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최소 8명이 강도에게 총을 맞는다는 과테말라 시티.... 벌건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대로에서 총부리에 옆구리 찔려 지갑 내주는 정도는 놀랄 만한 일도 못 된다는 그 곳.
거기서 밤을 지내지 않으려면 여기서 아무리 늦어도 아침 9시 전에는 출발을 해야 한 시 반에 출발하는 Tica버스(판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달려 파나마까지 가는 국제버스)를 놓치지 않을 거다. 그러나 직접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는 여행사버스는 9시 반에야 나간다고 하니....
에휴, 좀 불편해도 그냥 로컬 버스 타고 시티까지 가서 터미널까지 택시 타자.
설마 그 잠깐 사이에 강도가 들 운이라면... 어쩔 수 없지 뭐. 마지막인데 한번 빡세게 낑겨보자구.
로컬버스 종점은 시장골목 아래 공터에 있다. 종점에서 탔기 때문에 다행히 자리를 차지했지만 8시 버스는 언제나 장사 나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게다가 오늘은 산타 끌라라의 장날이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2인승 의자 네 명이 나눠앉아 출발했지만 산타 끌라라 지나니 버스가 텅 비었다.
저랑 같이 한번 신나게 달려보실래요? 앞지르기도 하고 차선위반도 하면서... ㅎㅎㅎ
과테말라 버스 차장보다 개인기가 뛰어난 차장이 또 있을까? 문열고 달리기 문에 매달려 가기는 기본, 뒷문으로 내렸다가(짐 내려주느라고) 뒷차에 밀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면 총알같이 앞으로 달려가 매달리는 솜씨를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휘파람 솜씨는 또 어떻고...
과테말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휘파람은 제2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는 사람 지나갈 때, 잠깐 나좀 보자고 부를 때, 이제 그만 가자고 할 때, 예쁜 아가씨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이 경우 부는 휘파람은 좀 다르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누르고 불어댄다) 차장들도 차선 바꿀 때나 내릴 사람이 있을 때나 버스 문 열어놓고 달릴 때나... 시도때도 없이 불어댄다. 휘파람 소리도 새 소리처럼 다채롭다. 새가 많은 동네라 그럴까?
옆집 아저씨 차 얻어타고 시장 가는 아주머니들
오늘도 이 구간은 꽉꽉 막혔다.
오늘 일꺼리 좀 없냐고오~~
여행사 버스는 물 버려야 한다고 하면 중간에 세워주지만 로컬버스는 그런 거 없다. 아마 과테말라 시티까지 가는 사람이 드물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정거장에서 나좀 잠깐 기다려주면 안 되냐고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꾹 참았다. 4시간이나 걸리니 최대한 비우고 버스에 올라야 한다.
과테말라 지역에 들어오니 완전히 딴 세상이다. 쇼핑몰들도 미국 영화 속에 나오는 그것들처럼 널찍널찍 자리를 잡고 있고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고급주택가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강도 얘길 하도 들어놔서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 도시를 안전하게 뜨는 일.
과테말라 아줌마를 따라 좀 안전하다는 쇼핑가에서 내리니 택시가 바로 따라붙는다. 눈에 잘 안 띄던 택시가 여기 다 모여 있네. 화장실이 급하지만 배낭 메고 돌아다니다가 사고 터질까봐 빨리 안전지대로 이동하기로 한다. 버스편도 모르겠고....
택시 타고 10분 정도밖에 안 간 것 같은데 50께쌀이나 달란다. 과테말라에서의 마지막 현금을 산 뻬드로 물가 생각하고 남겼으면 망신당할 뻔 했다.
호화로운 띠까부스 떼르미날. 기본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 게 아닌 게야. 국제버스잖아.
앗, 저게 누구야....란킨에서 동거하던 마크잖아!
날씬한 아가씨와 얘기에 열중하고 있길래 그새 캐나다에 두고 온 여친 배신하고 새 여자친구 만들었나 했더니 과테말라 시티로 오는 버스에서 만났단다. 니카라구아의 레온까지 간다고 한다.
마크와 얘기하고 있던 아가씨의 목적지 역시 니카라구아의 그라나다.... 아이고, 길동무 생겼네.
안 그래도 정보가 전혀 없는 이틀길이라 걱정이었는데, 이 아가씨는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구아를 잘 안다잖아. 난 왜 이리 운이 좋은 거야?
타파출라(멕시코)에서 출발하여 과테말라 시티(과테말라), 산살바도르(엘살바도르)를 거쳐 온두라스를 경유, 산호세(코스타리카), 파나마 시티(파나마)까지 가는 국제버스.
