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콜롬비아에서는 스킨 스쿠버 라이센스를 딸 계획이었다.
이제까지는 정신없이 돌아치기만 했지 제대로 놀아보질 못했으니 콜롬비아 북쪽 해안으로 가서 낮에는 스킨 스쿠버를 배우고 밤에는 살사를..... ^^ 오픈워터 과정 마치려면 일주일 걸린다니 한 열흘 잡고.. 바닷가에 푹 퍼지는 거지. 그러니까 원래 계획에 따르면 보고타에서는 길어봐야 두세 밤인데...
졸지에 쿠바행 티켓을 사는 순간 계획은 일찌감치 물건너 갔고... 뿐만 아니라 태양여관에서 여덟 밤이나 머물게 됐다. 보고타도 좋았고 태양여관도 좋았지만 거기에 발목 잡힌 건 아니고 드나들기 까다로운 쿠바행 항공편 스케줄 때문에... ㅜ.ㅜ
콜롬비아조차도 나가는 티켓이 없으면 아예 들여보내주지 않는다는데(이 말이 사실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콜롬비아 입국심사 할 때 나가는 티켓은 물어보지도 않던걸...) 막강한 사회주의적 통제를 고수하고 있는 쿠바야 오죽하겠나 싶어 열일 제쳐두고 쿠바에서 멕시코로 나가는 티켓을 사려는데 도무지 쉽질 않다. 쿠바 국적기인 쿠바나 항공은 인터넷에 뜨질 않고, 멕시코 항공사의 경우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는 멕시코에서 발급한 카드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쿠바로 들어가서 해결하자고 무작정 들어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3주 뒤에 출발하는 서울행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
오히려 콜롬비아에서 시작해서 아바나를 거쳐 깐꾼으로 가는 비행기는 인터넷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내겐 울며 겨자먹기로 산 쿠바행 티켓이 있으니.... 방법은 단 한 가지, 아르헨티나에서 산 이 티켓을 무르는 거다.
다행히 이 티켓은 100% 리펀드가 되는 티켓이다. 항공사까지 찾아가야 하고 돈을 돌려받기까지 한 달이 걸리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도무지 쿠바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 수가 없는걸.
우선 여행사가 많은 센트로로 나가서 보고타 - 아바나 - 깐꾼행 항공편을 찜했다.
중미에서 남미로 내려올 때는 부활절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명절인 노동절이 끼어 애를 먹인다. 원하는 날짜에는 자리가 없고 가능한 날짜는 너무 멀거나 가격이 너무 비싸다. 게다가 보고타를 떠나는 날짜와 아바나를 떠나는 날짜까지 맞춰야 하니 항공권 예약하기가 무슨 퍼즐큐빅 푸는 것 같다.
다행히 참을성 있고 유능한 그녀(사진)의 도움으로 두 좌석 찾아낸 뒤에(683불, 월요일 출발 비행기가 싸다)
간도 크지, 먼저 산 쿠바행 항공권을 무르는 게 순서라고 코파 항공사부터 찾아갔다.
그녀 책상 앞에 있던 녀석... 얼마나 탐이 나던지..
코파항공사는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소나 로사 지역에 있었다. 금방 돌아올 수 있겠지 하고 떠났는데
교통체증에다 버스에서 잘못 내린 데다 항공사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반 나절 걸렸다. 간신히 찾아낸 내 좌석 없어질까봐 안절부절하니 시내 구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
(좀 장황했나요? 혹시 콜롬비아에서 나같이 희한하게 루트가 틀어지신 분들이 계실까봐 일일이 썼습니다.)
코파 항공사가 있는 건물에 매달린 사람들.
우여곡절 끝에 쿠바 일정까지 확정시켜버리고 나니 일주일이란 시간이 펼쳐졌다.
까르따헤나에 다녀올까, 뽀빠얀 쪽으로 내려갈까.... K가 강추해 마지않던 커피 마을 아르메니아에 다녀올까.
그러다가 태양여관에서 San Gil로 레포츠 투어를 간다길래 거기 낑겨보려고 이 계획 저 계획 다 접었는데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 노파가 패러글라이딩이란 걸 해볼까 싶어서) 막판에 인원부족으로 그것도 무산....
