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Mexico14 - Adios Amigos!

張萬玉 2008. 9. 24. 12:32

 

깐꾼 상공에서 내려다본 호텔 존의 해안선

 

이륙한 지 한 시간 만에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다.

 

다시 돌아온 숙소, Hostel Vieja. 석 달 새 스탭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아가씨가 맞아줬으나 여전히 반갑다.

로베르또를 찾으니 밤에 출근한단다. 그새 10페소 올랐다. 

 

정다운 길거리 따꼬 가게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가 예전에 신라면을 샀던 수퍼 2층에 한국음식점이 있었던 생각이 나서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 때만해도 여행 첫머리라 호주머니 걱정에 간판만 쳐다보고 패스했던 곳이다.

옆자리에 한국인 부부 두 커플과 음식점 주인 내외가 식사를 하시다가 내가 개별여행자라는 걸 아시고는 신기해 죽을라고 하신다. 요즘 여자들도 혼자 적잖이 다니는데 뭐가 대단하다고...쑥스~

 

파라과이 이민 1.5세대인 J씨는 중학교 때 이민을 와 거기서 만난 한국아가씨와 가정을 꾸렸다. 멕시코 시티로 이사온 지는 5년 정도 되고 무역업을 하는데 꽤 짭짤하단다. 누나는 페루에서 식당(아리랑)과 민박을 하고 있고 형도 미국에서 사업을 한단다. 자랄 때는 남미 동남부에서 함께 자랐지만 지금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살며 국제적으로 왕래하는 가문이 되었다. 또다른 커플 역시 아르헨티나에 살다가 멕시코로 이사했고 함께 이민 온 친척들이 아르헨티나 전역에 퍼져있다고 한다. 

식당 사모님은 57세라는데 내 또래 내지 약간 연배인 줄 알았다. 피부가 정말 우유같이 뽀얗고 탱탱하고... 파리가 앉았다가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럽다. 비결을 물어보니 감자팩이나 아보카도(이 동네 아보카도 정말 싸다..)를 사용해서 마사지를 하신다네. 칠레산 장미기름 덕도 톡톡이 보았단다. 

모두 같은 교회 교인들인데 서로 형제간처럼 돕고 의지하여 먼 타국생활이 전혀 외롭지 않다고 자랑하신다. 

 

맛난 된장찌게 한 그릇 다 먹고 나니 J씨가 자기 집에 가잔다. 동포 놔두고 무슨 길잠을 자느냐, 아예 자고 가라고 성화다. 고맙지만 이미 숙소도 잡아놨는데... 커피나 한잔 달라고 청했다. 낌에 집에 한글로 이메일 한통 쓰려고.... 어느새 J씨가 밥값까지 계산을 해버렸네. 이걸 어째! 

아무리 싼 음식을 둘이 먹어도 자기 몫 딱딱 계산하는 여행자 문화가 익숙해지다 보니, 동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본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넉넉한 한국식 인정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기사 딸린 승용차에 올라 소나 로사의 근사한 아파트로 가는데 우리가 상하이 살던 때 생각이 난다. 바다 건너 멀리까지 오신 귀한 손님들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살 때보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으니 그리 큰 부담없이도 손님치레를 하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하던.... 그러나 요즘 한국 생활은 아주 친한 벗 아니면 손님치레 하는 게 무슨 큰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J씨 부인이 극진하게 전도를 하신다. 여행길 끝에 우리집에 들르게 된 것도 다 하나님 뜻이라고...^^

어쨌든 고맙다. 맛난 냉커피 마시며 멕시코 살이 얘기를 들었다.

타향살이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강도를 세 번이나 만났단다. 한번은 3만불이나 뜯겼고...

쿠바에서 만났던 김사장님도 멕시코 시티에 살 때 옆집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얘길 하더니.... 정말 멕시코에겐 내가 본 얼굴과는 다른 험상궂은 얼굴이 있는 모양이다. 당신은 운이 좋아 안전하게 다녔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당하는 게 멕시코 사정이란다. 그래도 위험하다는 얘기는 그만큼 돈이 돈다는 얘기니 돈을 벌려면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고....  

