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사천성 유람 8 -- 민생을 위한 발자취, 도강언

張萬玉 2005. 1. 15. 08:58
오늘은 약간의 늦잠이 허용된 날. 7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8시에 도강언을 향해 출발한다.

초보자용 래프팅 코스가 계속 이어진다. 가난한 아패현 농촌을 지나 패키지 지정코스인 약재상점과 수정 파는 곳에 들르자, 휙 둘러만 보고 가게 바깥 좌판에서 과일만 잔뜩 사는 깍쟁이 상해 사람들....

 

버스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관개시설 뚜장옌(都江堰)에 도착한다.

도강언은 예상보다 볼 거리가 많다.

자갈 쌓아놓은 것이 뭐 그리 볼 것 있겠나 했는데 막상 와보니 분위기가 자못 유장하다. 도교의 본산인 청양산(사원이 70개나 있단다)을 배후에 두고 세월의 이끼가 두텁게 내려앉은 고풍한 사당(二王廟)까지 갖추고 있어 그런 것 같다. 족히 3킬로미터쯤 되어 보이는 강폭에 걸친 흔들다리(索橋)와 아마도 도강언을 명소화할 목적으로 이후에 조성했을 듯한 전망 좋은 공원도 도강언을 널리 알리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도강언을 조망하는 누각에 전시된 도강언 공정도를 보다가 다시 한번 사천성의, 중국의 거대함을 느낀다.

그림의 배경에 깎아지른 절벽자락에 의지하여 역삼각형 모양으로 괸 나무 위에 놓여진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강을 낀 산간지역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도로, 바로 우리가 2박3일을 달리고 또 달렸던 왕복 2차선도로의 원형이다. 안내문과 표지판에 자주 등장하던 나무변에  자가 무슨 뜻인고 했더니 바로 그 다리의 모양을 나타내는 상형문자였다.

이 다리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가이드가 덧붙인다. 홍군이 대장정시 길이 없는 이 지역을 지날 때, 선발대가 앞에서 총알받이를 하고 뒤에서는 필사적으로 이 그림에 나오는 다리를 이어가며 전진을 계속했다고.... 옆에 섰던 젊은 부부가 열을 내며 끼어든다. 길 떠날 대 30만이었던 군사 중 2만이 살아남았다고....

 

누각에는 도강언 건설의 역사와 공정, 공법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그 분야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지역의 물산(강가의 자갈과 숲속의 대나무)을 이용하여 물막이를 만들어 쌓고, 화약도 없던 시절에 바윗돌을 구워 터뜨리는 공법으로 80공척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과연 窮卽通이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가능하게 한 지혜도 지혜려니와, 한발과 홍수에 시달리는 민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신명을 다 바쳤을 어진 관리들의 노고에 잠시나마 나의 마음을 바쳐본다.

 

도강원 공원에서 이름 모를 쓰디쓴 차를 마시며(뒷 입맛은 신기하게도 달콤하다) 피로를 푼 후 다시 버스에 오른다. 우리 여정의 마지막 코스 성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여섯 시. 시내 중심가의 삼성급 호텔로 우리가 묵었던 호텔 중 제일 고급스럽다.

 

1인당 30원씩 더 내어 극장식 훠구어 전문식당에서 사천의 명물 훠구어를 먹기로 했는데 여행 내내 얌체짓을 도맡아하여 미운털이 박힌 애인팀이 또 튄다. 자기네는 해산물 안 먹고 매운 것도 안 먹는다나. 누구는 양 창자를 먹나? 실제로 반대할 사람은 남의 살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나다. 하지만 사천에서 훠구어 식당을 안 간다니 말이 안 되지.... 이 까다로운 커플은 마지막날 성도의 명물 스낵을 먹으러 가자는 열다섯 명의 여론마저도 꺾어버리고 말았으니 정말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가 맞는 모양이다.

 

두 종류의 국물이 펄펄 끓는 동안 무대에서는 소림사무술, 변검+불뿜기, 여군가무 등등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여행기간 중 친해진 사람들은 권커니 잣커니 거나하게 취한다. 정다운 밤이다.

 

(큰 팔동작 하나마다 가면이 바뀌는 신기한 검무.. 변검)  

 

(인민군 여군 복장으로 춤과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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