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국내

남도여행7 : 부안 찍고 전주로

張萬玉 2006. 5. 23. 19:43

중국으로 떠나던 해 2월에 와봤으니 벌써 9년이 흘렀구나. 

옛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길도 넓어졌고 당시 우리 묵었던 여관(당시엔 모텔이라고도 안 했다) 건너편에 시끌벅적한 야영장이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였는지  짐작도 안 간다. 

일단 눈에 띄는 건물로 가본다. 채석강 리조트.... 콘도동과 모텔동을 거느린 꽤 큰 숙박시설인데 MT들을 왔는지 좀 시끄럽기도 하지만 그리 좋아 보아지도 않는데.. 가격은 센 편이다(모텔 5만원, 콘도는 더 비싸고...) 여기가 이 동네 최고의 숙소인가보다... 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나왔다. 겨우 예닐곱 시간 등짝 붙이고 말 건데 럭셔리 찾으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생각도 안 나는 평범한 이름의 평범한 모텔에서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니 일곱시다. 블뤼는 아직 한밤중.

매일 아침 하던 걷기운동을 이번 일주일 동안은 한 번도 안 했다는 생각이 들어 블뤼 일어날 때까지 한 시간만 걷기로 한다. 동네 정찰도 할 겸.    

밝은 아침에 보니 옛기억이 살아오는 것 같다. 해변 쪽으로 바로 안 나가고 아직 차가 드문 국도를 따라 20분쯤 걷는다. 이 동네는 어쩐 일인지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다. 유채꽃을 따라 왼쪽에 있는 마을로 들어서서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넘으니 채석강과 적벽강 중간에 위치한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난다.

 

 

왼쪽에 보이는 언덕이 채석강이다.

7천만 년 퇴적한 해식단애가 수만권 책을 쌓은 듯한 층을 이루고 있는 곳이니 당연히 가까이 가서 찍어야 그 진면목을 잡을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려니 너무 멀다. 사진 찍으러 출장 온 것도 아니고... 걍 대강 한컷만 찍고 말았다.

(채석강이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시기 바란다. 사진자료 많이 나와 있다.)

 

사진 정면 마름모꼴 비석의 왼쪽에 있는 파란 것이 무엇인고 하면.... 대장금이 귀양지에서 민정호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찍은 곳임을 알려주는 표지다.(전 국토의 세트장化 ㅎㅎㅎ)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불멸의 이순신'과 '왕의 남자'를 찍은 부안영상테마파크가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아침에 거기나 가볼까?

 

그나저나 이제 고속도로에 올라타면 정오쯤 집에 도착하겠지? 슬슬 집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남편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기한이 아직 하루 남았다고 생각하니 좀 아쉬운 생각도 든다. 블뤼를 전주까지 태워다주고(블뤼는 길 나선 김에 무주 사는 친구 집에 들러 더 놀다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주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많이 벗어나니 자기는 그냥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오늘 하루는 원래 예정대로 혼자 함 놀아봐?

 

머리를 굴리다 보니 생각이 점점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갑자기 홍성 사는 선배 생각이 나 전화를 돌려본다. 선배가 중국에 왔을 때 봤으니 본 지가 벌써 3년 넘었군. 물론 당장 오라고 야단이다.

그럼 좋아, 전주에 블뤼를 데려다주고 논산을 거쳐 칠갑산을 넘는 국도를 한번 타보자. 전주에 들른 김에 도나지님도 한번 불러내 볼까? 홍성까지는 기어가도 세 시간이면 갈 테니....

머리가 핑핑 돌아가면서 손가락 끝이 바빠진다. 도나지님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귀청이 떨어질 뻔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블러그가 뭐길래..... 덩달아 나도 괜히 즐거워진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나니 마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니 마침 블뤼도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있다. 나의 계획을 말하니 그럼 내소사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으니 생략하고 부안은 어차피 지나가는 길에 살짝 점 찍은 것으로 하자고 흔쾌히 나서준다.

 

그래도 오전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다. 블뤼와 함께 다시 채석강 한바퀴 돌고....

