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동문회(특히 총동문회)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활성화되어 있는 반면 여자들의 경우는 (가까운 동창끼리가 아니면) 꽤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의 경우 오랫동안 한국에 없어 연락이 닿지 않기도 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도 아이덴티티가 매우 부족한 학생이었을뿐더러 내 가까이엔 민주동문회라는 부분적인 네트워크가 있어 총동문회를 갈음해왔으니 총동문회란 내게 있으나마나 한 존재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총동창회가 주최하는 '17회 동문들의 졸업30주년기념 홈커밍데이'에 참가하게 된 것은 확실히 내가 늙어간다는 증거렷다. 단촐한 학생수와 독특한 학사규정(2년의 기기숙사 생활과 3개월의 실습주택 생활) 덕분에 우리의 대학시절 교우관계는 여고시절의 그것처럼 허물없고 천진난만할 수 있었다. 한솥밥 먹고 자란 자매들처럼 특별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동문들에게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트레이에 밥 타먹고 기숙사에서 1박을 하는, 지극히 S여대다운 프로그램은 확실히 특별한 이벤트.... 총동문회로서는 학교발전에 도움이 되는 효자상품 개발에 성공한 셈이다. 지난날을 돌아볼 만한 시점에 와있는 고객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내년엔 18회 졸업생들이 졸업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를 한다) 그시절의 추억에다 애교심까지 끼워파는 鄕愁마케팅? ^^
사실 머쓱한 기분이 없지 않았다. 학창생활도 끝까지 같이 안 하고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던, 그래서 졸업앨범에 얼굴도 못 내민 짜슥이 31년 만에 홍길동처럼 나타나려니....허나 이 소식을 알려준 친구로부터 '캐나다 사는 아무개, 부산 사는 아무개도 온단 말야' 하는 얘길 듣는 순간 '앗싸! 기타랑 300곡집 포크송 챙겨가야겠구나' 하며 펄쩍 뛰었다. 허 아무개, 신 아무개가 온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학교를 떠나며 독하게 끊어버린 인연을 되찾기 위해 집요하게 나를 '추적'했던 K.
'신기명기 내 눈썰미' 제3화에 등장하는 친구다. http://blog.daum.net/corrymagic/1117360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미모상의 벽이 존재한다.
허나 그 벽도 우리의 우정을 절대 갈라낼 수 없다. ^^
수업 빼먹고 뒹굴던 이 잔디밭은 이제 딸 같은 후배들 차지가 됐다.
마침 축제기간이라 본관 앞 운동장에 장터가 열렸네... 야들아, 우리도 좀 낑가주면 안 되겠니?
동문이 운영한다는 가은까페(옛날 식품가공학과 실험실 자리)에 행사장을 차렸는데
너무 비좁다. 이렇게 많이 올 줄 예상을 못했다지만, 너무나 '그시절의 서울여대'다워서 잠시 당황했다.
행사 첫머리에 예배도 보고 설립자 고황경 학장 추모영상도 돌리고 이어지는 리크레이션 순서....
허걱! 그옛날 '경건회' 시절로 돌아간 줄 알았다. ㅡ.ㅡ
고황경 학장이 키워내고자 했던 여성지도자상은 이 격변하는 세월 속에서도 상록수처럼 불변하는가?
오늘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여성지도자의 덕목을 새로이 개발할 필요는 없는 걸까?
학교 다닐 때 느꼈던 답답함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시절의 그녀처럼 여전히 귀엽고 발랄하게 잘노는 그녀.... 내 2학년 때 룸메이트였다.
어떻게 저 넘치는 끼를 누르고 조신한 현모양처로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32년 전 실습주택에서 같은집에 살았던 친구들...
겨우 9명밖에 안 되는 저 가운데 벌써 한 명은 유명을 달리했고 두 명은 외국에 나가 산다.
그래도 이날 모임에는 5명이나 참가했으니 출석률이 꽤 좋은 편이네.
우리끼리 마주보고 얘기할 땐 아직도 이팔청춘인 줄 알았는데.... 찍어놓고 보니 우리 중년 맞군그래. ^^
엄마 동창들에게 인사드리려고 일부러 행사장을 찾아온 친구 딸네미... 모녀 동문도 썩 괜찮아 보인다.
생활관으로 들어가는 길의 정다운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생활관에서 묵으며 그옛날의 이층침대와 공동욕실을 다시 써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우리의 숙소는 그 옆에 새로 지어진 학술회의용 호텔(!)이란다. 이미 우리는 기숙사에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된 거지.
하긴....생활관 건물이야 그대로 있지만 내부는 분명히 리모델링했을 거다.
어디가 됐든 우리의 비공식 야간 프로그램은 쭈욱 이어진다. 센스있는 친구가 챙겨온 그 시절의 사진을 돌려보며 밤을 잊은 그대들의 수다는 창밖이 하얗게 밝아올 때까지....
다음날 볼일이 바빠 일찍 나온 관계로 30년만에 친구들 만난 얘기는 여기서 끝.
----------------------------------------------------------------------------------------
이왕 Now & Then을 상영하는 김에
최근 줄줄이 결혼한 친정조카들의 Now & Then2.... 보너스 트랙으로...
이 사진도 30년 묵었다. 내가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을 무렵 이녀석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큰오빠네 가족.
윗 사진 뒷줄에 있던 녀석들이 지금은 모두 두 아이의 엄마들이 되어 날 할머니로 만들었다. ㅜ.ㅜ
둘째오빠네 큰딸네미. 토끼같던 조 녀석이 작년말에 짝을 찾았다.
저 때가 공장 다니다 다리 부러뜨리고 얼마나 솔직하게 좋아하는지 내가 다 민망.^^
최열정씨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온 직후일 것이다.
조카녀석이 입고 있는 하늘색 포플린 원피스는
공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미싱 실력을 발휘하여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거다. ㅎㅎ
요건 위의 사진 앞 왼쪽에 내복바람으로 앉은 녀석 요건 위의 사진 앞 오른쪽에 털바지 입은 녀석
셋째오빠네 둘째딸네미다. 셋째오빠네 둘째딸네미의 언니다.
올해 4월말에 결혼했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나를 유난히 따라
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녀석..
지금까지도 나와는 친구처럼 잘 통하는 이 녀석,
오월초에 드디어 엄마가 되었다.
뒤에 선 두 조카들도 곧 앞다퉈 드레스를 입겠지.
'그 시절에(~2011) > 陽光燦爛的日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수칠 때 떠나라 (0) | 2007.06.19 |
---|---|
느무느무느무 재밌는 스.무.따. (0) | 2007.06.06 |
열흘 정도 집 비웁니다 (0) | 2007.04.03 |
이런 날 저런 날 (0) | 2007.03.29 |
여행에 미쳤나봐 (0) | 2007.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