한번 표를 끊으면 위에서 열거한 도시들에서 알아서 숙박 하고 티켓에 적힌 출발시간에 다시 터미널로 가면 목적지까지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내부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 식사를 위해 휴게소에 서는 것 말고는 논스톱이다. 같은 코스로 달리는 King Quality라는 버스도 있는데 식사 제공도 되고... 숙박은 되던가? 안 되던가? 아무튼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되는 그런 버스도 있다. (여행사에 물어보면 알려줌)
마나구아까지 42달러인데 45달러 내니까 거스름돈을 께쌀로 준다. 그것도 7.0으로 계산해서...
나 과테말라 떠나는 길인데 께쌀을 주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국경 가서 환전하란다. 나도 그건 알지만 무슨 서비스가 이렇게 일방적인지.... 관광객들에게 환전 수수료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이건가? 달러를 받는다면 당연히 달러 잔돈은 준비해놔야 하는 거 아닌가?
좌석의 2/3 정도만 채운 채 버스 출발.
한 시간 정도 심심한 시골마을을 지나니 강이 나오고.... 곧 국경이다.
과테말라 출입국관리소. 같은 인디헤나지만 이 동네 과테말라 여인들은 전통복장 안 입어도 되나보다.
출경수속 후 걸어서 저 다리를 건넌 뒤 잠시 휴식.
이제 보니 마크가 많이 수척해졌네.. 과테말라에서 고생 좀 했나보다. ^^
마크도 산 뻬드로에서 일주일 있었는데 맨날 flyng hot dog reage bar에서 죽쳤단다. 난 매일 그 앞을 지나쳤는데 그 작은 마을에서 어째 한 번도 못봤지? 그래도 재미있었나보다. 일주일이나 머물렀던 걸 보면...
내가 산 마르코 환경축제에 가던 날 마크는 산티아고에서 열린 음악축제에 갔었는데 너무너무 신나게 밤을 홀딱 새웠단다. 으, 배아파~~.
엘살바도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살바도르로 입국할 때는 따로 출입국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직원이 버스에 올라타서 미리 작성한 입국신고서와 여권, 입국비 3달러를 걷어가지고 갔다가 입국도장 찍어 돌려준다.
국경 하나 넘었다고 뭐가 달라지랴. 여전히 아름다운 하늘 아름다운 산천이다.
우리와 일행이 된 로렌은 켄터키에 사는 미국 아가씨.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중미에서만 일곱달째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땐 중남미 문화를 전공하다가 인디헤나의 공예품에 푹 빠졌단다. 현재는 그라나다에 머물며 자원봉사중인데 잠시 휴가를 받아 과테말라에 놀러왔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배낭 대신 과테말라 여인들처럼 커다란 봇짐을 졌고 집시치마에 샌들 끌고 다니는 행색이 영락없는 히피.
(게다가 베지테리언이라니... 완벽하다. ^^ ) 미국애 같지 않게 다정하고 겸손하고 얘기도 잘 하고 잘 들어준다. 뿐만 아니다. 동양문화(사실은 모든 ethnic culture)에 대해 교양도 관심도 많은데, 세상에!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한국 요리강습 하는 데 가서 배웠단다. 가끔 담아먹기도 한다네.
애고애고, 넌 어디 있다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니.. ^^
로렌과 수다 떠느라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갑자기 산과 들판이 멀어지고 넓직한 별장들이 즐비한 부촌이 보인다. 이제 산살바도르 초입이란다. 와, 생각보다 잘 사나봐?
버스가 곧 터미널로 들어가길래 내릴 준비를 하는데, 우리가 잘 만한 숙소는 센트로에 있으니 종점까지 가잔다. 이 동네는 주로 돈 많은 관광객들이 묵는 호텔촌이라나.
그러면 그렇지, 다시 나타나는 산골짜기, 함석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동네, 그리고 산살바도르의 속살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정다운 센트로....소음과 사람과 쓰레기가 넘쳐나는 비좁은 시장골목들...
우리는 오늘밤 저 골목 어딘가로 스며들 것이다.
센트로에 있는 Tica bus Hotel
웬만한 띠까부스 터미널에는 늦은 밤에 도착하고 첫새벽에 떠나는 손님들을 위해 이 버스 회사가 운영하는 저렴한 호텔이 있다. 1박에 12달러란다. 아유, 잘됐다! 하니까 로렌이 이 근처에 여기보다 더 싼 데가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잡아끈다.
버스터미널 건너편의 Tranquilo Hostel.
Tranquilo는 '조용하다'는 뜻인데 시장통이 조용할 수가 있나.그냥 가깝고 싼 맛에...(침대당 5불)
부자나라에서 온 아가씨가 어쩌면 그렇게 왕소금인지...
호스텔 옆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메누리 삼고 싶더라니까. ㅎㅎ
옥수수가루로 반죽하고 속에 치즈를 넣은.... 뭐라더라?
암튼 이게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즐겨먹는 전통음식이란다.
