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샹그릴라 답사기 4 - 빠탕 찍고 망캉으로

張萬玉 2006. 1. 17. 14:58

신통도 해라.... 상해 시간이라면 새벽 네 시나 다름없는 신새벽에 지각한 사람 하나 없다. 

종일 버스 안에 있을 꺼라고 완전무장을 안 했더니 웬걸, 버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이가 저절로 딱딱 부딪친다. 하늘엔 별들이 얼어붙은 보석처럼 초롱초롱.... 별이 얼마나 많다고 해야 할까.... 꼭 한 다라이 들어다 확 쏟아부은 것 같다.

칸트의 별은 '이성', 내 마음의 별은 '양심'.... 고딩 시절 어느 윤리시간엔가 꽂혀버린 이 문장은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비이성적일 수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이후에도) 별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 떠오른다. 망망한 밤바다의 별은 배의 길잡이가 되고 사천성 어느 깊은 산속에서 본 새벽별은 갑자기 내 마음을 남편에게로 이끌어간다. (별 보며 님 생각이라더니...ㅋㅋㅋ)

 

(누구나 다 그렇게 느끼기에 한평생을 살겠지만) 내 남편은 다르다. 어찌 다르냐 하면... 나이 오십 중반에도 별을 보고 산다. 발은 비록 땅을 딛고 살지만 눈은 늘 별을 본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사는 줄 안다. 특히 오십줄을 바라보는 마누라조차도 그런 줄 안다. 마누라가 땅만 보고 있는 것 같으면 손을 잡아끌고 옥상으로 올라가 별을 가리킨다.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간에 더 나은 모습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매우 깊은 사랑의 행위일 터... 벽창호 같은 이런 사랑이 어이없고 답답할 때가 더 많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가 함께 꾸려가는 인생을 값진 보석처럼 느끼게 하기도 한다. (ㅎㅎ 나 지금 오버하고 있니?)          

      

어느새 성에가 두텁게 끼어버린 창문 사이로 붉은 아침햇발이 어른거린다. 오늘 빠탕 도착시간은 밤 9시가 넘는다니... 버스 타는 시간이 자그마치 15시간이다. 꺄~악!!

내가 버스 타려고 여길 왔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머리를 든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이젠 별 수 없다. 즐기며 가는 수밖에.... 과자상자를 납작하게 접어 창문 성에 긁기에 들어간다. 

 

 

유리창을 통해 찍으면 사진이 요로코롬 몽롱하여 몇장 찍다 말았다. 

 

이리저리 그어진 버스 길을 따라 끝도 없이 달려가다 보면

 

초원도 나오고 침엽수림도 나오고 눈을 덮어쓴 봉우리도 나오고 바위산도 나오고...

초원 위에 점점이 야크떼도 나온다.

 

10시 반 경 雅江에 잠시 서서 차는 기름을 보충하고 사람은 물을 빼고.... 가위산(剪子湾山)이라나 카쯔라산이라나... 아무튼 계속 산으로, 산으로...

 

12시가 조금 넘으니 理唐에 도착한다. 4000m 고지이자 캉띵에서 200km, 청뚜에서 650km 떨어진 오지.... 허나 간지(甘孜) 장족자치주의 중심도시 중 하나이자 망캉과 따오청으로 갈리는 길목에 있는 교통상의 요지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오지에 인구가 5만이 넘는다니 신기하다. 여기 사람들은 어쩌다 이 멀고 높은 곳까지 흘러와 살게 되었을까?

 

 

놓아먹이는 돼지들만이 오락가락하는 쓸쓸한 버스 터미널.

 

정말 볼 것 없는 이곳도 하늘 하나는 일품이다. 

여기서도 삼겹살부추볶음에 상추볶음 시켜 배부르게.... 아침을 안 먹어서리...

 

 

산꼭대기에서 웬일인지 차가 잠깐 선 틈을 이용해 한장 찰칵...

리탕현을 벗어나 빠탕현 구간으로 들어서자 도로상태가 아주 심각하다. 다름이 아니라 이 구간 전역에 걸쳐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철도를 놓는 대역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라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고 했던가? 돌 튀겨가며 자갈 위를 달리는 건 기본, 계곡 옆으로 난 길이 허물어져 있으면 살짝 물로 내려가기도 하고 마주오던 차가 구덩이에 빠져 꼼짝 못하면 사람들이 내려 밀어주기도 하고....아무튼 80년대에 나온 짚차 광고 카피를 연상시키는 막무가내 주행이 8시간 내내 계속된다. 골짜기는 왜 이렇게 깊은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길은 끝날 때까지 험상궂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릴 만도 하더군.

 이번 여행에서 '내가 이 길을 왜 왔던고..' 후회한 게 딱 두 번이었는데, 한번은 추위와 고산증에 시달려 잠못이루던 망캉에서의 밤이었고 또 한번은 해 떨어진 후에도 여전히 끝 모를 산악도로를 돌고 돌며 아래로 아래로 내달리던 빠탕현 도착 전 마지막 두 시간.... 

시내라고 들어오니 검은 밤바다의 고기잡이배 불처럼 점점이 떠 있는 등불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밤 열시 가까운 시각. 오늘 이 도시에서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터미널에 내일 망캉 가는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 이론이론!! 내일은 버스가 없단다. 

그럼 우짜면 좋겠냐고 물으니 내일 아침 아홉시쯤 시내에 나와보면 망캉까지 데려다주는 빵차들이 많이 있으니 그걸 이용하란다. 공연히 걱정부터 앞서지만 일단 숙소를 구해서 하루 자고 보자. 무슨 수가 나겠지....

