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重慶) 가는 비행기도 푸동공항에서 뜨기에 한국출장 떠나는 남편과 함께 떠나려고 비행시간을 맞췄더니 집을 싹 비우는 마음이 오히려 개운하다. 샹그릴라를 향해 간다면 당연히 리지앙이나 청뚜행 비행기를 탔어야 하지만 오래 전부터 아들이 충칭에 한번 가보고 싶어 했기에 가는 길에 조금 일찍 내려 거기서부터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8시 25분에 타서 11시 25분에 내렸으니 상하이에서 충칭까지의 비행시간은 3시간... 한국 가는 시간의 두 배가 걸렸다. (특쾌열차를 탔더라면 44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공항에 내리자 훠구어의 본고장답게 후각을 자극하는 훠구어 냄새.... 대낮인지 저녁인지 당췌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대단한 스모그... 여기가 바로 충칭이구나 하는 실감에 가슴조차 두근거린다. 언젠가 여행레저 채널에서 취재한 충칭의 모습을 보고 꼭 SF 영화에 나오는 도시 같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내가 그 세트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어차피 충칭은 밤에 떠나는 청뚜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8시간 정도 잠깐 맛이나 보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공항리무진을 타고 우선 기차역으로 간다. 공항을 벗어나 고가도로를 10분 정도 달리니 벌써 심상치 않은 오르막 내리막... 곧 이어 강변을 끼고 달리는 고가도로와 모노레일, 레고블럭을 쌓은 것처럼 좁고 긴 빌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허나 무거운 스모그에 짓눌린 스카이라인은 꿈 속 풍경처럼 차창밖으로 흐릿하게 흘러갈 뿐이다.
충칭은 도시 안에 큰 강(長江, 嘉陵江)을 두 개나 끼고 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안개가 피어오르면 빠져나갈 곳이 없단다. 여기에 공장 배기가스까지 엉켜버리니 기기묘묘한 세트의 SF 영화는 디스토피아 영화로 변한다. (어디 大氣뿐이랴. 여름이면 43.8℃까지 오르는 악명높은 중국의 "4대 화로"에서 충칭 사람들은 어떻게들 버티는지... 경이로울 뿐이다)
비좁은 도로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곳곳에서 고가도로를 건설중이다.
왼쪽 아래 아줌마들은 구두닦이 영업중.(상해에도 드문 구두닦이가 여긴 꽤 많다. 어째 그럴까?)
낮은 집은 낮은 곳에... 높은 집은 높은 곳에....
높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는 중간층에 다리를 놓아 오간다. ^^
아들에게 왜 충칭에 오고 싶었냐고 물어보니 일단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아니,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란다. 97년 통계로 3000만이 넘었었다)이고 북경, 상하이, 천진과 함께 4대 직할시 중 하나이니 중국에서 산다면 한번쯤은 와봐야 하는 도시이며, 무엇보다도 상하이나 베이징보다 오히려 더 중국적인 도시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란다. 하긴.. 지도상의 위치로만 보아도 과연 충칭은 사람의 배꼽쯤에 해당하는 중심부일 뿐 아니라 개혁개방의 속도나 강도에서 상하이나 베이징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어진 관계로 '중국스러운' 맛이 훨씬 많이 남아 있긴 하다.
역사적으로도 주나라 시대부터 이 지역은 파(巴)나라의 수도였고 삼국시대에 촉한(蜀漢)의 도읍으로 잘 알려진 곳 아닌가. 뿐만 아니라 장강변의 중요한 항구도시이자 쓰촨, 산시, 윈난, 뀌저우, 시짱 자치구 동부를 망라하는 중요한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이다. 연안지방이 중국의 전부인 양 여기고 살아온 우리의 좁은 시야를 잠깐이나마 열어볼 필요가 있지.
20분쯤 달리니 '복잡'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시내가 나온다. 왕복 이차선의 좁은 길 곳곳이 공사로 파헤쳐져 있고 길은 끝도 없이 오르막 내리막이다. 듣기로 충칭시 자체가 분지와 분지를 둘러싼 바위산을 깎아 만들어졌으며 집 지을 만한 평지에는 오래된 집들이 이미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새로 짓는 고층빌딩들은 이제 산비탈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상상이 가시는가?
인민대례당 옆에 새로 만든 보행가 벽에 새겨진 옛 충칭시의 모습.
지금의 기괴하기조차 한 도시개발의 모습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공사중이어서 그런지 원래 저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번화가에 있는 지하도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지하도 입구를 찾느라고 좀 헤맸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면 버젓한 지하상가.