어젯밤 넘고 넘던 그 구절양장 산길을 밝은 태양 아래 넘어간다.(에공, 껌값이잖아?) 게다가 오른쪽 낭떠러지 아래쪽은 대단한 해안선.... 9년 전에 왔을 때 너무나 예쁘고 자그마한 해안을 자기 앞마당처럼 끼고 있는 집을 발견하고 '저 집이 우리집이거나 아는 사람 집이면 참 좋겠다'고 했는데, 거기가 저기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꼭 그렇게 생긴 터에 자리잡은 아담한 까페도 눈에 띈다. 역시 변산반도는 관광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통째로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산길을 벗어나 조금 달리니 곰소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곰소라면... 젓갈로 유명한 그 곰소항?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우리집 냉장고에도 젓갈 없는 것 아니고 우리 사는 데가 아무리 소래포구, 전곡항 근처라지만 곰소항에는 또 곰소항 나름의 표정이 있을 테니.... 

(작은 사진은 클릭 필수!)

 

 

 

정다운 어시장 풍경.

젓갈시장의 명성에 걸맞게 멍게젓, 낙지젓, 밴댕이젓, 청어알젓 등등 다양한 젓갈이 값도 싸다.  

 

 

 

줄줄이 매달린 갈치를 비롯하여 가오리, 병어, 서대 등이 해풍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다.

남편이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다는 박대찜 노래를 부르길래 그게 뭔가 했더니 바로 서대 큰 놈을 말하는 거였다. 동네 시장에서는 거의 못봤는데 이 동네 오니 젤로 눈에 띄는 게 그놈일쎄. 열 마리 한 두름 집어드니 만 원이다.  

 

 

곰소항은 부안에서 24km지점에 위치한 진서면 진서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말기에 우리 나라에서 착취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반출하기 위해 도로, 제방을 축조함으로써 육지가 되면서 만들어진 항구아다. 1986년에 제2종 어항으로 지정되어 150척의 배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주변에는 넓은 염전이 있어 소금 생산지로도 유명하고 무엇보다도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주말이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일부 펌)

 

도나지님과 약속한 시간은 오후 두 시. 블뤼에게 운전대를 맡겼더니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일단 약속장소 부근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객사(客舍)로 간다.  조선왕조의 왕통을 낸 고장답게 도시 곳곳에 우아한 유적들을 많이 갖고 있는 전주... 그 전에도 두어번 들르기는 했어도 제대로 구경 한번 못해본 곳이지만 오늘 역시도 간만 살짝 보고 갈 것 같다. 언제 한번 1박2일 날 잡아서 본격적으로 맛을 볼 만한 도시인 듯. 


 

   

 

좌 : 객사는 고려, 조선 시대에 중앙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나 외국 사신들이 묵었던 숙박시설로 관찰사들의 동헌보다격이 높은 官舍였는데, 특히 이성계가 묵었던 전주객사의 경우 임금이 직접 쓴 편액이 내걸려 있다. 500년 세월을 거치도록 도심 한가운데 남아 민초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옛집의 모습.... 정답고도 보기좋았다.   

 

우 : 전주에 친구가 있으니 그 유명한 전주비빔밥을 제대로 맛보게 되는군. 남도 밥상과는 달리 스타일을 중시하는 예술적인 식탁.... 금빛 찬란한 방짜유기에 담긴 칼라풀한 그 자태를 찍기는 찍었는데 너무 볼품없이 찍어서 오히려 전주비빔밥의 명성을 훼손할까봐 차마 올리지 못하겠고... 대신 호박과 장독으로 멋을 낸 음식점 입구만 살짝 보여드린다.

 

 

  

 

객사에서 멀지 않은 한옥마을 거리. 바쁜 마음에 채 다 못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큼 한옥이 많지는 않아 약간 섭섭했다. 대신 우아한 한지공예 작품 구경으로 눈을 호강시켰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서울 남산의 한옥마을이 궁금해졌음.

 

 

         

 

경기전 맞은편에 있는 전동성당. 천주교신자의 순교지였던 이 부지를 1889년 프랑스인 신부가 매입하고, 1908년에 역시 프랑스 신부가 설계하여 완공시킨 이 건물은 호남지방에 남아 있는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중국인이 세운 최초의 성당이라던 상하이 인근 松江의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순교자 부부의 모습을 새긴 스테인드 글라스가 내 눈길을 끌었다. 

 

 

 

 

태조의 영정을 모셨다는 경기전은 무엇보다도 대숲 우거진 너른 정원이 아름다웠다. 마침 야외학습을 나왔는지 신록과 잘 어울리는 여고생들의 싱싱한 웃음소리가 넘치고 있었다.

너희만 세 친구냐? 우리도 세 친구다. ㅎㅎㅎ

 

 

아쉽지만 일단 전주 구경은 요기까지....

도나지님과의 데이트, 그리고 나머지 여정까지 묶어서.... 일주일 넘께 질질 끌었던 남도여행기를 내일은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마음이 바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