 

쿠바 얘기가 나와 남자들이 너무 치근덕거리더라고 불평을 하니 중남미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단다. 말을 걸 때 대답을 해주면 오늘밤 호텔에 바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누군가 말을 붙이면 말동무 생겼다고 좋아라 하면서 이런저런 거 더 물어보니 얼싸좋다고 따라붙는 게 당연하지. 그걸 가지고 남자들 탓을 하다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모양이다.

이슬라 데 무헤레스의 가이드 얘길 하니 그곳 가이드는 백이면 백 다 그런단다.

 

 

한국행 비행기 시각은 오전 10시지만 러시아워를 피하려고 7시에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탔다.

(세비야 역부터는 두 번 갈아타야 하며. 40분 정도 걸린다)

짐은 전날밤에 미리 싸두고 숙박비도 계산해뒀다.

아이고, 모자와 '신의 지문'을 잃어버렸다. 깐꾼 공항에 두고 온 것 같다.

JM이 상하이에 놀러왔다 벗어두고 간 이래 10년 이상 내 중요한 여행길을 함께 해준 정든 모자였는데...ㅜ.ㅜ

일찌감치 나오길 잘했다. 깐꾼에서 들어올 땐 몰랐는데 전철역에서 국제선 출국장까지 엄청 멀다. 승객도 엄청 많고 보딩 패스 받고 대합실 가는 길도 엄청 멀다. 2시간 먼저 왔어도 자칫 늦을 수도 있었겠다.

 

뱅쿠버에 도착한 시간은 13시 20분. 두 시간 대기하고 다시 탑승해서 15시간을 날았다.

 

창에 성에가 끼기 시작한다. 여기는 캐나다 상공.

 

발 아래 호수도 꽁꽁 얼었다.

 

지나간 석 달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석 달이 뭐 그리 긴 기간이라고.... 까마득히 먼 옛날 같다.

 

멕시코, 첫 여행지라 그랬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긴장과 호기심으로 모든 감각기관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음식도 좋았고....

과테말라, 란킨이 좋았다. 풍경이니 사람들이니 이유를 들 필요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좋았던 곳.

산 뻬드로도 좋았지만 스무 날이나 지내다보니 단순한 섬생활이 지겨워졌다. 쿵짝 맞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경치는 정말 좋았지.

모든 것이 엉성하고.... 그래서 만만한 분위기도 편했고. 생주스도 잊을 수 없고..

파나마는 올드시티의 독특함 때문에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하다.

 

쿠스코는 본격 여행자 루트로 들어서는 초입이었다.

슬슬 권태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초반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여주는 경치가 사그라들려는 동력에 펌프질을 해줬던 것 같다. 

아레끼빠, 좋은 감정이 남아 있는 도시. 혼자였어도 즐거웠고 꼴까 캐년 가는 길은 지금도 그립다. 너무 먼 길이라 다시 가라면 지겨울 테지만.

푸노, 이제 배가 부르다는 생각이 솔솔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티티카카는 잊을 수 없다. 특히, 다시 힘을 내게 하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아만떼 섬. 

 

볼리비아. 소중한 기회를 대강 스쳐가고 있다는 자괴감.

그러나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보고 싶다. 수수께끼 같은 나라.

우유니. 눈부신 사막과 아름다운 파비오의 기타소리를 배경으로 유쾌한 친구들이 웃고 서 있다.

아르헨티나. 쇠고기 말고는 감동적인 게 별로 없었지만 민수네에서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여행길에서 다시 마주치고싶은 멋진 친구들. 그 중 한 친구는 지금도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머물며 전율을 느끼게 하는 사진들을 계속 찍어대고 있다.

