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혼자 눈뜨는 아침

張萬玉 2005. 7. 26. 10:25

이게 아마 어느 유명작가가 하이틴로맨스 비스름하게 쓴 소설의 제목인 듯한데....

 

상해에서도 남편 출장이 잦아 혼자 눈뜨는 아침이 많았지만 지난 이틀간 맞은 '혼자 눈뜨는 아침'의 맛은 꽤 독특했다. 내 나이 스무살에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가출하여 공장지대 닭장집에 월세 얻고, 알루미늄 냄비에 석유곤로... 되는대로 한살림 장만해놓고 밤늦도록 상념에 젖어 잠못이루다가 새벽녘에 살풋잠... 그리고 맞은 '혼자 눈뜨는 아침'과 비슷한 맛이었달까.

 

그때와는 많은 조건이 달라졌지만 한가지 공통된 점은 '독자노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ㅎㅎ '마음만'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약점이긴 하다..)

사실 한국으로 분가하게 된 것은 아들넘 덕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제대하고 복학을 해야 하니 하숙을 시키지 말고 집을 얻어 우리도 한국 드나들 때 편하게 이용하자... 하고 시작된 의논이었는데 이 의논이 진전될수록 내 마음은 한국으로 치달았고... 일 그만두고 난 뒤 영 백조생활에 적응 못하는 나를 불쌍히 여긴 남편이 마누라 옆에 끼고 사는 호강을 포기하자는 용단을 내린 것. (그런다고 낼름 날아온 내가 너무한가요?)

 

각설하고... 그리하여....

작은 전세집을 하나 얻었다.

지금 열심히 살림을 꾸리는 중이다.

아들넘 하숙할 때 쓰던 물건 몽땅 펴놓고 햇볕 쐬고 세탁기 돌리고

중요하지 않은 가재도구는 남 쓰다 싫증난 거 여기저기서 주워오고

장기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가전제품 등은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하고....

물품배송을 기다리며 선풍기 냉장고도 없는 만두찜통 더위 속에서 구석구석 걸레질로 이틀을 소일하다 보니 팔 다리 어깨 허리가 따로 놀고 어디 얻어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다 쑤신다. 오늘 하루는 일손 접고 쭈욱 뻗어야 할 모양이다.

 

'딩동!!'

아, 드디어 선풍기가 도착했다.

어제 개통한 인터넷 덕분으로 음악 크게 틀어놓고...

혼자 눈뜨는 아침을 위해 끓인 된장국 냄새에 취해본다. (어, 벌써 열 시네..)

 

천국은 이렇게 만들어가는 건가? 

'그 시절에(~2011) > 陽光燦爛的日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시 저를 잊어주소서  (0) 2005.07.31
'다르다'와 '틀리다'  (0) 2005.07.28
복숭아, 세 개?  (0) 2005.07.15
同志를 구합니다.  (0) 2005.07.11
오늘의 잠언  (0) 200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