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중국에서 보는 영화 1-- 제인 마치의 戀人

張萬玉 2004. 4. 7. 12:57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비디오가 출시된 직후인 1992년 가을이었던 듯 싶다.
두 번째로 본 것은 2001년 수험생이 된 아들놈 뒷바라지한다고 한국에 가 있을 때 유선에서 보았고...
얼마 전 연변 서시장 골목 브이시디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길래 사들고 와서 또 보았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중국남자와 서양여자의 연애를 통해 우월한 서양-열등한 동양(후진 중국)의 구도를 깨뜨렸다는 점이 이슈가 되었던 터라 그 대목에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지금이야 국제도시 상해에 있다 보니 서양여자와 결혼한 중국남자도 여럿 보았고, 유학파 상해남자가 얼마나 세련된 멋쟁이인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 이 주제는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듯...  대신 각종 원조교제 사례에 익숙해져버린 요즘, 원조교제 속에서 몰래 움터나온 로맨스(?)를 늙어죽을 때까지 소중히 가져가는 정통 멜로드라마(?)를 대하는 느낌이 자못 신선하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남편 없이 혼자 지내서 그랬나, 배우들의 섬세하고 관능적인 연기와 쓸쓸한 화면에 빠져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
처음 만난 차 안에서 소녀의 손을 향해 조심조심 다가오던 양가휘의 손(손에 땀 난다).
느끼하다기보다는 애절하게 느껴지는 양가휘의 눈길...
'숨어있기 좋은 방' 밖에서 들려오던 소란스러움과 천장에서 느릿느릿 돌던 선풍기...
춤추는 제인 마치의 앙큼한 히프, 당돌한 눈매와 뻐덩니를 따라 올라온 입술....
가족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관계가 부적절한 것임을 가족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확신시키려는 듯 제인 마치는 마음껏 요염함을 발산한다. 그녀의 신랄함, 그녀의 순진함, 그녀의 뇌쇄적인 요염함으로 인해 양가휘의 거만한 눈빛연출도 괴로움에 흔들린다.

세 번째 관람에서는 이전에 별 인상없이 지나갔던 장면들이 추가되었다.
하나. 결혼식 장면... 중국에 온 다음에 봐서 그런지?
그들의 이별장면--양가휘가 '이제 나는 껍데기뿐'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화면은 침침한 아편연기 속으로 빠져든다.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새파란 하늘.
신부의 의상은 너무나 붉고 결혼잔치는 풍성하다. 껍데기만 남은 신랑 역시 붉고 화려한 의상에 둘러싸여 있다. 가슴의 통증을 억누르는 무표정은 따라오반의 싸오예(대갓집 도련님)의 거만함으로 표현되고 중국식으로 시끌벅적한 결혼식은 깊은 슬픔의 반어적 표현이 된다.
둘. 여류작가 제인마치의 독백... 두 번 다 주의하지 않았던지 기억에 전혀 없는데, 이번에서야 이 스토리의 전말을 알게 된 셈이다. 마지막 독백으로 인해 이 영화의 가치가 조금 달라지는 것일까...? 양가휘가 조금은 더 따듯한 느낌으로 남겠지만 글쎄... 인연이 엇갈린 뒤 그렇게 마음을 이어간다는 것이 꼭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어서 그러기는 하겠지만

아직도 엇갈리는 인연을 지켜보며 슬픔에 잠기는 게 좋으니 난 철이 아직도 덜 든 건가. 그래도 감상포인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