덕분에 나도 태양여관의 다른 손님들처럼 make myself at home 모드로 전환, 낮에는 쓰레빠 끌고 보고타 시내 곳곳을 기웃기웃 하다가 저녁이면 공동구매한 한국식품으로 파티상 차리고, 밤이 이슥해지면 소파에 쓰러져 DVD를 보는 '생활'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건너 침대를 쓰던 '미소'양(파나마시티 강도사건 http://blog.daum.net/corrymagic/13105912의 주인공이 바로 이 아가씨다)이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나가자 4인실이 완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떠나기 이틀 전 이 침대에 룸메이트가 들어왔는데, 길 위에 있으면 이럭저럭 만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오불당 까페에 "외로워요, 한국분 안 계시나요?"라는 글을 올려 나로 하여금 라파즈의 그 높은 언덕배기를 기어오르게 했던 이 아가씨는 http://blog.daum.net/corrymagic/13288274 두 번이나 절도를 당하고 마추피추에서는 개에게 물리기까지 했단다. 아직도 광견병 예방백신을 맞고 있다는 이 아가씨는 보고타에 도착했을 때 완전히 지쳐 곧 여행을 접고 며칠 내로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헌데 뒷날 태양여관을 거쳐온 친구에게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를 묻다 보니(태양여관에는 장기여행자가 많아 투숙했다하면 최소 삼주..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그 아가씨 그때까지도 보고타를 벗어나지 못했더군. '길 위의 삶'의 중독성... 확실히 치명적인가봐. ^^
아침이 밝아와 커튼을 열면 동네의 랜드마크인 성당 종탑이 인사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보고타 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 있어서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길을 잃더라도 저 산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고 꾸역꾸역 걷다보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ㅋㅋㅋ
거실에서만큼 많은 시간을 보냈던 뒷뜰. 작은 파티는 주로 여기서... ^^
책과 해먹과 탁구대가 있는 제2거실. 파티 인원이 많으면 여기서...
태양여관의 스탭이자 친구.... 마리아, 알폰소, 마이콜
나의 '보고타 앨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녀석들이 또 있다. 얄미운 까띠와 곰탱이 뚜뚜...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는 마루 삐걱대는 소리가 행여 다른 사람들을 깨울까봐 까치발 세우기 바쁜데
인기척을 느낀 강쥐 두 넘이 가로세로 날뛰며 자지러지기 시작하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서던 날 밤엔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앞으로 저 녀석들 눈치를 어찌 볼꼬 걱정됐는데.... 새 손님 낯 익히는 데 사흘 정도 걸린다는데 내가 워낙 개를 좋아하는지라 틈만 나면 추파를 던지며 공들였더니 반나절 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줬다.
장가 들 때가 되어 틈만 나면 까띠를 덮치려고 안달인 뚜뚜. 하지만 자기 몸집의 1/4도 안 되는 녀석에게 백전백패, 도무지 어째보지를 못하는 불쌍한 넘.
"난 아직 애기란 말예요..."
생후 6개월 밖에 안 된 까띠는 뚜뚜가 가까이 오기만 하면 온몸을 내던져 죽기살기로 저항!!
태양여관 두 집 건너 빵집. 아침마다 들러 갓 구워낸 빵 냄새를 맡는 것으로 하루의 즐거움을 연다.
빵과 오믈렛, 직접 짠 오렌지 주스, 그야말로 콜롬비아 커피...
거하게 아침을 먹어도 3000콜롬비아페소(화폐단위가 커져 헷갈렸지만 따져보니 우리나라 돈이나 비슷했다. 즉 3000원어치 먹은 셈)면 충분하다. 우리나라 갈비탕과 아주 비슷한 메뉴도 있다.
이 골목으로 쭉 나가면 대형마트가 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암튼 E로 시작되는...
곧 뜨거운 나라로 날아가야 하는데 가벼운 옷이 없어서 반바지랑 티셔츠 사러 갔는데... 가격 대비 품질을 영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이틀 동안 발품만 팔았다. 하지만 식료품은 한국 가격의 절반도 안 되어 자주 사다 날랐다. 노잣돈을 보태주신 분께 드릴 커피도 여기서 샀는데 (San Huares 아니면 Oma가 좋다) 우리 돈으로 9000원(포장단위 잊었지만 꽤 크다) 줬다.
태양여관 앞 골목을 빠져나가면 바로 큰길이 나온다. 이 길은 남북으로 뻗은 길인데 조금 걸어올라가면 산으로 길이 막히면서 동서로 뻗은 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는 센트로로, 왼쪽으로는 소나로사로 이어지는 보고타의 간선도로다. (왜 이렇게 자세히 쓰나... 암만해도 난 길에 미쳤는갑다. ^^)
올라, 치나!! 아미가!!..... 동네 초등학교 녀석들이다.
동네 카지노
홍홍홍, 살사강습 맛본 얘기나....
동네에 살사 배우는 데가 있다고 해서 한번 가봤다. 주2회 강습이라니 여기 있는 동안 딱 한 번밖에 기회가 없겠지만 뭘 배우겠다는 기대를 접고 콜롬비아 사람들 노는 구경이나 하려고....
