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종점인 리지앙...
예전에 느꼈던 놀라움과 열광은 어디로 갔는지... 예쁘긴 하지만 '여전히 예쁘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다. 완벽하게 관광지로 개발된 도시는 웬지 특별한 감흥이 없다. Am I wry? (블뤼멍타그님의 블러그 이름.. ㅎㅎ ) 아마 유럽에 가도 미국에 가도 비슷한 심정일 듯한 예감이....
우쨌든 이 여행기의 마지막이 될 듯한 포스팅을 감동적으로 끝내지 못할 듯한 미진함이 남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벗들을 안내하련다. 자, 사진 보러 가실까요?
지난밤 잠을 설쳐 약간 멍한 상태로 숙소를 나섰다. 입맛도 없고 어딜 가보겠다는 의욕도 없이...
(우리 방 이층에 사무실 같은 게 있는데 그 사람들은 퇴근도 안 하는지 새벽 두 시까지 말소리에 의자 직직 끄는 소리까지 합세하여 신경을 몹시 긁었다. 목조건물이라서 특별히 심각했음)
허나 달콤하고 풍성한 아침식사로 기운을 차리고
굿모닝땐스로 건강을 다지는 할머니들을 보며 스러져가는 흥을 북돋운 뒤에
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萬鼓樓에 올라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친 리지앙 시 번화가와
기와집 풍경이 입 딱 벌어지게 만드는 고성을 내려다보니 다시 기분이 가을하늘처럼 쾌청해졌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저 수로는 미로처럼 엉킨 길 찾기의 표지판 역할을 해준다.
꼭 봄날 같다. 고성을 가로지르는 도랑가 곳곳에 놓인 저 벤치에 걸터앉으면 금방 행복한 고양이처럼 졸음에 잠길 것 같다. 운남성은 정말 사철이 봄이다.
고성 곳곳에 나들이나온 老百性들(우리식으로 말하면 보통사람들)... 스님은 한 집에서 거의 한 사람씩 배출한다니 이 동네에선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듯.
동네 골목길. 70년대 내가 초딩 시절에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살았던 동네 골목 같다.
좌) 까무잡잡한 피부에 콩자반 같은 눈동자... 이 예쁜 아기가 내일의 리지앙 주인이 될까?
우) 엉덩이에 주목하시라... 빨간 것은 바지요 하얀 것은 기저귀다.
복장이 불량하여 흰 기저귀를 내보이는 것이 아0니다...
중국 아기들 바지는 다 저렇게 엉덩이를 터놓았다.
기저귀 갈기에나 건강에는 좋을지 모르겠는데 겨울엔 엉덩이가 시릴 것 같다.
여기는 쓰팡지에와 다른 또하나의 광장인 꾸청꽝창. 랜드마크는 커다란 물레방아다.
모르긴 해도 이 도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관광업에 종사하지 싶다. 사전정보 하나도 없이 이 도시에 발을 들여놨어도 이 광장만 찾아온다면 아무 문제 없다. 관광가이드나 숙박시설, 리지앙시 교외로 나가는 교통편... 뭐든지 해결된다.
리지앙사람들은 다른 관광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뭔가 다르다. 부지런하고 자부심에 가득차 보인다. 관광객들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하지만 한푼이라도 더 우려내려는 비굴함이나 야비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물론 물가 자체는 동급 타도시에 비해 꽤 비싼 편이지만(숙박비만 빼고)...
문 열린 틈에 객잔(여인숙) 안쪽 사진 한장 찰칵...
리지앙에 오면 숙소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이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을 개조해 숙박업을 하니까...(인줄 알았는데.... 대부분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집을 사서 숙박업이고 요식업이고 판매업이고 한단다. '큰돈은 외지인들이 벌고 여깃사람들은 관광안내나 종업원을 해서 입에 풀칠이나 한다'는 게 여깃사람 말이다. )
만고루에서 내려와 어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예전에 왔을 땐 한밤중 야경 구경만 했던 흑룡담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룡설산 배경의, 倒影이 아름다운 이 한컷을 위해서 멀리서부터 일부러 찾아온단다.
그러나 올해는 눈이 적어 아름다운 은발을 자랑하던 옥룡설산도 어쩔 수 없이 대머리가 되었다.
이 풍경은 너무나 유명하여 인터넷을 뒤지면 훌륭한 사진들이 너무나 많이 떠 있으니 나의 빈약한 사진은 슬쩍 보고 지나가시기를....
아마 원주민들은 입장료가 무료인 모양이다. 어쩌면 오후 2시에 있는 나시음악 공연 때 무대 아래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멤버들인가? 나무밑에서 수다를 즐기던 할머니들은 음악회가 시작되자 무대 아래에서 군무를 펼쳤다.
전에 왔을 땐 밤이라 못봤던 동파문화연구소 간판이 눈에 띄길래 들어가봤더니....
의외로 볼거리가 푸짐하다. 사라져가는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이룬 성과. 소수민족의 민속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 잘 알고 적극 지원하는 정부의 역할도 큰 듯하다.
나시족의 숭배동물은... 개구리다.
용 입으로 들어가 뱃속을 따라가며 관람하는 세팅은 한족들 껀데....
우짯뚠 용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니 한족 부처님과는 다른... 귀여운 나시족의 부처님이 나타났다.
제단 장식은 나시족의 샤머니즘 풍이고 바친 제물은 라마불교 풍이고....
