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는 매년 길 떠날 준비를 하고 그날을 위해 열심히 자금도 모아두고 했는데 올해는 어영부영하다 그만 준비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에라 이번엔 집중적으로 골프나 칠까... 하던 중 마침 친구로부터 몇 집이 같이 태양도에 가 1박2일 놀다오자는 전화가 왔다. 우리야 어린아이도 없으니 노는 패턴도 다르고 술도 화투도 별로 즐기지 않는 쪽이지만 어차피 그리로 골프 치러갈 생각이었으니... 저녁에 빈대 붙으면 되겠다...ㅎㅎ
태양도는 상해시 서쪽 朱家角에 있는 상해 10대 레조트 중 하나로 한국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골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승마장, 수영장, 유람선 선착장, 노래방, 사우나, 발맛사지 등등의 위락시설, 특히 넓은 잔디와 다양한 어린이 놀이시설에 별장형 숙소까지 갖추어져 있어 하루 정도 가족들과 놀다 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남편은 아침에 고객과, 역시 태양도에서 골프 약속이 있어 저녁에 거기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다른 일행과 함께 출발했다.
숙박시설 프런트에 가보니 평소엔 절반도 안 차 보이던 모든 시설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대부분 중국 단체손님들이지만 한국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
수련회가 있었던 듯 천주교 팀이 체크아웃을 하고 교회 팀이 체크인을 한다. 사람이 많아 엄마아빠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주차장에서는 서로 다른 팀으로 온 애들이 만나 즉석 축구판을 벌인다.
숙박비는 표준방이 800원, 방 2개에 부엌이 딸린 2층건물 한 동이 1700원, 방 3개짜리 한 동이 2200원이다. (흐미~ 시내 사성급 호텔보다 더 비싸다)
하지만 한국사람들 알뜰하게 노는 데는 도가 텄다. 일단 숙박비는 회원권이 있거나 법인골프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어떻게든 회원우대가격(50% 할인)에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방 2개짜리 3동을 빌리면 한 가족당 425원이 드는 셈이다(3성급 호텔 가격으로 인하). 그래서 아이들은 침대에 재우고 어른들은 매트를 내려놓고 잔다. ^^
주방시설이 있으니까 먹을 것은 모두 준비해오고(준비물 중에 바비큐용품은 꼭 들어가 있는 품목이다) 더 이상은 돈 쓸 일이 없다. 물론 발마사지나 사우나 노래방 등을 이용하면 비용이 더 추가되겠지만 알뜰한(?) 한국아저씨들은 주로 모여 화투를 치고 아줌마들은 매운탕을 끓이며 수다를 떤다.
준비물 얘기가 나와서 잠깐 곁가지를 치면....
한국 아줌마들의 준비성은 정말 감동적이다. 가족여행 날짜가 잡히면 밑반찬 푸짐하게 만들고 곰국을 진하게 끓여 날짜수에 맞게 팩에 넣어 얼려둔다(중국음식 연속 두 끼 못 먹는 가족들을 위해서). 아이가 어린 집은 이불도 하나 정도 챙기고(위에서 말한 방법으로 잘 때 이불이 부족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도시가 아니면 쉽게 구할 수 없는 컵라면(농심 신라면을 말함)이나 일회용 커피도 준비해둔다. 대개 첫끼는 준비해 간다. 샌드위치, 아니면 김밥과 컵라면, 과일까지 완벽하다.
만일 야외로 나간다면 은박매트와 개스버너는 필수이고 바비큐가 있다면 그 구울거리 준비로 일손이 바빠진다. 단결 잘 하는 한국사람 답게 이집 저집 품앗이로 구색을 골고루 갖추는데 펼쳐놓으면 호화부페가 따로 없다. 감자는 반으로 갈라 치즈를 넣어 은박지에 싸고, 옥수수도 버터 발라 은박지에 싸고, 소시지도 준비하고 밤도 눈을 미리 따놓는다. 요리책 뒤져가며 개발한 맛있는 소스에 재운 돼지갈비며 삼겹살에 닭날개까지... 구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개발하여 정성껏 준비한다. 갓 버무린 겉절이 역시 빠질 수 없다(나는 이렇게 준비를 정성껏 해온 집에 얹혀서 얻어먹으며 온갖 재롱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기쁨조다).
체크인은 했지만 숙소는 청소가 한창이라 짐을 풀어놓을 수가 없다(집안에서 쓸려나온 쓰레기 속의 "구미제리", "에이스", "순창고추장" 껍데기는 이 집에서도 한국사람들이 자고 갔음을 보여준다). 기다리는 동안 별장 앞 잔디에 은박자리를 깔아놓고 점심들을 먹기 시작한다(이 야외식사는 중국인들에게 큰 볼거리가 된다. 언젠가 한국회사에 다니는 중국친구가 한국사람들은 놀러갈 때 김치와 김밥을 먹는 풍습이 있느냐고 물어와 배꼽을 잡은 일이 있다).
점심을 먹은 후 아빠들은 골프를 치러,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태양도를 일주하는 인력거나 유람선을 타러 흩어진다. 놀아줘야 하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는 나는 과부처럼 남자들 틈에 끼어 골프를 친다.
제일 마지막 시간에 시작했기에 18홀을 간신히 돌고 어둠을 헤치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숙소 한 동 뒷마당이 대낮처럼 훤하고 온 동네에 군침 도는 냄새가 진동한다. 골프 안 치고 남아 있던 아빠 세 분이 팔 걷어부치고 연신 석쇠를 엎었다 뒤집었다 하신다. 모두들 바비큐 주변에 둘러서서 고기 자르기 바쁘게 집어먹는다. 아, 바로 이맛이야!
권커니 잣커니 백주가 한 순배씩 돌아가는데 어느 분이 감개무량한 듯 한말씀하신다. "외국땅에서 이렇게 한국식으로 즐기는 것도 참말 복이요." ......하모, 하모.......
후기
밤에 돌아온 우리 내외는 이튿날 새벽 골프 치러 가는 길에 다시 이곳에 들렀다. 모두 양껏 먹어치웠기 때문에 중국수퍼에서 구할 수 없는 식량(쌀과 된장)을 보급해주기 위해...ㅎㅎ
골프가 끝나고 나오다가 컵라면과 남은 음식을 모두 털어넣고 잡탕찌개를 끓이고 있는 일행과 또 마주쳐 학생시절 엠티 분위기 만끽...... 2003년 국경절은 이 정다운 찌개맛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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