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이 숙소를 소개했던 내 절친 동생의 친구가 엊저녁에 전화를 해왔다.
막상 내가 오던 날 서울에 있어서 얼굴도 못봤는데 내일 올레축제가 있으니 시간 있으면 그리로 나오란다.
이미 현지주민 같은 심정이 되어버린 마당에 굳이 올레축제라고 챙겨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안 갈 이유도 없고 해서 그 멀고 먼 제주시로 출동.
도착하니 비가 솔솔 뿌리기 시작한다. 그런 정도겠거니, 우비 파는 데도 없고 해서 그냥 출발.
올레 19코스의 출발점 만세동산.
조천 농로를 지나 관곶을 돌아 제주다문화회관을 거쳐 함덕 서우봉 해변을 바라보며 서우봉을 넘고 너븐숭이에서 숨을 고르고 북촌에서 점심을 먹은 뒤
동복리와 김녕마을을 거쳐 김녕 서쪽포구에 이르는 18.8킬로미터다.
내 다리가 허용하는 게 10킬로미터이니 나는 북촌에서 점심을 먹고 탈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레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동호회, 직장동료 등등 단체로 참가한 사람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간식을 나누며 흥을 돋군다.
가족 단위도 많고 외국인도 꽤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중국말...ㅋㅋ
여성합창단을 비롯하여 어린이 합창단, 무용단이 축하공연을 벌인다.
코스 중간중간 연주와 전통의식 등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놀멍 쉬멍 갔다가는 다 놓칠 터, 어여 가세 어여 가!
올레아카데미 출신 도우미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도 출발이다.
논둑밭둑길을 한 시간도 채 못 걸은 것 같은데 벌써 간식타임이다.
첫번째 정류장인 다문화회관 운동장에서 광어회 세 점과 스시 두 점, 오매기떡 세 개씩 나눠준다.
해가 안 나면 바딧물빛도 곱지 않은데 함덕 해변 물빛은 여전히 곱다.
서우봉을 넘고 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린다.
잘 보고 가세요. 넘어지면 무척 아파요... ㅋㅋ
너븐숭이에 있는 4.3기념관 앞에서는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국악가락이 처연하게 흐르고 사람들은 위령탑에 국화꽃을 바친다.
어느새 올레19코스 중간지점인 북촌이다.
출발지점에서 구입한 식권으로 뭉게죽(문어죽) 한 그릇 따시게 먹었다.
북촌리 부녀회원들이 수고해주고 계시다.
무슨 밴드인가 전자기타를 징징 울리며 공연을 준비하지만 자, 나는 이만 탈락하오.
택시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가 내 애마로 귀가했다.
쫄딱 젖은 운동화 속에서 퉁퉁 불은 발과 뻣뻣한 무릎을 달래려고 동네 싸우나에 갔다.
참고로, 제주도 물 정말 좋다. 특히 내가 묵고 있는 돈내코에서는 수도꼭지에서 그냥 받아마신다.
샤워를 해도 매끈매끈 비눗기가 쉬이 가시지 않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안 발라도 그리 당기지도 않는다.
제주 사는 친구 말마따나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사우나에 갈까 했는데 노느라 바빠서 못하고 있다. ㅎㅎ
11월 9일
잠시 집도 내 집이라고 손님맞이....ㅋㅋ
친구 내외, 그리고 친구 남편과 같은 대학에 근무하시는 교수 내외 등, 세 쌍이 돈내코 계곡을 방문했다.
모두 제주시 아파트에 사는 서울내기들이라 겨우 넓은 정원에 숯불 피우는 걸 가지고 몹시 즐거워들 한다.
말은 집주인이지만 몸만 내려와 있는 신세라고 고기에 숯에 야채에 밑반찬까지 완벽하게 들고왔다. 민망해라.
쫄깃한 제주 흑돼지가 익어가고 맥주에 막걸리가 돌아가고, 집주인의 유일한 접대품목인 음악이 정원 가득 울려퍼지니
자못 흥겹고 멋드러진 일요일 오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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