  

여행지들을 밥 먹는 일에 비교하자면

멕시코,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었고

과테말라, 과식할까봐 겁났고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짠지 싱거운지도 모르고 넘겼고

파나마와 페루는 특이한 뒷맛을 남기는 복잡한 맛,

볼리비아, 씹지도 않고 넘겼고

아르헨티나, 밍밍

콜롬비아, 아껴먹다 밥그릇 뺏긴 기분

쿠바, 반찬은 훌륭했으나 밥이 설익어 아까웠다고나 할까?

첫날과 이튿날은 나쁜 경험 때문에 위축됐고 셋째날부터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감도 잡히고 어느정도 활개 칠 만큼 자신감이 붙으려니까 쿠바에서의 나날이 그만 끝나고 말았다. 다시 가면 더 잘 할 수 있겠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진심이 아닌 다른 것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만남엔 익숙지 않은 순진한 나. 좀더 노회해지면 쿠바가 좋아지려나.

 

못 가봐 미련이 남는 곳이라면....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브라질, 콜롬비아의 뽀빠얀과 북쪽 정글.

그러나 내 생애에 다시 오게 될까?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은 이 시점에서도 한편으로 집요하게 내 발목을 잡는 아쉬움이라니..

 

JAL 항공에서 운영하는 닛꼬 호텔. 

중국에서 말고는 이런 으리번쩍 호텔에서 묵어본 적이 없는 만옥이... 남루한 행색이 잠깐 신경 쓰였다는...^^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충분한 시간 같은데 항공사가 무슨 사정인지 호텔 잡아주며 하룻밤 자고 가라기에 

블로그 4년지기 멜론 여사에게 연락을 해놓았다. 바쁘시겠지만 일배를 허락해주시겠냐고...

멜론 여사가 도쿄역 부근에서 부업으로 까페를 하신다기에 깐꾼에서 다까에게 도쿄역 부근 약도를 그리라고 하여 찾아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멜론여사가 굳이 픽업을 나와줬다. 황송하옵게도 부군까지....

럭셔리하게 밥도 얻어묵고...

 

2년 만의 해후를 즐기고 있는 멜론과 만옥이...   

 

공통의 취미도 많고 비슷한 성장기를 거쳐 情調도 비스무리하고 똑같이 또래의 아들을 둔 58년 동갑내기. 

 

그녀가 기념으로 찍어보내준 도쿄橋의 야경이다.

 

비에 젖은 도쿄의 밤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중 

 

도쿄역 뒷골목이다. 그녀가 운영하는 까페가 있는... 

 

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세컨 잡.... 개업한 지 두 달 정도 됐단다.

쥔장이 한국여인 아니랄까봐 가게 이름도 춘향이네... ^^

 

주말에는 단체손님 외에는 영업을 안 한다는데 나를 위해 셔터를 열어주었다. 기레이데스네!!

 

듣는 이 없으니 돼지 멱을 따본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멜론님은 재야에 머무르기엔 아까운 '카수'이시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는 차량으로도 한 시간이 넘는 먼 거리다. 

일반 전철로 두 시간, 신칸센을 타도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멜론님이 아니었다면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야심한 밤에 돌아올 일이 심란해서 닛꼬 호텔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바쁘게 사는 사람인데 데리러 오고 데리고 나갔다가 데려다주고...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네 시간 이상의 운전을 즐거워해준 고마운 친구... 

멜론님, 절대로 안 잊을 겁니다. 서울에 오시면 배로 갚을 께요. ^^

 

 

이렇게 여행기가 끝나는가?

후후.. 그럴 리 없지. 마지막으로 양념 한번 쳐야겠다.

서울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방 정리를 하는데 작은 플라스틱 막대기가 만져진다. 에구구... 이게 뭐냐,

닛꼬 호텔 내 방 열쇠였다.

체크아웃을 안 하고 왔던 것이다. 띠용~

호텔에다 전화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승무원 아가씨에게 전화 서비스를 부탁했더니

사정을 들은 아가씨, 자기가 대신 전해줄 테니까 걱정 말란다.

JAL의 서비스가 훌륭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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