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산 뻬드로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해 뜰 무렵.
산 뻬드로의 하늘도 나와 헤어지는 게 섭섭한 모양이다. 해와 달이 함께 마중을 나왔다.
과테말라는 쌩얼미인. 아침햇살로 세수만 하고도 날 홀릴 수 있다.
부지런한 아랫집 처자는 새벽부터 호숫가에 나갔다 왔나 보다.
끌라리싸와의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남편 사고 소식을 듣고도 기회가 닿지 않아 병문안 한번 못간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겠다 싶어서..
100께쌀짜리 한 장 척 내놓으면 더 좋겠지만 내일 과테말라 시티 갈 차비를 포함해서 달랑 160께쌀 남았는데 그것 때문에 현금을 더 뽑는 것도 불감당이고... 해서 50께쌀 정도의 물품을 살 작정이었다.
헌데 적당히 살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과일은 너무 흔하고 계란도 몇 알 없고....
궁리 끝에 30께쌀짜리 우유를 두 통 샀다. 한국에서 같으면 우유...? 하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아이들에게도 먹이기 힘든 귀한 거라니....고맙게도 끌라리싸는 뼈 부러진 남편에게 좋은 거라며 반가워해줬다.
수업 끝나고 배운 대로 "Hasta Luego!(나중에 만나요)"라고 인사했더니 다정한 볼키스와 함께 "Hasta pronto!(곧 만나요)"라고 인사를 한다. '금방'은 물론 '나중에'라도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당신과의 인연 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할께.
그날 오후...
수업 마치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점심 같이 먹자고 불러낼 만한 친구들은 다 떠났고...
이제 나도 떠난다는 시원함과 함께 알 수 없는 적막감이 몰려온다. 오늘따라 하늘도 내 마음처럼 무거운 구름으로 덮였고 호수에는 찬바람이 들이친다. 산 뻬드로에는 사계절이 따로 없이 겨울이라고 불리는 5, 6, 7월에 비가 내리고 쌀쌀해지는 정도인데 이제 그 계절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입맛도 없고 돈도 없고....
빵 바구니 이고 지나가는 소녀에게 빵 하나 사가지고 작별인사도 할 겸 단골 커피집으로 갔다.
이 때만 해도 이후 과테말라 커피를 간절히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콜롬비아에 도착하게 될 때까지.
깊고 풍부한 향... 2께쌀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즐길 수 있던... (꽁초나 좀 치울껄... ㅜ.ㅜ)
까페에서 나왔지만 창고 같은 숙소로 돌아갈 마음이 안 나 해 저물녘까지 동네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커피와 함께 여행길 내내 그리웠던 과테말라의 오렌지 생주스.
커다란 대형컵에 잘 익은 오렌지가 자그마치 여섯 개....
끝까지 눌러짠 진한 맛이 다른 어느 곳의 주스와도 비교할 수 없었던
제대로 짠 오렌지주스가 단돈 5께쌀....
큰 당근 네 개가 들어가는 당근주스도 5께쌀. 식사대용으로도 훌륭한 'Power Juice'...ㅎㅎ
마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중턱에 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숙소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내처 걸어가봤다. 한없이 이어지는 길에 홀려 한 시간째 걷다 보니 길이 어디선가 엉켜버렸더군. 나도 모르는 새에 산티아고 선착장이 보이는 지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네의 밭과 숲은 불결한 냄새와 날파리만 날린다.
버려진 옥수수밭 여기저기에 올라가다가 만 철근 콘크리트들... 어쩌다 인부 대여섯 명이 놀멘놀멘 벽돌 몇 장 자루에 담아 머리에 이어 나르는 곳도 보인다. 명색이 호텔을 짓는다는 공사현장인데 영 맥이 없다.
주인이 누굴까? 저렇게 짓고 있는 게 몇 달째, 혹은 몇 년째일까?
동네 처자들이 땡볕도 마다 않고 농구에 열중하고 있다.
롱스커트에 샌들 차림이지만 몸 사리지 않고 뛰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달려라, 달려!
이 사람, 일 많이 했습니다. 믿어주세요.(선거 포스터 문구는 만국공통인가보다. ^^)
빨간 노트 들고 있는 소녀는 매일 알레한드로네 집 앞에서 밤 늦게까지 떠들던 뻬뜨로나의 단찍친구.
그들의 께추아어 속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놀랍게도 해외 연예인들의 이름이었다.
알레한드라네 집에서 학교 가는 길목에 사는 이 할아버지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아미가~~"하고 부르며 악수를 청하곤 했다. 어느날 한 장 찍었더니... 1불 달란다. (친구라면서?)
솔직이... 웃는 얼굴에 끌려 마음 활짝 열었다가 삐진 경우가 한두 번이냐.
알레한드라의 경우도 그랬다. 해주는 거 넙죽넙죽 잘 먹고 음식 솜씨 최고라는 칭찬을 한 끼도 빼놓지 않았더니(실제로 음식 솜씨가 좋다) 이틀 사흘 지나면서 식탁이 변하기 시작하는 거다. 매일 교회 가느라고 바빠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제 먹었던 스프를 데워내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날 저녁에는 빵 하나에 컵라면을 내놓더라니까. (라면에 빵 말아먹어 봤수?)
게다가 밥 다 먹고 잡담하고 앉아 있으면 자기 엄마가 만든 식탁보다, 자기 동생이 짠 스카프다 하면서 이것저것 들고나오기 시작한다. 직접 사라고는 안 했기 때문에 나도 '참 솜씨 좋구나, 예쁘구나...' 하면서 버텼지만 참 거북한 시추에이션이다. 내가 가방 무거워질까봐 아무것도 안 산다고 해도 그녀는 이해 못할 것이다. 쫀쫀하다고 속으로 원망이나 하겠지.