리무진 종점인 上淸寺에서 내려 기차역 가는 길을 찾으려니 아저씨들이 벌떼같이 몰려든다. 숙소나 여행사 삐끼들도 있지만 주로 짐 들어주겠다는 棒棒軍(빵빵쥔)들이다. 양끝에 짐을 걸어 나르는 대나무봉 하나씩 쥐고 기차나 장거리버스 터미널이나 공항버스 정류장이나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는 이 조그만 아저씨들...(정말 덩치가 유난히도 작다) '훠구어', '짙은 안개', '장강을 건너다니는 케이블카'와 함께 충칭을 대표하는 또하나의 명물이라고나 할까? 높낮이가 심한 지형 때문에 운반수단으로서의 자전거나 인력거의 역할을 대나무봉이 얼마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기차역 부근의 빵빵쥔들.. 혼날까봐 제대로 못찍었다.
퇴근(?)하고 있는 빵빵쥔...
빵빵쥔 아저씨들을 피해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기차역 간다는 버스터미널을 어렵사리 찾아 기차역으로 이동... 일단 배낭을 맡기고(표 파는 곳 주변에 짐 맡아주는 곳이 많이 있음. 크기나 수량에 관계없이 15원) 무거운 짐 내려놓은 기분에 좋아라 택시에 올라탄 뒤 "차오티엔먼(朝天門)!!' 하고 외치니 기사 아저씨가 '너희 놀러왔지? 어디어디 돌고 몇시 기차 탈 건데?' 하고 묻는다..
헉!! 이럴 수가... 길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실수 시작이다. 아저씨가 물어주지 않았다면 정신 빼놓고 놀다가 충칭에서 잘 뻔했다.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다더니 기차표를 끊으러 왔다가 짐만 맡기고 놀러나간다네! (아이고 아자씨, 고마워서 워쩐대유?)
역으로 되돌아가 저녁 9시에 출발하는 청뚜행 기차표 두 장 예매하고 조천문으로...
기사님 말씀이 장강을 끼고 달리는 그 길도 와이탄(外灘)이라네. 상해에 있는 게 와이탄인데요? 하니 와이탄이 중국 전역에 열 군데쯤 된단다. ^^
朝天門은 상해에서, 주로 훠구어 식당 간판에서 자주 보던 이름이다. 예전에는 충칭이 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충칭 시내 곳곳에서 '**門'이라는 명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식용유 상표인 臨福門 역시 충칭의 옛 성문 이름 중 하나) 그중 조천문이 가장 대표적인 성문인 듯. 그러나 휴일 풍경은 어떨지 몰라도 유람선 선착장과 장강변 외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조천문 광장은 무겁게 내리깔린 안개에 싸여 썰렁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충칭에 왔으니 좋든 싫든 일단 훠구어 한번 먹어주고....
(훠구어는 최소한 네 명 이상 모여야 시도하는 게.... 기본으로 주는 양이 너무 많다)
충칭에서는 케이블카가 관광용이 아니라 일상적인 교통수단이다. 장강에 한 군데, 가릉강에 한 군데.... 출퇴근 시간에는 꽤 붐빈다고 한다. TV에서 보았던 이 특이한 대중교통수단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장강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간다.
10층 넘는 아파트 높이에 있는 케이블카 정거장.
케이블카 정거장에서 내려다본 정다운 동네 골목
발 아래에는 도도히 장강이 흘러간다.
케이블카로 도착한 강 건너 마을
충칭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국민당정부의 수도가 되기도 했으며,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옮겨가 있기도 했던 곳이다. 꼭 이곳을 가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충칭시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비파산 공원에 가는 길에 우연히 간판이 눈에 띄길래 택시를 멈추고 들르게 되었다.
그시절 애국인사들의 육필
충칭 시내를 전망하기 좋은 비파산 공원. 입장료도 안 받는 서민들의 휴식처다.
평일 대낮이라 그런지 인적은 드물고 우짖는 새소리만 요란했다.
비파산 공원에서 내려다본 충칭 번화가
人民大禮堂 - 시민회관 같은 곳이다
충칭 최대의 번화가 解放碑 앞 광장
기차역은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깨끗해졌지만 괴로운 발냄새는 여전히 피해갈 수 없다. 개찰할 때 밀어제끼고 끼어드는 초강력 파워 역시....^^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나는 1층 아들은 2층) 양말과 파카를 벗으니 호텔에 체크인 한 것처럼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나그네에게 몸을 눕히고 밤을 보낼 자리란 그만큼 소중한 것.
열차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니 등 밑이 흔들흔들.... 저절로 졸음이 쏟아진다. 혼곤한 잠 속에서도 얼핏 스쳐가는 생각....
왜 나는 짐짝처럼 실려다니며 이 고생이지? 길 떠나기 전에 꿈꾸었던 것만큼 행복한가?
ㅎㅎ 행복한지 안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아니, 행복 안행복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확실한 건 지금 내 등 아래에서 날 흔드는 저 진동처럼 나의 안일한 일상을 뒤흔들어줄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열린 시야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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