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바람을 뚫고 무사히 한국에 안착...
한국에 오면 늘 묵는 산본 친척집에 여행가방을 내려놓고
첫눈이 씻어준 상큼한 한국의 공기를 맛보자고 거리로 나섰는데...
산본역 앞 건널목에서 아주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기억해낸 이름 '인샬라'!
칼럼을 통해 익힌 얼굴이다. 나와 동갑이라고 특별히 기억 속에 꼽아두고 있었던...
본능적으로 기자정신을 발휘하여(기자도 아니면서) 확인차 말을 붙였다.
"저, 범계 가는 버스 저쪽에서 타는 것 맞나요?"
"네, 맞는데... 범계 가시려면 버스 보다도 전철이 더 편하실 텐데요..."
(분명히 인샬라님 맞군.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역시 자상한 대답이 남다르다)
"인샬라님이시죠?..."라고 확인해야 하는데 웬지 멋적어 머뭇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 친절한 아주머니는 길을 건너갔다.
부랴부랴 인샬라님이 '보랏빛 향기'를 출간했을 때 오마이뉴스 기자가 '산본 자택으로 가서 취재를 했다'는 글을 뒤져 확인을 하고 인샬라님께 메일을 띄웠다.... 내 눈썰미에 놀란 인샬라님의 확인메일이 날아왔음은 물론이고... 일간 번개 한번 때리자는 약속이 오고가고... 참으로 넓고도 좁은 세상이다.
아래 글은 나의 놀라운 눈썰미와 관련하여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어떤가.. 이만하면 신기명기에 가깝지 않은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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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볼일이 있어 잠시 시내에 나갔다.
전철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검은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서서 신문을 읽고 있다. 얼핏 쳐다보니...아, 옷매무새 못잖은 꽃미남이다.
헬렐레~ 해서 모올래 훔쳐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 다행히 그 청년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기에 살곰살곰 한참을 훔쳐봤다...
음, 드뎌 생각나쓰~. 우리 회사 업무부 후샤오지에의 남편이 틀림없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난 적 있냐구? 천만에...
2년반쯤 전 입사한 그 아가씨(아니 아줌마), 사람들과 좀 친해질 만하니 결혼식 사진 가져와서 보여줄 때, 그때 사진만 얼핏 봤을 뿐이다.
회사로 돌아와서 물어보았다.
"네 시엔성 혹시 오늘아침에 검은 양복 입고 안 나갔냐... " 놀라더군.
"네 시엔성 시계가 혹시 주먹댕이 만한고 숫자판 파란 거 아니냐" 또 놀라더군.
"이따 전화해 물어봐라, 혹시 오늘 전철타고 쉬자휘에서 메이롱까지 안 갔는가..."
하하...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내 눈썰미는 보통이 넘는다.
재작년엔 이런일도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티케팅을 하는데 내 앞에서 티케팅 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서길래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봤다. 어디서 봤을까.. 어떻게 아는 얼굴일까...
머리 속에서 가나다로 소팅해보고 날짜순으로 소팅해봐도..으윽~~
대합실에서 먼 발치에 있는 그 남자를 몰래 째려보다가 드디어 찾아냈다.
15년 전쯤에 거리에서 우연히 동창을 만났다.
학교 때는 꽤 가까웠는데 내가 노동운동 하겠다고 학교를 그만둔 이래 연락이 끊어진 친구다. 반가워서 펄쩍 뛰며 자기 집이 근처라고 잡아끌기에 잠시 그 친구 집에 들러 커피 한잔 마셨다.
신혼이었던 그 친구가 신나서 보여주었던 결혼사진 속의 신랑... 그게 바로 그 남자였더란 말이다. 그 친구랑은 그 후 전화통화 두어번 했나... 나의 무심의 소치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또 이렇게 찾아졌단 거지.
하하. 그 아자씨... 미모의 여성(ㅋㅋ사실은 그 마눌이 눈에 띄는 미인이다)이 다가와 아는척을 하니 당황한 데다가 자기를 알아본 경위를 듣고는 매우 놀라더군. 아무튼 나의 놀라운 눈썰미로 놓칠 뻔했던 인연의 끈을 다시 그러잡을 수 있었던 것.
난 정치를 했어야 했나? ㅎㅎ
별로 노력도 안 하는데 사람 이름이고 얼굴이고 저절로 입력이 되고 한번 본 건 거의 잘 안 잊어먹는다. 오감이 너무 발달해도 그리 좋은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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