그 이후로는 알레와 잡담하는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마음의 벽을 쌓은 건 사실 내 쪽이지.
허나 나도 내 사회에서 길러진 감정이란 게 있는데 어쩌겠나.
아띠뜰란 호수와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늘 가던 선착장 부근에서 벗어나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선착장 (바라보고) 왼쪽 호변으로 내려갔더니, 저녁 무렵이라 추울 텐데도 동네 꼬마녀석들 자맥질이 한창이다.
해 질 때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옆에 영감님이 와 앉으며 혹시 싱가폴에서 왔냐고 묻는다.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소리는 들어봤어도 이젠 동남아꺼정? ㅎㅎㅎ
이스라엘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라고 해서 흥미가 동했다.
안식년을 맞아 여행중이고 석 달간 중미만 돌고 있는데 안티구아에서 스페인어 배우며 한 달 있었단다.
스페인어 영 어렵다고 울상이다. 영어도 너무 못한다. 피차일반이겠지만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아주아주 천천히 얘기해야 하고, 나도 그 아저씨 말을 알아들으려면 속이 터질라칸다. 발음도 이상하고 떠듬떠듬.... 그래도 할 말은 다 하려고 애쓴다. 서양 애들이 내 얘기 들을 때 참아줬을 그 마음으로 나도 참아주자고 결심하고 듣다 보니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국사 가르치냐 세계사 가르치냐 물었더니 알다시피 유태인은 세계와 관련된 의식이 희박하다... 주로 이스라엘 역사를 가르친단다. 그럼 구약성서의 내용을 가르치는 거냐고 물었더니 막 웃으며 성서와 역사는 다르단다.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질문이군.) 이 부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충분히 이해를 못했다. 예수에 대해서도 뭐라뭐라 알 수 없는 표현을 했는데 역시 잘 못알아들었다. 신에게 무슨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냐는 말 외에는....
전형적인 이스라엘인의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랫동네 골목마다 외국인, 아니면 외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들 즐비하다.
작은 동네라 저녁이면 이 동네 사는 외국인들이 다 나와 논다. 2주일만 체류하면 확실하게 이 마을 주민이 된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은 말 한번 안 건네봤어도 서로 아는 처지로 간주한다. 몇 푼이나 벌리는지 모르지만 중고책방 벌려놓고 아이 낳고 사는 네덜란드 총각, 저녁마다 봉고 두드리고 저글링하는 3인조 붙임머리들, 새 얼굴만 나타나면 수작 거는 여행사 총각, 조잡한 팔찌 몇 개 앞에 놓고 종일 졸고 있는 서양거지 등등.... 오늘도 나에게 어김없이 "Hola!"를 외쳐주는 그들과도 이제 작별이다.
사진은 글과 관계없음
무엇이 그들을 이곳에 오래 붙잡아두는 것일까?
가진 것이 넘쳐나서 감당 못하는 이들은 이제 평화로움과 안일을 찾아 이곳으로 와서 국적도 잊었다면서 새 살림터를 꾸리고, 물질경쟁사회에서 마이너리티가 된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체행복을 찾고... 그런 걸까? 낮에는 숲속에서 밤에는 거리에서 약 먹고 뒹구는 애들, 묵직한 붙임머리와 피어싱과 문신으로 'somebody'가 되고 싶어하는 애들 속에서 검은 티셔츠에 엄숙한 단발머리로 늘 바쁜 듯 종종걸음 치는 나는 확실히 튀는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왜 그리 바빴을까? 이 느긋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걸까?
그날 밤...
지나가면서 들여다만 보던 Jarachik(마야 언어로 '꿈'이라는 뜻이란다)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서 빵 곁들인 브로콜리 크림스프 하나밖에 주문할 수 없는 신세지만 오늘 저녁만은 장작불이 타오르고 음악이 좋은 이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오늘은 존 레논 특집인가보다. 마약 끊느라고 신음하더니 (cold turkey) 이어 imagine이 흘러나온다. 옆자리에 앉은 애들이 합창을 한다. 가난한 시골마을 한복판 비싼 레스토랑에 앉아서 ...
기분이 좀 묘했다. 그래 나를 포함한 Dreamer들아, Jarachik에 있을 동안 꿈이나 많이 꿔라.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
It's easy if you try 하려고만 한다면 쉬워요.
No hell below us 발 아래 지옥도 없고
Above us only sky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건 (천국이 아니라) 푸른 하늘뿐이에요.
Imagine all the people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봐요.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It isn't hard to do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Nothing to kill or die for 누굴 죽이거나 목숨 걸 일도
No religion too 종교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봐요.
Imagine all the people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살아간다고 상상해봐요.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나더러 몽상가라고 하시겠죠.
but I'm not the only one 하지만 (꿈 꾸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에요.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당신도 언젠간 우리와 함께 하리라 믿어요.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그리고 세상은 하나가 되겠죠.
Imagine no possesions 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요.
I wonder if you can 당신이 그럴 수 있을까요?
No need for greed or hunger 탐욕이나 기근도 없고
A brotherhood of man 인류애만 넘치는 세상
imagine all the people 모든 사람들이 온세상을 함께 나누는 그런 세상을...
Sharing all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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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소화시키는 방법. 오관을 닫고 천천히 쉐이크.
외로움의 입자들이 골고루 분산되어 오장육부 속으로스며들 때까지.
혹시 살아가는 데 짙은 자양분이 될지도 몰라.
손끝이나마 움직일 힘이 남아 있다면 네 옆에 있는 걸 하나 집어들어. 깊이 응시해.
네 외로움이 그 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도무지 무신 소린지...
좀 외롭다고 느꼈던 그날밤의 메모장에서 발견한 횡설수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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