보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이렇게 되면... 다섯명분, 거의 5000원 정도 든다는 얘기고... 제가 낸다 해도 속이 좀 아플텐데 친구에게 그렇게 바가지를 씌울 수가..
궁리 끝에 맘껏 시켜라고 큰소리치는 친구 몰래 288원짜리 세트 두 개 488원짜리 세트 세 개, 그리고 소흥주 두 병을 시켰죠.
음식은요?
음식은 훌륭했죠. 아기 밥상처럼 조금씩 나와 처음엔 좀 실망했지만 두 가지 세트를 섞어 열 네 가지 요리를 맛보다가 보니 어느새 배가 부르긴 하더구만요.
자, 요리 구경 하실까요?
첫번째 접시는 야채샐러드. 소스가 마요네즈 비슷했지만 과일맛이 더 풍부합니다.
두번째 접시는 말로만 듣던 제비집 스프입니다. 위에 국수처럼 보이는 것은 살짝 데친 숙주인데 따로 서빙되어 먹을 때 넣습니다. 보기에는 느끼할 것 같았는데 담백하고 부드럽고... 노약자 보양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번째 접시는 쇠고기와 새우를 넣고 춘권피 같은 것으로 말아 아몬드를 붙인 뒤살짝 튀긴 것입니다. 와사비소스를 찍어먹었던가? 암튼 맛있었습니다.
네번째 접시는 해삼, 전복, 브로컬리에 우스터 소스 비슷한 것을 얹었습니다. 재료는 비싼 거겠지만 제 입맛에는 좀 느끼했습니다. 다섯번째 접시를 잘 보세요. 가운데 있는 가이바시(키조개)를 둘러싼 하얀 물체는 무엇일까요? ㅎㅎ 연두부를 동그랗게 오렸네요. 이런 거 보고 요리를 예술이라고 하나요? 소스에는 게살이 듬뿍 들어 있더군요. 아주 고급스러운 맛이었습니다. 여섯번째 접시는 아스파라거스와 백합뿌리를 볶은 것입니다. 아삭아삭하고 담백한 맛... 제가 좋아하는 싱거운 요리입니다. ^^
두둥~~ 말로만 듣던 상어지느러미 스프입니다. 밥 한공기를 같이 주더군요. 아래에서는 알콜램프가 파랗게 타오르고... 보글보글 끓는 스프에 밥을 넣어 먹으니... 과연 오늘의 요리 중 최고라고 할 만 하더군요. 흠~ 노약자 보양식 같은 맛이에요. 마지막은 망고푸딩입니다. 보통 중국음식점에서 디저트로 많이 나오는 메뉴이기는 하지만 치즈도 넣었는지 아주 풍부하고 향긋하더군요. 살이 막 찔 것 같은 디저트이지만 한수저도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었답니다.
아래는 288원짜리 세트인데요... 샐러드는 같고 두번째 접시는 땅두릅과 마른새우 튀김, 한천 비슷한 것이 담긴 냉채 세번째 접시는 쇠고기 스테이크. 육질은 최고였구요... 소스는 달작지근한 양파소스였습니다. 네번째 접시는 떡볶이가 되겠네요. 배추와 떡을 볶아 매콤달콤한 소스를 한 것. 다섯번째 접시는 아스파라거스와 새송이버섯을 함께 볶은 것입니다. 사진을 안 찍어서 위의 세트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여섯번째 디저트는 같았습니다.
우리는 288원짜리와 488원짜리를 마구 섞어 먹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 세트만 시켰더라면 좀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그리고 과일과 술인데요...소흥주 컵을 잘 보세요. 술은 왼쪽 흰컵에 담겨져서 뜨거운 물이 들어 있는 그 옆의 붉은 컵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맨 오른쪽 붉고 작은컵이 뚜껑으로 닫혀져 서빙되죠. 뜨거운 물을 계속 갈아주어 따끈한 상태로 소흥주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답니다.
나올 때 2170원 지불했습니다. 한번은 와도 두번 다시 올까 싶은 기분... (송충이에게는 역시 솔잎이 최고.^^)
돈 낸 친구 소감을 들어보니.. 돈은 한국에서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했던 광동요릿집은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네가 생각했던 광동요릿집은 어떤 것이었냐고 물었더니 해산물이며 각종 엽기음식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사람도 우글우글 시끌벅적하고 푸짐한 곳을 상상했었다나요.
글쎄, 광동에는 그런 곳이 있을지 모르지만 상해에 그런 곳이 있을까요? 혹시 한국사람들이 중국의 음식점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아닐까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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