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한 점 없는 허허벌판에서 이글이글한 태양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황토와 싸우는 농부들, 마을의 가난을 한눈에 읽게 해주는 유리창 다 깨져나간 텅 빈 공장들을 지나며 인간이 한 입에 풀칠하기가 저렇게도 힘들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창 밖을 보다 지루해져서 앞으로 거쳐갈 여정을 위해 준비해온 자료들을 뒤적거리다 깜빡 졸았는데 어느새 창밖은 석양, 저녁도시락 파는 수레가 왔다갔다 분주하다.
기차는 중국의 5악 중 하나인 화산(華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곧 시안이다.
서안역을 빠져 나오니 악명 높은 서안 호객꾼들이 무시무시하게 몰려든다. 내일 저녁에 유원으로 떠날 기차표를 끊으러 간 일행을 기다리느라 역 광장에 서 있어야 하는 우리들은 꼼짝없이 호객꾼들에 둘러싸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서안 기행문들의 충고에 따르면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하는데, 표 사러간 일행이 올 때까지 이동도 못하고 그저 땅이나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자니 이것도 참 못할 짓이다 싶었다.
이 늦은 시간에 일곱 명의 부대가 숙소를 찾아 몰려 다니는 것도 갑갑한 일이라 그냥 이 자들을 따라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안내서에 의하면 서안에는 승리반점 외에는 마음놓고 묵을 곳이 없을 것 같아(비싸서) 결국 호객꾼의 숲을 뚫고 5번 버스에 올라 승리반점을 찾아갔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으로 배낭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승리반점은 장사가 잘 되어서 그런가 다인실을 없앴다. 표준방도 비교적 저렴하기에 들어가려 했더니 가는 날이 장날, 전국 여자축구 감독 회의가 열려 빈방이 없단다.
난감해 하는 우리 앞에 역부터 이곳까지 잠자코 우리를 따라다니던 사람이 나타났다. 그 질긴 프로정신에 감복, 우리는 결국 이 남자가 이끄는 대로 KFC 2층에 있는 허름한 호텔로 가 짐을 풀었다.
벌써 밤 11시. 하지만 서안에서는 다시 보낼 수 없는 밤이기에 피로에 지친 몸을 수습하여 바로 길 건너 동신루(東新路)에 있는 야시장을 찾았다.
세상에, 이 야밤에 펼쳐진 또하나의 세계는 믿을 수 없이 북적대고 있었다.
붉은 갓을 씌운 등불 아래 온갖 먹을거리를 늘어놓은 포장마차들이 끝없이 늘어서 손님들을 부른다. 이곳저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아가씨와 아이들, 꽃 파는 노인들,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해가 뜰 때까지 영업을 한다니 아직은 초저녁인 셈. 하지만 우리는 간단히 훠꾸어만 한 냄비 시켜먹고 시장을 빠져나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을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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