혼자 가기도 뻘쭘하고 너무 늦으면 돌아올 일도 걱정되고 해서 숙소 총각들을 이리저리 구워삶았다.
간신히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놓았는데.... 낮에 맨유와 바르셀로나 축구중계를 보면서 낮술들을 마시더니 약속시간까지 뻗어 있다. 배신자들.
장소는 허름한 까페 2층.... 한쪽에 작은 bar가 있고 다섯 평쯤 되는 공간을 비워놓았는데 20명쯤 와서 대기중이다(나중에 20명쯤 더 와서 완전히 콩나물시루가 됐다.). 강습료는 5000페소.
주로 30대지만 더 젊은 아가씨들도, 더 늙은 영감들도 있다. 뻘쭘함을 이기려고 내 또래의 아줌마를 골라 인사를 건넸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옆에 있는 남편을 소개해준다. 이 수업은 30회 수업 중 25회째란다. 클났다!
살사 추어본 적 없다고 걱정하는 내게 염려말라고, 자기 남편이 잘 추니까 원하면 빌려주겠단다.
드디어 은은하게 흐르던 음악소리가 쾅쾅 울리면서 콧수염을 기르고 얼굴도 코도 배도 동그란 아저씨가 줄을 세우기 시작한다. 선생님인 모양인데 완전히 게임 '마리오' 캐릭터다.
다섯평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공간의 양쪽 벽에 남녀를 분리해서 세워놓은 다음 구령을 외친다.
"까미나르, 까미나르, 까미나르....."(걸어, 걸어, 걸어!)
온몸에 힘을 빼고 발끝으로 허공을 가볍게 차며 음악에 맞춰 걸으라는 거다.
사람들이 걷는 동안 선생님은 돌아다니며 파트너를 정해준다. 아마 실력을 가늠해서 맞춰주는 것 같다.
내 파트너는 눈이 깊고 표정이 심각한 젊은 남자. 내가 인사를 하니 친절한 미소만 짓는다.
드디어 강습 시작. 틀어놓은 음악도 신나는데 뒷자리에서 봉고로 리듬까지 쳐주니 통나무를 세워놔도 춤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두 박자에 네 스텝을 밟으면서 네번째 스텝에서 다리 뻗기, 트위스트 하다가 네 스텝째 다리 뻗기... 동작은 간단하지만 파트너와 마주서서 하니 그럴 듯하다. 게다가 음악이 점점 빨라지니 춤을 제법 추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는 고개 흔들기, 어깨 흔들기, 팔 쭉 뻗고 손목 구십도 꺾기 등 자잘한 동작 연습....
파트너는 자꾸 자기 눈 찌르는 동작을 하면서 눈을 맞추란다. 하이고, 근데 왜 난 그게 그리도 어색한지...
어느 영화에선가 섹스를 할 때 눈을 맞추지 않는다고 애인의 사랑을 의심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만, 얘기할 때는 절대로 눈맞춤을 사양하지 않는 나지만 춤추며 눈을 맞추려니 약간 근질근질한 기분이다. 어쨌거나 춤을 출 때 눈맞춤을 해야 근사한 자세가 나온다니 노력을 해보지만 내 시선은 곧 발끝으로 떨어지고 만다. ㅎㅎ
두 시간 동안 계속 걸었다. 땀이 비오듯하고 어느새 몸과 음악이 하나가 된 듯 어떤 변형 리듬이 나와도 그럴 듯하게 리듬을 탄다.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연수할 때 잠깐 맛본 강습에서는 스텝 하나하나에 열중하게 만들던데 이곳 살사강습의 포인트는 음악을 몸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여자들이 잠깐 쉬는 사이에 남자들에게 빠른 발동작 연습시키는데 어찌나들 잘하는지.... 마루 위를 미끄러지는 것 같다. 다시 여자들이 합류한 뒤에 파트너끼리 붙잡고 뱅뱅 도는 동작... (엄청 헤맸다)
마지막 동작은 여자가 폴짝 뛰어서 남자 허벅지에 몸을 던지듯 착지하면 남자가 연속 두 바퀴 돌려주는 화려한 동작이다. 시범을 보이더니 바로 시킨다. 헉!
그래도 생각보다 잘 해냈다.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겼어야 하는 건데.... 밤길이 무서워 카메라를 안 들고 온 게 두고두고 섭섭타. 우리나라에서도 굽 높은 구두에 빤짝이 드레스를 걸쳐야 하는 대회용 살사가 아니라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살사가 광범하게 보급되면 좋을 텐데...
살사강습 사진이 없으니... 쿠바에서 찍은 살사공연 동영상으로 대신...
끝까지 보신 분은 "나 저거 해봤어요!" 하고 잘난척하는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겝니다. ㅋㅋ
바로 그게 마지막으로 배운 동작이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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