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없는 점심식사 후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시각이 오후 세 시. 나흘째의 여정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등만 기대면
곯아떨어진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이건 또 뭐야, 어마어마한 협곡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틀 동안 해자와 접시물에 홀린 뒤라서 그런지 3000미터급 절벽 아래로 도도하게 구비치는 시퍼런 강물을 바라보며 아찔한 고개를
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끄떡도 안 한다. 가이드 소개도 없다.
도대체 이 댐은 어떻게 된 댐인지 세 시간을 휘감고 달려도 끝나지 않는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순간이다. 후배는
후버댐도 이만 못할 거라고 탄성을 연발하며 연신 협곡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기사녀석이 얼마나 밟아대는지 결국 한 장도 찍지 못하고
만다.
날은 저물고 산은 깊고 길은 험하고.... 끝이 없는 어둠 속을 두 줄기 헤드라이트에 의지하여 달리고 달려도 우리가 묵을 곳은 언제
나타날지 기약이 없다. 깨어나지 못할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무서워진다. 어쩌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고...
8시나 되어서야 아바(阿唄)현 회족마을에 있는 *** 호텔에 도착했다. 관광버스가 넓은
호텔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복잡한 관광버스 틈에 창(羌)족 복장의 처녀들이 시답잖은 포크댄스를 한다.
저것도 무슨 손님맞이 활동이라고... 이 호텔은 음식부터 시작하여 모든 서비스가 다 엉터리다. 메뉴는 그럴 듯한데 정성을 들인 것은 한 가지도
없다.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를 친다.
콩나물 무침이라는 같은 이름의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의 입맛을 돋우고 영양을 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콩나물 무침은 양반집 손님상에
올려지는 정갈한 나물이 되며, 꼬리 껍질 언제 다듬나(나랑 똑같은 생각) 그저 물에 슬슬 흔들어 비린내가 나든 말든 슬쩍 데쳐가지고 꼭 짜지도
않고 물이 질질 흐르는 것을 대강 소금 치고 고춧가루에 버무려 올리는 콩나물 무침은 기사식당 나물이 되는 것이다. 메뉴판에 콩나물 무침이 적혀
있을 때 정갈하고 고소한 콩나물을 상상하며 주문했다가 개밥에나 어울릴 듯한 막나물을 받았을 때의 그 사기당한 기분이란!
같은 이름을 가졌어도 가치를 다르게 해주는 조미료는 단 한가지. 바로 정성이라는 조미료다.
정성이라는 조미료는 단 한 가지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급한 성정을
다스리는 수양(중국사람 같은 느긋함도 비슷한 요소다)이 필요하고, 그 일의 과정을 즐기는 예술적(?) 심성이 필요하다(이 과정에는 이 일을 하는
목적을 한번쯤 돌이켜보는 일도 포함이 된다).
나는 이런 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반찬을 몇십 가지 만들어내려는 욕심에 젓가락도 대기 싫은 음식만 잔뜩 만들어내면서 반찬 많이
했는데 잘 안 먹는다고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음식도 인간관계도 일도... 앞으로는 무엇 한 가지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하리라. 이것이
진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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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뚱맞은 쓰촨 훠구어. 이
여정엔 마땅한 사진이 없고... 콩나물 사진조차 없어 이걸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