이 연구소가 보여주는 동파 샤머니즘은 제정일치 시대의 원시종교이니 지금 그걸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지역 라마교에는 확실히 티벳 지역의 라마교와 다른 요소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불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가 스며 있는 것처럼....
이곳은 민족문화를 지켜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동파문화교실'이다.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몇 회씩 강좌를 연다고 한다.
이것이 동파문자.(노골적인 상형문자.... ^^)
이게 누가 그린 무슨 그림인지... 지금 봐도 모르겠넹... 거기 걸려 있던 건 맞는데....
색감이 독특해서 한번 올려봤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긴 했는데... 꽃놀이 할 시간이 없다. ㅜ.ㅜ
쑤허고성 가는 길가에 새로 지은 호화빌라가 늘어섰다.
이 멀고먼 동네에도 부동산 투기 바람이? 그 귀퉁이에 한국사람들도 한몫? 그런거야?
리지앙 고성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쑤허고성은, 말로는 리지앙고성보다 더 오래된 고성이라 하지만 리지앙 고성이 먼저 개발되어 돈을 버니까 따라하는 모양새가 되어 별 특징이 없다. (새로 생겼다기에 한번 가보긴 했지만, 번잡한 리지앙고성을 피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리지앙고성과 중복하여 구경할 필요는 없을 듯)
쑤허고성 입구
四方街(여기도 쓰팡지에가....^^) 바깥쪽. 이곳의 느낌은 꼭 따리(大理) 같다.
6년전에 먹었던 나시족 식 돌솥밥을 잊지 못해 시켜먹었는데....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베이컨과 감자, 콩을 넣어 돌솥에 지은 밥을 톡 쏘는 삭힌고추 간장에 비벼서... 아흐~
오, 패션 좋고, 포즈 좋고....... 할아버지 멋재이!!!
여기는 리지앙시의 중심 홍태양광장. 6년 전에는 모주석이 바닥에 서있었던 것 같은데?
56개 소수민족을 통일한 모주석의 동상 옆에서 매일 소수민족들의 춤판이 벌어진다.
이 동네는 어디를 가나, 시도때도 없이 춤판을 만날 수가 있어... 좀 의아할 지경이다. (혹시 이 도시의 주업종인 관광업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공공근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ㅎㅎ)
리지앙 고성으로 돌아오니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한다.
야들아, 학교 파했으면 싸게싸게 집에나 가지 뭘 보고 있다냐?
저녁을 먹고 고성광장 부근의 동파문화궁(쉔커 선생이 운영하는 동파음악연구소 건너편)에 굿을 보러 갔다. 결국 나시족의 춤과 노래가 주를 이루는 무대였지만 그래도 생존해 있는 최후의 샤먼(무당) 이라는 할아버지가 나와 주문도 외고 기묘한 몸동작도 하는 등 예전에 본 나시족 음악회와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남녀 단원 무대에 나온 인원수만도 60명은 족히 넘어 보이고.... 저 아가씨들 솜씨도 민족무도학교 다니며 돈들여 익힌 걸텐....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손님이 너무 없어(열 명도 채 안 됐음) 내가 괜히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아직도 이 동네 예술인들은 배가 고픈가보다.
동파 무당의 굿 무대와 함께 10박 11일 샹그릴라 소장정의 무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데...
내리기 전에 잠깐! 영화에서도 죽인 줄 알았던 나쁜놈이 갑자기 피묻은 손을 뻗어 발목을 콱 잡지 않더냐... ㅎㅎ 그냥 끝내기 섭섭하니 어이없는 꼬랑지 하나.
오후에 고성에서 우연히 만나 우리 소개로 우리 옆방에 든 조선처자 둘이 있었다. 한 아가씨는 자기 몸집 만한 배낭을 지고 막 호도협 트래킹에서 돌아온 '선수'이고 또한 아가씨는 북경에서 어학연수중인 대학생이다. 귀엽고 기특해서 밥이나 한끼 사줄까 했는데 서로 스케줄이 다르니까... 그럼 이따 밤에 같이 맥주나 마실까? 하고 헤어졌다.
허나 공연을 보고 나니 이미 열 시가 넘었고 내일 아침엔 8시 20분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섯시경에 숙소를 나서야 하니 밤늦은 음주정담이 약간 부담이 되었다. 그냥 모른척 헤어지기는 섭섭하고 해서 과일이라도 나눠먹을까 했지만 과일가게도 눈에 띄지 않고... 할수없이 내일 아침으로 먹는다고 벚꽃마을에서 사온 김밥이나 좀 나눠줘야지.
그 처자들이 숙소로 돌아온 시간이 너무 늦었길래 그냥 아들넘 편에 김밥상자 두 개중 하나를 보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나머지 한 상자를 열어보니 김치만 가득...
2인분 김밥을 한 도시락에 넣고 또 한 도시락엔 김치를 담아줬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동네에선 귀물에 속하는 김치를 버리랴... 그럴 순 없지..
울며 겨자가 아니라 실소를 터뜨리며 맨입에 그 김치를 다 먹었다는....
그래도 벚꽃마을 김치가 짜지 않고 맛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여행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여행길에 함께했던 상념들은 훗날 오늘의 보물 카테고리에서 再見하기로 하고.... 멀고 험한 길을 함께 해주신 벗님들, 저만큼이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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