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0분씩 기상이 빨라진다. 오늘은 다섯 시 삼십분에 모닝콜이다.
여섯시에 식사하고 여섯시 반에 출발이다. 정시에 식당으로 나온 것은 늙은 三好學生(중국말로 모범생) 두 팀뿐(우리와 함께 방을 쓰는 대만 아저씨).
구채구에서 황롱까지는 사진에서나 보았던 고산지대. 100킬로미터 거리라는데 세 시간 이상 걸린단다. 버스는 내가 늘 궁금해하던 쏭판(松番)현을 가로지른다.
야트막한 초지를 앞마당 삼아 우람한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장족마을에는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매일 밤 야크버터로 불을 밝히고 심심산중에서 캐낸 약초로 불로장생의 秘藥을 빚고 있지는 않을까. 오색 헝겊을 매단 장대와 흰 회를 덮어쓴 조잡한 부처상을 모신 제단 아래에, 혹은 그들의 몸을 넉넉하게 둘러 감싼 진한 고동색, 검은색 모직천 안에 문명인들이 모르는 그 무언가가 분명히 숨겨져 있을 꺼라는 동화적인 상상에 잠시 빠져본다.
야크(중국말로 털소[毛牛])와 양, 조랑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한없이 넓은 황토+초원을 지나치며 두 시간쯤 달리다 보니 읍내가 나온다. 역시 가난이 한눈에 보이는 초라한 읍내다. 이 근처 어디에 관광지로 개발된 松番古城이 있을 텐데..... 老百姓들의 삶과 상관없는 치장을 한 그 동네에서도 역시 장족들이 노래와 풍습을 팔고 있겠지.
이런 훌륭한 관광상품에 대해 내가 이렇게 삐딱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장족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장사하는 장족과 장사하지 않는 장족이 있는데 장사하는 장족은 얄밉고 장사하지 않는 장족은 한심하다는 사실, 그래서 모두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시각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엇나간 것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이벤트나 캐치프레이즈도 장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주지 않는 광고성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합리화하는 데는 부족할 뿐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산들을 세 개쯤 넘어 드디어 황룡에 도착. 해가 늦게 뜨는 서쪽이라 아직도 아침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고산지대라 산소가 부족할지 모른다는 가이드의 권유로 우리 차에 탔던 사람들 모두 산소베개 하나씩을 빌렸는데(보증금 50원에 산소값 50원--비싸다) 막상 황룡에 도착해보니 삼림이 울창하여 산소가 부족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말고는 베개 들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없어 졸지에 우린 베개부대의 칭호를 얻었다.
역시 여기도 가마가 기다린다. 땀 줄줄 흘리는 사람들의 어깨에 얹혀 간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정서로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안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원망스레 쳐다보는 가마꾼들의 시선도 따갑기 그지없다. 누구 말에 따르면 편도비용 220원 중 가마꾼 1인당 돌아가는 돈은 15원 뿐이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일은 국가에서 어느 정도 단속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노약자들에게 황룡에 올라갈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황룡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라 우왕이 무주(현재 무현)를 다스릴 때 황룡이 강을 건너는 것을 방해하여 그를 위해 제사 지냈던 절 이름이 황룡사였는데 그 절 이름을 땄다는 설이다. 우왕이 치수에 성공하자 황룡은 용궁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인간요람" 황룡사풍경구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설은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황색 탄산칼슘의 퇴적한 모습이 층층이 쌓여,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황금색 거대한 용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관광코스는 6킬로미터, 서너 시간이면 걸어서 다 볼 수 있다.
구채구를 보고 나니 황룡은 배부르게 먹고 나서 숭늉 마시는 기분이다. 구채구 해자의 물빛은 하나의 해자에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어 여러 재료를 골고루 쓴 main dish 같지만 황룡 盆鏡의 물빛은 에메랄드빛 아니면 진초록색..... 약간 단조롭지만 투명하고 산뜻한 맛이 식후 desert로 제격이다. 여기에 설산과 짙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 드넓은 산자락과 독특한 도교사원이 어우러져 완벽한 정상의 풍경을 연출해낸다.
내려오는 하산길도 숲이 깊어 등산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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