시내라 해봐야 10분도 채 안 걸려 도착하는 길 양쪽 두세블럭 구간이 전부다. 중국 인터넷에서 본 金惠賓館을 찾아갔는데 에어컨도 안 되고 시설도 부실해 툇짜. 밤은 늦었지만 오늘밤은 무슨일이 있어도 따뜻하고 푸근한 곳에서 푹 쉬겠다는 일념으로 골목을 이리저리 뒤지다 발견한 호텔 雪域za西賓館(0836-5621588). 지방의 삼성급 정도 되는 시설인데 100원밖에 안 한다. 따뜻한 물과 에어컨, 만족하게 나오고.... 오랜만에 대하는 럭셔리한 침대에 우리 모자 쓰러졌다!!

 

ㅎㅎ 평소 같으면 이게 무슨 볼거리라고 올리나? 할 테지만...

   

꿈도 없이 달게 자고 일어나 오랜만에 더운물로 샤워 씩이나 하고 짐을 꾸려 나오니 프런트 아가씨는 아직도 꿈나라다. 여기 시간감각으로는 여섯 시나 마찬가지니 아침 여덟 시까지 자느냐고 핀잔을 주긴 좀 그렇지만.... 프런트 바로 뒤쪽에 놓인 간이식 침대에 이부자리 푹신하게 깔아놓고 자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그건 좀.... ㅎㅎㅎ

아무튼 체크아웃 하고 나와 죽 한사발씩 사먹고 나니 빵차 기사 여럿이 따라다니며 호객을 한다. 우리가 둘러메고 다니는 배낭 자체가 삐끼들에게는 페르몬이지 뭐. 망캉까지 300원을 부른다.

빠탕이란 곳이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좋았으면 하루 기다렸다 대중버스를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란한 이 도시는 500원이 생긴다 해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아 (1000원이라면 몰라도 ^^) 착해 보이는 빵차 기사를 잡아 250원에 흥정하고 우리는 빠탕을 떠난다.       

     

 

기사가 운전면허 집에 두고 왔다고 동네 골목어귀에 차를 잠시 세웠다.

스님, 오토바이 끌고 어디 가세요?

 

 

먼길 떠나기 전에 일단 加油 !!(기름을 넣는다는 이 말엔 '힘내라'고 응원하는 뜻도 있다)

붉은 잠바 입은 청년이 우리 기사님...0836-5623811 吉村

 

 

차의 왼쪽 위에 붙은 사진이 판첸라마, 그 다음이 라싸에 갔을 때 달라이 라마 대신 중국에서 임명한 모모대사와 함께 찍었다는 단체사진(이 양반 사진은 송찬린쓰에서도 보았는데 잘 모르겠다. 조사해보고 이 대목을 수정하겠음).... 그 옆이 그때 받았다는 부적, 그 아래로 늘어뜨린 흰 띠는 손님이 오면 목에 걸어준다는 '하다'....

이런 聖物들을 잔뜩 지니고 다니는 길촌씨는 험한 길을 다녀도 사고가 없으려나...   

 

 

양떼와 야크가 길을 막는 일은 다반사

 

 

빠탕현과 망캉현을 잇는 다리.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은 리지앙까지 흘러가는 金沙江이다.

 

도중에 배낭을 짊어진 아저씨들을 보더니 길촌 씨가 차를 세운다. 자기 친구들인데 조금만 좀 태워주면 안 되겠냐고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 동네엔 차가 드물다면서.... 아, 물론 그래야지..(근데 나중에 보니 시뻘건 백원짜리가 오고가더라. 친구는 무슨...)

얼핏 보면 50쯤 되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30대 초반 정도 되는 이 아저씨들은 보통화를 전혀 못하는 장족들이다. 읍내 나가나 했더니 웬걸...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가 없는 산속에서 내린다.

 

 

장족들은 산을 잘 탄다. 약초도 캐고 나무도 하고...

 

"이렇게 막막한 곳에서 내리면 돌아갈 때 어떻게 돌아가려나? " 물으니 사흘 뒤에 자기가 데리러 오기로 했단다. 엥, 사흘 뒤라구? "저 아저씨들 어디 가는 건데?" 물으니 나무하러 간단다.

"아니, 왜 동네에서 안 하고 비싼 차비 내가면서 이 먼 곳까지 오는데?" 했더니 저 아저씨들이 하는 나무는 고급 가구용으로 사용할 향나무란다. 오가는 길에 약초도 캐고... 

"오늘밤 저 아저씨들은 어디서 자나?" 하니 나무 아래서 잔단다. 아하, 그 배낭처럼 뚤뚤 말린 것이 침낭 아니면 이불이었군. 그래도 그렇지, 밤 기온이 최소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갈 텐데.....  

 

 

 

잠시 차를 세운 뒤 볼일 보고 돌아오는 길촌씨.

 

울 아들보다 두 살 많은 25세의 꽃다운 나이지만 아내와 8개월 된 딸,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생과 홀어머니 등 다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운전은 아홉살 때부터 했고 면허 딴 지는 3년 되었으며 이 중고차를 사서 영업하기 시작한 지는 1년 되었는데 자기 또래들에 비하면 꽤 출세한 편이란다. 라싸 포탈라궁에 두 번이나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걸 보니 여느 장족처럼 신앙심이 꽤 깊은 모양이다. 아들넘이랑 자유시간 나눠먹고 한국 가수 얘기하고...그러면서 우리가 매우 맘에 들었는지 다음에 오면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면서 자기 가족 다섯 명 이름을 모두 적어준다. ㅎㅎ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되 어제 봤던 산은 오늘 보는 산이 아니구나...(ㅎㅎ 싱겁긴!)

 

오늘도 세 시간... 이리저리 산을 넘어 망캉에 도착했다.

찢어질 듯 푸른 하늘과 눈을 찌르는 강렬한 햇살이 우릴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