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직서를 낸 지 거반 한 달이 되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회장님은 무시로 일관....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눈도 안 맞춘 채 바로 해외출장길에 나서더시니 돌아오는 즉시 회장님 내외, 우리 내외, 우리 후임으로 중국에 나가신 부회장님 내외까지 초대하는 가족동반 제주도 골프여행을 예약하셨단다.
고난의 세월을 함께 겪어온 삼총사의 도원결의를 상기시킴으로써 마음을 돌려보려는 취지시겠지.
회장님의 단합대회 계획과는 상관없이 이번에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남편, 나름대로 칼을 갈며 준비한다. 잘 드는지도 확실찮은 저 칼날...칼집에 넣었다 뺐다 하며 마누라 앞에서 검무를 춘다.
혹 칼이라고 하여 오해는 마시길. 공격의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니까.
새로운 길을 떠나려는데 발목을 잡는 여러 생각들을 서억 서억 베어내려는 것이다.
남편이 이 회사에 입사한 게 1993년이니 올해로 15년째다.
보일러 기사로 노동운동에 입문한 것이 1978년이니 노동운동도 딱 15년 했다.
15년에 한번씩 인생을 뒤집은 셈인데, 이제 자신의 꿈을 위하여 한번 더 마지막 뒤집기를 해보겠단다.
노동운동을 할 때나 회사일을 할 때나 남편에겐 조직을 위한 충성....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물론 자기 뜻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 충성이었고 그 결과도 어느정도 거두었으니 여한은 없지만
이제 자신에게 충성하겠다고 한다.
밟고 갈 일만 남은 레드카핏을 앞에 두고 그만 내려오겠다니.... 풍운아 최열정씨, 잘났어 정말!
그가 꿈꾸는 일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본인 역시 방향만 있지 구체적인 침로는 갖고 있지 못하다.
계획이야 사업이지만 그게 운동이 될지 심지어 취미생활이 될지... ^^
구체적인 방법이 있어서도 아니고 먹고 살만해서도 아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찾아야 하고, 먹고 사는 문제는 '연금생활자'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돈'이 중요한 세상에서 '돈' 문제 빼고 '사는일'을 논하는 건 세상물정 모르는 애들이나 하는 짓일 테지.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내외는 진짜 철부지들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건 있다.
나물먹고 물마셔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이, 돈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발버둥치는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삶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야 남편이 돈 많이 벌어다주면 세계를 마음껏 누비고 다니며.. 뭐 나쁠 꺼야 없지만
안 벌어다줘도 그만이다. 안 다니면 그만이지.
평양감사도 저 싫다면 그만인데 내가 뭐라겠는가. 사랑하는(닭살!) 사람이 괴로워하면 나도 괴롭다.
설사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가고 싶은 길을 가봤으니 여한이야 없겠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행복한 고집쟁이 남편은
행복을 돈 쓰는 데서 찾지 않는 마누라를 얻은 걸 일생의 행운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
결국..
제주도 회동에서 남편은 뜻을 이룬 것 같다. 확정적인 스케줄은 아직도 잡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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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갔던 얘기는 다음에 쓸게요. 색다른 경험이긴 했지만
생각해보고... 쓸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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