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옆에 샤워꼭지만 달아놓으면 다냐. 200페소짜리 방이니 더운물은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 변기와 샤워꼭지는 좀 분리해주면 안되겠니? 이 많은 객실 손님들의 다급한 요구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다행히 인적이 드문 새벽이라 느긋하게 내 볼일 다 보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문이 하나 눈에 띈다.
이건 또 무슨 문이여? 열고 나가보니 에구구... 이건 공동베란다로 통하는 문일쎄.
창문 밖에 베란다가 있는 게 뭐 이상할 건 없지만, 문제는 각 방의 베란다가 모두 통해 있고 더구나 이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당연히 사용되어야 하는 문처럼 버젓이 열려 있으니.... 바람이나 쐬자고 무심히 이 문을 통해 베란다로 나간 사람은 원치 않아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남의 방안을 볼 수밖에 없단 말이다.
그렇다고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창문은 물론 커튼까지 여미고 잘 수가 있나?
원치않게 민망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 나... 깜딱 놀라 얼른 내 방으로 돌아오는데 오르르 소름이 돋는다. 혹시 어젯밤에 내 방도 누가? (ㅎㅎ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어째 설계를 그렇게 했을꼬.
론리플래닛에도 나오는 Ridge Brook Hotel(내가 묵은 곳은 별관)에 묵으시는 분들.. 밤에 창문 꼭 닫고 커튼 꼭꼭 여미고 주무시길.
저 난간으로 둘러쳐진... 공동베란다 구조를 아시겄는가?
내가 잔 방은 맨 꼭대기층... 보다시피 창문들이 모두 열려 있다.
그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다.
본톡은 작은 동네라니 일찌거니 움직여서 동네 한바퀴 둘러보고 서둘러 사가다로 가자 하고 짐을 꾸려둔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어젯밤 이 호텔을 소개해준 청년이 당근이며 양파 자루를 들고 식당의 주방으로 들어간다. 바나우에에서 미용사 일을 하다가 지금은 웨딩플래너(?)로 일하고 있다더니 이 호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건가? 예쁜 얼굴에 예쁜 두건, 귀걸이 목걸이에 튀는 패션, 여성적인 몸놀림.... 한가했으면 나의 인터뷰 공세를 피하기 어려웠을 텐데....(만옥씨 오지랖 참 넓군요. ㅎㅎ)
허접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맛있었던 아침식사. 엊저녁을 긂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특히 흑미밥은 이 지역 특산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쫄깃쫄깃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다리 아래로는 치코강이 흐른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 본톡성당
동네 개도 미사에 참석 중. ^^
성당 건너편에는 재래시장. 좌판마다 망고가 수북수북 쌓여 있다.
필리핀에는 "망고나무 한 그루면 자식 하나 대학 보낸다"는 말이 있단다.
호두알 만한 자주색 양파, 통마늘이 특이하다.
시장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초등학교.
교사 뒤로 돌아가니 내일 있을 마을축제에 참가할 초등학생들의 고적대 퍼레이드 연습이 한창이다.
초등학교와 한울타리를 쓰고 있는 본톡박물관.
마운틴 프로빈스 지역에 살고 있는(살았던) 부족들의 역사와 유물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개념없이 찍다가 걸렸지만 카메라를 뺏기진 않았다.
여기저기 예쁜 꽃
자세히 들여다 보니 여기도 참 정드는 마을이네.
어느새 사가다 가는 첫차(11시) 떠날 시간이 임박. 얼른 트리시클 타고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 한 뒤 사가다 가는 지프니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본톡에서 사가다 가는 교통편은 지프니밖에 없으며 하루에 단 한번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사가다까지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사가다 구경하고 당일에 다시 본톡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 왜냐... 사가다에서 본톡으로 돌아오는 지프니는 오후 한 시 단 한번 뿐이기 때문에. 그것도 모르고 내일 아침에 있을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저녁에 사가다에서 돌아올까 싶어 지프니정류장 근처의 호텔을 예약해둘 뻔했다.)
사람이 다 차기를 기다리다가 지프니는 예정보다 30분 늦게 출발했다. 길은 여전히 심각한 S라인에 울퉁불퉁 비포장이지만 어제 지나온 길보다는 상태가 양호하고.... 무엇보다도 시야가 확보된 대낮이란 사실 때문에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게다가 옆자리에 앉은 본톡 병원 간호사 아줌마와 한시간 내내 유익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떻게 사가다까지 왔는지.....
'여행일기 > 아시아(중국 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buhay! 6 : 길 위의 인연 (0) | 2007.04.21 |
---|---|
Mabuhay! 5-1 : 영혼이 깃든 마을, 사가다 (0) | 2007.04.20 |
Mabuhay! 4-1 : 본톡행 공포특급 (0) | 2007.04.19 |
Mabuhay! 4 : 바나우에 가는 길 (0) | 2007.04.19 |
Mabuhay! 3-1 : 바기오에서 제일 편한 민박집 소개 (0) | 2007.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