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벼르고 별렀던 한라산에 드디어 발을 들였다.
연휴를 맞아 날아온 친구 덕분이다. 이사 오자마자 남편과 아들까지 데리고 와 나의 제주 정착에 크게 기여했던......
그때 눈 덮인 한라산 등반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시원찮은 무릎 때문에 따라나서지 못하는 나를 두고는 안 가겠다고 아들과 남편만 올려보냈던 고마운 친구다.
날도 풀렸고 무릎도 그때보다 나은 것 같으니 이 친구 의지해 한번 가보자 싶어(어쩌면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
새벽 여섯 시도 채 안 된 시간에 집을 나섰다.
영실 주차장부터 영실입구 주차장까지 2.5킬로미터의 오르막길을 더 걸어야 하는데 물론 그 길도 아름다운 숲길이긴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여정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다리품을 아끼려고... 시도때도 없이 늘 만차인 주차장에 한 자리 차지하려니 여섯 시도 이른 출발은 아니다.
일단 차를 넣고 나니 여유가 생겨 엊저녁에 싸둔 김밥부터 뱃속에 챙겨넣고(보통은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먹는다지만 기운 없으면 못 올라간다!)
남들 한 시간에 올라가는 거 우리는 두 시간에 올라가자는 배짱으로 놀멍 쉬멍 오르멍......
첫코스 돌길 오르막. 그 어느님들의 정성인지 잘 다듬어진 길이다.
생각보다 쉬운데? 조금 규모가 큰 노꼬메오름 느낌?
코스의 2/3 이상이 방부목 계단이다.
대단한 전망을 뒤로 하고 전진, 또 전진!!
미리 겁먹고 노약자의 등반에 지장을 줄 만한 건 몽땅 빼놓고 왔기 때문에 카메라는 휴대폰으로 대신.
카메라가 크게 더 나을 건 없지만 웬지 아쉽......
게다가 모델(오백나한과 병풍바위 등등) 등 뒤로 햇님이 무서운 기세를 떨치고 있는 바람에 몇 컷 찍지도 못했다.
기능 좋은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는 이런 구석을 샅샅이 찍겠지만...
나는 기념으로 한 장만... 기를 쓰고 땡겨본다.
오르막 중간쯤의 고사목 지대.
겨울이면 탐스러운 눈꽃을 피워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영실 코스의 하이라이트지만
메마른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계절에는 인생의 엄중함에 쓴 한숨을 짓게 만드는 곳.
산 아래는 철쭉이 만발인데 이곳엔 진달래가 드문드문 피기 시작했다.
6월엔 철쭉으로 온 산이 붉다는데, 다시 와지려나? (길이 점점 힘겨워지기 시작한다)
여러 그루 같지만 사실은 한 그루다. 용암이 굳은 바위 위 박토에 뿌리내리느라고 저 야단이다.
저런 뿌리가 형성되기까지 최소 200~300년은 걸린다고 한다. 곶자왈에서 많이 본 모습.
제주도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엄혹한 자연과 싸우며 결국 생명을 지켜낸 강인한 섬이다.
나도 결국 윗세오름 부근까지 왔다!
노루샘에서 달디단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기운이 넘친 나머지.... ^^
왼쪽 전망대에 올라가면 우리동네임을 알려주는 한림항, 애월항, 노꼬메오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만. . . 사진이 읎다. ㅠ.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40분 거리.
아직 기운이 남아도는 친구는 충분히 다녀올 만 할텐데, 어차피 백록담까지는 입산통제이니 여기서 햇볕이나 쬐고 간단다.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는 사람들을 따라 내려가고 싶지만 우리는 차 때문에 왔던 코스로 되돌아가야 한다.
올라갈 때 강한 역광 때문에 제대로 못 찍었던 병풍바위와 영실기암(오백나한)을 내려오면서 다시 찍어봤다.
7시 30분에 산행 시작해서 10시 30분 정도에 내려왔으니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내 무릎이 허락하는 오르막 내리막의 최대치인 듯.
2002년 겨울, 남편과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올라갔을 때만 해도 7시간 산행이 힘든 줄 몰랐는데...... 이제 더 이상은 자제해야 한다. ㅠ.ㅠ
하지만 올 겨울 눈꽃산행에는 한번 더 도전할 꺼다. 틈틈이 노꼬메에 오르며 준비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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