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는 환호가 있고 짜증이 있고 긴장이 있고 호쾌함이 있고....
내기가 있고 부부싸움이 있고 간식이 있고 정담이 있고....
그리고 사고가 있다.
# 부부싸움
골프와 운전은 부부간에 코치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골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스탠스 방향도 제대로 못 잡던 시절이다.
안 그래도 마음처럼 공이 안 맞아 초조한 마당인데 남편의 잔소리가 자꾸 신경을 거슬리던 중 남의 공 안 보고 혼자 막 나간다고 주의를 주는 소리가 꼭 구박처럼 뒤통수에 꽂혔다. 목까지 차올라오는 짜증을 참고 샷을 했는데 맞을리가 있나.... 보기좋게 뒷땅을 치고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나 안 쳐! 내가 왜 골프 쳐야 되는데?"
나도 모르게 골프채를 집어던지는데 얼마나 서럽던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엉엉 울면서 오던 길로 돌아갔다. 남편은 내 그런 행동에 충격을 받았는지 열을 받았는지 암튼 본 척도 안하고 다음홀로 가버린다. 같이 온 옆집 아저씨는 쩔쩔 매며 날 따라오다가 다시 남편 쪽으로 뛰어가다가 어쩔줄을 모르고...(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쯔업!)
무슨 큰일이 났다고 흑흑 흐느껴울며 두 홀을 정처없이 거슬러 걸어가다 보니 제풀에 감정이 가라앉고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잠깐 멈춰 벤치에 앉아 있는데 남편이 카트 타고 데리러 왔다. 여전히 화난 얼굴로 한마디 내던진다.
"칠꺼야? 말꺼야?"
남편 성격에 이 행동은.... '白旗'다.
눈치빠른 나 역시, 오기 때문에 단서조항을 달기는 해도 선선히 백기를 받아준다.
"굴러가든 날아가든 아무 소리 하지마... 아무 소리도!!"
이후로 남편이 골프장에서 내게 하는 소리는 딱 두 마디 뿐이다.
굴러가면 "Good Shot !" 날아가면 "Nice Shot "
내 공이 러프나 벙커에 빠져 세번 네번 실수를 하고 있을 때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놓고 치지 그래' 소리 절대 안 하고 참을성있게 기다려준다. ㅎㅎ
역시 부부싸움을 할 때는 무조건 참지 말고 쎄게 한번 나가줄 일이다.
아울러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는 것도 중요하고..... ^^
태양도의 그린은 거의 벙커로 둘러싸여 있다.
# 사고
카트로 사람을 친 사고 얘기는 지난번에 한 적이 있고
이번엔 내 공에 내가 맞은 이야기...ㅋㅋ
간밤 꿈이 우선 예사롭지 않았다.
티오프를 하려는데 사람들이 티잉 존에 담요를 펴놓고 화투를 치고 있지를 않나.
백스윙을 하는데... 뒤에 벽이 걸리질 않나.
손에 쥔 클럽도 드라이브가 아닌 퍼터, 바닥도 고운 잔디가 아닌 콘크리트....
꿈에서는 별로 이상하지도 않게... 간신히 절반짜리 백스윙 해가지고 공을 날렸는데....
장면이 바뀌어 여기저기 흩어진 흰 공이 보인다. 내 공 찾는다고 애쓰다 깨어났다.
이런 황당한 꿈을 꾸면 재밌기 마련인데 웬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튼 그날 나는 첫타에서 슬라이스를 내어 오른쪽 전방 100야드 이내에 있는 콘크리트 전신주에 명중시키고 혜성처럼 되돌아온 볼에 맞았다. 확률 0.1%의 불운이여!
다행히 근육이 푸짐한 곳에 맞아 멍이 시퍼렇게 들기는 했어도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그래도 맞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던 생각 하면....
지금도 나무가 앞을 가린 숲으로 들어가면 그때의 공포감이 몰려와 웬만하면 벌타 하나 감수하곤 한다.
# 골프의 단맛
성적이 좋아야 기분이 좋은 건 당근이고.... 이 외에 내가 좋아하는 골프의 맛은
* 신새벽, 이슬이 가시지 않은 티잉 존에서 아물아물한 깃발을 노려보며 채 흔들어보는 맛.
* 여유있고 만족한 스윙 후에 들리는 경쾌한 타격음.
* 안전하게 물을 건너는 공을 보는 후련함.
* 골프채 끝에 끈이 달리기라도 한 듯 마음에 그린 선을 따라 날아가는 피칭 샷.
* 안전하게 공을 품고 허공중에서 쏟아져내리는 후련한 모래 세례 .
* 골프의 꽃... 절제된 퍼팅 끝에 맛보는 아찔함...
* 게임 후 얼린 맥주컵에 따라 마시는 생맥주 한 잔과 샤워 후의 노곤한 기분......
mov 파일이 안 올라가니 클립모드로라도
구경하시게...
# 골프의 쓴맛
* 두말할 것도 없이 빗맞는 '삑사리' (지금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장담할 수 없지)
* 호쾌하고 정확한 샷이었는데 언덕 맞고 굴러내려 물이나 모래로 퐁당!
* 두 번에 그린 근처까지 와서 트리플이나 더블파 만드는 멍청이짓
* 모래나 오비에 빠져 헤매고 있는데 바짝 따라붙는 뒷 팀
등등등... 어디 한두가지라야 말이지...ㅋㅋ
# 골프의 신맛
골프문화와 뗄 래야 뗄 수 없는 것인지 아직도 납득이 잘 안 되는 골프 외적 요소들..
보라색 모자 쓰고 있는 것이
내 클럽... taylor made인 척 하지만 사실
1500원짜리 짝퉁이다.
* 일당 40원도 안되는 캐디들 앞에서 내기한다고 왔다갔다 하는 뻘건 100원짜리 인민폐...
* 짝퉁이 골프채나 싸구려 티셔츠가 골프경기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요상한 럭셔리풍.
(남자들하고만 다니다가 요즘 아줌마들하고 다녀보니 확실히 골프는 경기만큼이나 럭셔
리한 문화에 치중하는 운동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난 왜 적응이 안되지?)
* 한국에는 뭐 19번 20번 홀도 있다더라... 그 맛에 친다며?
내일이 아마 올해 상해에서의 마지막 골프가 될지도 모르겠다.
폭염 속에서 한번 원없이 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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