국경의 포장마차에서도 이걸 팔던데, 버스에 함께 탔던 엘살바도르 아저씨 말이, 외국에 나가면 제일 그리웠던 게 이거였다나. 별 특징도 없어 보이던데.....
아무튼 이 나라 고유의 음식이라니까 우리도 이걸로 저녁을 때웠다. 따끈하게 먹으니 고소하긴 하더군.
아무리 하룻밤 잠만 자고 지나가는 곳이라지만 인사는 해야지? 저녁 먹고 시장 구경...
원 세상에 그렇게 시끄러운 시장통은 처음이다. 불법복제 씨디 파는 집이 왜 그렇게 많은지.... 게다가 그 가게들이 모두 대형스피커를 걸어놓고 쿵쾅대는데 귀가 다 먹먹하다. 내일 버스에서 먹으려고 사과를 몇 개 사려니 세 개에 1달러 내란다. 물가가 멕시코랑 비슷하거나 더 비싼 것 같다. 겨우 두 세시간 돌아다녀보고 뭘 알까마는.... 내가 본 엘살바도르의 인상은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반반씩 닮은 얼굴이었다.
산살바도르에서 중미 각지로 가는 국제버스의 출발시간과 요금표
니카라구아 가는 버스는 새벽 다섯 시 출발.
다음날 네 시 반에 일어나 눈꼽만 떼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시 취침.
타자마자 졸다가 해뜨는 것 보고 잠깐 기상
다시 취침 모드... ^^
다행히 좌석 여유가 있어 1인 2석씩 차지하고 맘껏 잤다.
그 사이에도 버스는 푸르른 산야를 거침없이 달려간다.
아저씨, 안 졸리세요?
아가, 너는 잠도 없냐?
온두라스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이 버스는 별도의 입출국 수속 없이 온두라스 영토에 들어가 두 시간 정도 달리다가 choluteca 가는 갈림길이 나오면 온두라스로 갈 손님들을 내려주고 바로 니카라구아 쪽으로 빠진다.
사진엔 안 나왔지만 고속도로변이 쓰레기 천지다. 알록달록 비닐봉지가 꽃처럼 시들어간다.
쓰레기 문제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사회적인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데... 아름다운 숲이, 호수변이 병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일 꺼다.
이 지역엔 비가 매우 드문가보다. 건기라 그런가? 땅도 마르고 나무도 말랐다. 한 방향으로 비뚤어진 나무들 사이로 마른 당나귀가 지나가고 솔개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조차 건조해 보인다.
온두라스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축축할까, 건조할까.
니카라구아 국경이 가까워지니 강이 나타난다.
국경 부근엔 대개 강이 있던데.... 혹시 강을 기준으로 국경협상을 하는 걸까? ^^
사람의 옆얼굴 같은 저 산봉우리는 국경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버스를 따라다녔다.
내 옆에 있는 창문에 쓰여 있는 salida de emergencia(비상구)라는 글씨를 보니 다른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emergencia 대신 Vida라고 쓰면 어떨까.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한 'Salida de ma Vida(내 인생의 출구)'.... 그럴 듯하군.
내 여행의 심볼 사진 으로 삼을까?
구름에 완전히 빠져 찍고 또 찍고... 열 장 넘게 찍었다. 찍어봐야 그 사진이 그 사진이건만...
물방울이 모여 있는 것뿐인데 왜 우리는 거기에 넋을 뺏기는 걸까. 관념론자들의 주장처럼 우리 마음 속에는 선험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이데아가 있는 것일까?
평지가 끝나고 오랜만에 꼬불꼬불 산길이다. 산 하나 넘으니 바로 니카라구아 국경.
새벽 다섯 시에 떠났는데 지금이 12시 10분이니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
차 안에서 입국신고서 나눠주고(온두라스는 경유국가이므로 이전 국가는 엘살바도르로 쓴다) 10불과 여권을 내면 차장이 걷어갔다가 도장 찍어 돌려준다. 중미 국가들 간에는 출입이 그만큼 많고 여삿일인 모양이다.
니카라과 국경을 넘자마자 대단한 산악지대가 이어진다. 산디니스타가 출몰하게도 생겼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내려 간단히 짐 검사 받는 동안 마나구아의 C에게 전화하려고 공중전화를 찾으니 길 건너 포장마차를 가리킨다. 가보니 공중전화는 없고 가게 주인이 휴대폰을 빌려준다.
혹시 그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휴대폰 가진 사람? 자가용 영업이 아니고 휴대폰 영업? (80센트 받는다)
C와 통화 후 환전상에게 50달러 환전. 1달러는 19꼬르도바. 5꼬르도바 내고 화장실 사용.
드디어 이틀간의 버스여행이 일단락될 때가 다가왔다. 마나구아는 여기서 한 시간 거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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