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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톰은 8~11세기 번성했던 앙코르왕조의 도성 유적지라고 한다.
앙코르 유적지 한번 가보고 싶다고 몸살을 앓는 친구들이 하도 많았기에, 멀리 사면상이 보이는 앙코르톰 입구에 차를 세우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기분이다.
이 도성에는 온갖 괴물이 다 모여 있다. 악신과 선신이 머리 일곱 개 달린 뱀을 붙잡고 줄다리기하듯 늘어서있는 다리를 건너, 머리 셋 달린 코끼리가 지키는 남문을 지나, 도성 중앙에 위치한 바이언 사원으로 들어서면, 팔 열개 달린 새의 신 가루다 위에 머리 넷 달린 부처님(가이드는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이라고 설명)의 머리가 관광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머리만 있는 부처님 자체도 낯선데 이 부처님 머리를 이고 있는 탑이 한두 개가 아니라 사원 전체에 우후죽순 솟아 있으니 느낌이 좀 기괴하다. 부처님의 얼굴도 그렇다. 그 미소나 표정은 분명 우리 눈에 익은 그것인데 사방을 볼 수 있다는 사면상으로 만들어 놓으니 꼭 힌두교에 등장하는 잡신(?)처럼 느껴진다.
이 사원은 앙코르제국의 종교적인 내분을 종식시키고 불교와 힌두교의 화해를 이끌어낸 위대한 자야바르만 7세의 작품으로, 두 종교의 양식이 잘 결합된 유적이라고는 하나 내가 보기엔 힌두교 냄새가 더 물씬 풍긴다. 얼른 사원 3층부터 올라가 이 낯선 사원의 전모를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아키가 이미 벽화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원 1층 왼쪽 화랑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벽화는 전쟁을 중심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갑옷을 입은 것은 중국계 병사(현재도 캄보디아 국민들 중 30% 이상이 중국계라 함), 윗옷을 입지 않고 귓불이 큰 것이 크메르계 병사, 배를 타고 있는 것은 베트남 적군, 수레바퀴가 고장나 멈춘 사이에 냄비를 걸어놓고 돼지를 잡는 병사들, 아이를 낳는 여자와 부상을 치료하려고 약초를 달이는 사람들 등등.... 설명과 함께 보니 벽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네..
이끼가 두텁게 내려앉은 돌기둥과 복도를 지나 3층으로 올라가니 내 키만한 사면상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벽돌을 쌓아 만든 얼굴에 이렇게 오묘한 표정을 담을 수 있다니...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그 옆 사원은 힌두교의 영향이 더 두드러지는 사원이다. 시바, 비쉬누, 브라마 신의 조각들이 즐비하고 책에서 본 적 있는 링가가 모셔져 있다. 유난히 한쪽 벽 불상들만 손상된 것이 눈에 띄어 물어보니 힌두교를 신봉하는 왕이 집권을 하면 불상들을 여지없이 파괴해버렸다 한다. 인류에게 종교적 맹신, 이념적 독선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벽과 기둥엔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는데, 원래 보석을 박아넣었던 자리라고 한다.(정마알?)
다음 장소는 자야바르만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건립한 따쁘롬 사원인데, 발견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미복원상태라고 한다.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정글사원’이라는 애칭답게 수령 500~600년의 나무들이 사원과 세월을 같이하고 있다. 새똥 비료를 찾아 돌 틈을 비집고 뻗어나간 나무들은 이제 거대한 몸집으로 사원을 휘감으며 건물의 붕괴를 막고 있다. 나무 때문에 사원이 무너져가고 있지만 이제는 그 나무를 치우면 사원이 붕괴될 지경이라 한다.
어디서 읽은 표현이 생각난다. '돌과 사원의 완벽한 공존’... 그러나 저 포악스럽기까지 한 생명의 힘 앞에 인간의 조형물은 애들 장난감 같다는 생각을 하니 약간의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어린왕자의 별을 파괴해버린 바오밥나무 생각도 나고...이 사원은 두고두고 꿈에 나타날 것 같다..
얼마 본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무슨놈의 겨울이 이렇게 덥담.. 점심을 먹고 땡볕을 피해 호텔에서 잠시 쉬란다. 마침 카메라 배터리도 다 됐는데... 잘 됐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토끼잠 잠깐.
오후 관광은 앙코르왓에서 시작되었다.
앙코르톰보다 더 전에 설립된 이 사원은, 전쟁시 앙코르제국을 접수했던 敵이 다름아닌 불교를 신봉하는 시암제국이었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좋다고 한다. 잔잔한 호수와 호수에 비친 앙코르왓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마치 예술품을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사원에 도착하자 아키는 우리를 너른 뒷뜰이 내려다 보이는 담장에 걸터앉으라고 하더니 옛날얘기를 시작한다.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앙코르왓 1층 벽화에 새겨져 있단다. 예쁜 시타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선한 라마와 악한 마하바라타가 싸움을 벌이고 어쩌구..... 진 사람은 '정글로 쫓겨가고'.... 이 대목이 인상적이다. 아마 자연과 맨손으로 싸워야 하는 정글로 쫓겨난다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무서운 형벌이었나보다.
예습을 마치고 벽화구경을 한다. 아침에 봤던
것보다는 재미없다. 나는 픽션보다 넌픽션 다큐멘타리를 더 좋아하거든... 그래서 그런지 일본이 돈을 대고 있다는 복원공사 현장이나 크메르
루즈군에 의해 생긴 총알자욱에 더 시선이 간다.
이 사원의 2층을 지나 중앙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정말 인상적이다. 가파르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기어 올라가야 한다. 왜 이렇게 가파르게 만들었을까. 신에게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을까. 실제로
50계단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데 올라가다 멈추니 멀미가 나려고 한다.
중앙탑에서 바라본 앙코르왓 정원... 마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서 하늘빛도 고즈녁하고 아직도 관광객이 바글바글하건만 웬지 모르게 착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마음 깊은 곳의 감성을 건드린다. 개인史에서 그리도 집착하던 모든 것... 야심도 영화도 덧없고 덧없다. 그러나 이렇게 그 흔적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하긴 알 수 없는 일이다. 미약한 인간사가 언젠가 정글의 무시무시한 나무에 덮이고 언젠가 빙하에 묻혀버릴지... 천 년 후에 인간의 자손들은 이곳을 찾아낼 수 있을까...
Sunset Hill에 가야 한다는 아키의 독촉에 따라 우리는 프놈바켕으로 간다.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앙코르에 온 관광객들이 이제 마지막 코스로 다 모여든 듯 작은 야산이 각색 인종으로 덮였다. 중앙탑만큼은 아니지만 이 야산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70도 경사쯤 되려나..
올라가는 길목에 맹인 악사들이 모여앉아 캄보디아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고 특이한 캄보디아 전통악기를 쳐다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아쉽다.
하루종일 걸은 다리가 통나무처럼 무겁다. 남편 허리띠를 잡고늘어지며 간신히 언덕에 올라가니 마치 일몰을 보는 관객석을 마련하기나 한듯 시야가 확 터진 탑 옥상(?)이 펼쳐져 있다. 한쪽 자리를 비집고 앉아 붉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오늘의 마지막 태양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다.
일몰을 준비하는 하늘도 아름답지만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울고 싶을 정도다. 우리 옆에 다정하게 어깨를 붙이고 앉아 같은 책을 읽고 있는 프랑스(?) 커플... 너무나 로맨틱해보여 모올래 사진 한장 찍었다. 여기 앉아서 하는 사랑의 맹세는 영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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