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영화) 몽상가들(영화평 아니고 후기..^^ )

張萬玉 2005. 4. 10. 17:42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할 때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프랑스 68세대*(말미에 주를 붙였음) 이야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위 '운동권 후일담' 같은 것을 접하면 아직도 마음이 심란하다.

'운동권'이라는 단어부터도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일단의 학생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공안당국이 만들어 퍼뜨린 단어가 아니던가... 그런 선동에 의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조차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만큼이나 '운동권 후일담'이라는 물건은 요상하게 내 기분을 교란시키곤 한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큰 의미는 대강 자리를 잡았을지 모르나 개인사에서의 의미를 아직도 완결짓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그러한 사안을 미화하거나 희화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아직은 거부하고 싶은 결벽증 같은 심리랄까.

 

더도 덜도 아닌 냉전시대의 필연적인 현상으로서, 그리고 그 현상이 역사에 일정하게 기여한 바 그대로 쿨하게 지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격랑 속에 있었던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한발 떨어져 관조하고 있었던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그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자신들의 체험을 좀더 객관화시키려는 노력들을 할 수 있다면... (그러나 역사는 진행중이고 갈등은 의연히 버티어 선 채인데... ㅎㅎ 너무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나는 안다.

그 시절의 우리들의 열정을, 우리들의 미숙함을, 우리들의 회한을....

돌이켜봐도 다시 가슴이 울컥해지지 않을 수 없는 젊은 시절의 성장통을...

그러나 연민과 독선과 집착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걸레 같다는 것을...

 

각설하고....

거장의 솜씨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해 아무튼 영화를 보기로 했다.

 

과연...

화면은 황송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거의 모든 장면이 액자에 넣으면 그림이다)

음... 그리고 완벽한 무삭제였다. 에로틱의 경지는 거의 예술이었다.

(영화의 예술성에 관해서는 아마추어의 이따위 거친 소감을 보는 것보다는 '몽상가들' 공식 페이지에 가보시는 것이 낫겠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아찔한 장면을 되는대로 꼽아보자면

 

세 사람이 함께 욕조에 늘어져 있는 장면..

이사벨이 비너스처럼 나타나는 장면..

천막 속에 세 사람이 잠든 장면(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꼬부리고 있는 아이들 같았다)

악동들처럼 박물관을 뛰어가는 장면...(나도 소싯적에 이런 류의 치기를 많이 부렸다는...^^)

그리고 영화장면을 재현하는 재기발랄한 장면들...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자유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소품들...

(제니스 조플린이랄지, 모택동 연설 포스터랄지, 에릭 클랩튼과 지미 헨드릭스를 두고 벌이는 언쟁 등등... 한때 나도 무지하게 열광했던 코드들이다... ㅎㅎ)

눈부신 젊은 육체들....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매튜의 붉은 입술...

아버지의 서재(유럽 히피가 미국 히피보다 더 과격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운동권'이면서도 현실 속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테오와 이사벨...

그 자괴감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자학적으로 몰두하는 '사적 공간'....

이것은 우리 세대의 대다수가 경험한 우울한 정서다. 얼마전 일간지에 모 변호사가 쓴 칼럼을 보니... 운동을 정리하고 군에 다녀와 어두운 골방에서 사시공부와 씨름을 하던 시절... 그 우울한 시절을 함께 했던 연인은 다름아닌 축축한 눈빛의 줄리엣 비노쉬였단다. 굳이 말하자면 그런 칼라라고나 할까. 특히 스스로 '운동권 주변인물'이었거나 '운동'에서 '탈락'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더 강렬한 內傷으로 남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정작 '운동권'에 입문하고자 하던 아이들의 광기는 또 어땠고....

이제까지 자신을 길들여온 전근대적인 미덕과 분단시대의 사고에서 해방되기 위해 얼마나 위험한 치기를 부렸나. 정신적 독립이라는 청년기 본연의 과제와 맞물려 그때의 몸짓은 가히 처절하였다. 술 먹고 개가 되기도 하고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살림을 차리기도 하고 자폭하는 심정으로 '동' (데모 주동) 뜨기도 하고....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오가 그랬던 것처럼... 이사벨의 방으로 표현되는 정리되고 안정된 세계는 감수성이 유난히 풍부했던 한 친구를 아프게 떠올리게 한다. 

 

'와이키키브라더즈'나 '질투는 나의 힘'에 '코드'가 맞는 세대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이 영화의 정서를 가장 깊숙이 공감할 세대는 아마도  1979~84년 사이에 대학시절, 그것도 운동권, 혹은 운동권 주변에서 보냈던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아직까지도 내겐 '몽상가들'의 餘震이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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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유럽에서도 특정 세대가 정치 지형을 바꾼 적이 있었다. 1968년 시위사태로 결집된 이 세대는 68세대로 불린다. 

68년 3월 22일 150여명의 소르본대 낭테르분교 학생들이 ‘교육제도와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 68 시위는 학생 조직과 양대 노조의 연대, 총파업 등으로 이어지며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노조측이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노·학 연대를 단절하고, 6월 총선에서 드골파가 대승을 거둠으로써 짧았던 혁명 시도는 막을 내렸다.

 

미완의 혁명이던 68 투쟁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사회에 새로운 가치와 사고, 삶의 방식을 부여했다. 사르트르와 질 들뢰즈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지식인을 위한 변명’ 등의 저작을 내놓았고, 미셀 푸코와 롤랑 바르트는 68혁명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을 더욱 발전시켜 서구 지성체계를 변화시켰다. 이 영향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68세대는 ‘적군파’나 ‘붉은 여단’처럼 테러리즘의 길을 선택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기성 정치의 탈권위주의화와 일상 정치의 강화를 통해 참여의 폭을 크게 넓히는 역할을 했다. 한때 기성 정치의 반격으로 설자리를 잃은 것 같던 그들은 70년대 말 독일의 녹색당 운동으로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고, 90년대에는 기성 정치권에 진출해 새 바람을 일으켰다.

 

유럽의 68세대는 20년 이상이 걸린 이 과정을 통해 끝까지 진보 좌파세력의 지지 기반이 됐다.

한국의 86세대는 40대를 넘어 50대, 60대로 이동하면서 지금의 집단적 정치 성향을 그대로 가져갈지 아니면 새로운 분화 과정을 거칠지 주목된다.

 

 (msn 검색으로 퍼온 주석입니다만 어디서 퍼왔는지 글을 쓰다보니 잊어버렸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