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고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유기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숨진 백마를 묻어주었다는 백마탑에 들렀다가 숙소에서 잠시 휴식,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일행은 두 패로 갈린다. 아들녀석은 식도락패의 두목, 엄마는 (음식)낯가림패의 두목... 이러니 평소에 아들이 그 엄마에게 뭘 얻어먹고 살았겠냐,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즐거움을 저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등등... 갖은 비난과 동정의 말로도 낯가림패를 꼬시지 못한 식도락패는 혀를 끌끌 차며 먹자골목으로 갔고 오이 샤오지에(식당에서 밥도 반찬도 오이로만 주문하는 오이 같이 날씬한 아가씨)와 나는 낯선 곳에서도 먹고 살려고 눈치껏 봐둔 John's cafe로 갔다.
이 조그만 까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뚠황, 투루판, 우루무치, 카슈카르 등 네 군데에 분점을 열고 있는데 샌드위치, 오믈렛, 크림슾 등 간단한 서양식 요깃거리를 판다. 여행관련 서적도 몇 권 진열되어 있고 팩스와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양고기, 당나귀고기의 질탕한 파티에 못 낀다 해도 느릅나무 아래 벌여놓은 노천식당에 이방인의 폼을 한껏 잡고 앉아 거리를 살피는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다.
저녁 여섯 시가 되자 투어버스는 밍사산(鳴沙山)으로 향한다. 돈황시 남쪽으로 이어져 있는 모래산맥 중 위에야췐(月牙泉)을 발아래 두고 있는 지점이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금모래산의 멋드러진 능선! 어찌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있으랴.. 입구에는 백여 마리 가량의 낙타들이 손님 태울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일행 중 두 명은 낙타 등으로 올라갔고 나머지는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었는데도 여전히 불타고 있는 태양을 피해 월아천의 정자로 갔다.
침묵의 모래산과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초생달 모양의 월아천, 그 사이에 지어진 이 정자는 사진 배경으로 그만이다. 지구파수꾼 할머니들과 다시 만나 "Hi"를 주고받고 사진 몇 장 찍고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한다.
이제 저 모래산을 걸어올라야 하는데... 모래는 아직도 불덩이고 아시다시피 모래밭 걷기란 발목에 모래주머니 달고 걷기나 비슷한 정도의 노동이어서, 체중이 좀 나가는 필자는 잠시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앉아만 있으면 정상까지 가뿐하게 끌어올려주는 리프트가 눈앞에서 나를 유혹하는데 조 선생은 지엔페이(減肥) 할 꺼냐 말 꺼냐며 도끼눈을 뜬다.
그래,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앉아서 산에 올라갈 마음을 먹는단 말이냐 싶어 신 벗어 양쪽 손에 들고 헛 둘 헛 둘! 힘차게 두 발로 걷기 시작했는데... 스무 걸음에 한 번씩 쉬기로 하고 떠났지만 두 번을 쉬고 나니 후후 하하 하던 호흡이 후 하 후 하, 다음엔 헉헉 헥헥으로 바뀌면서 열 걸음에 한 번 주저앉기에 이르렀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오르고 젊음의 자존심인양 꼿꼿하던 두 다리도 완전히 꺾어지니 앞서 간 젊은언니들은 엉금엉금 기는 나를 굽어보며 지아요우(加油)!를 외쳐대고 조선생은 뒤에서 연신 내 엉덩이를 밀어올린다.
명사산에 와서 이렇게 스타일 구길 줄이야. 아직도 반이나 남은 정상을 처량하게 올려다보며 다시 내려가 리프트로 올라올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았지만, 갑자기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중요한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순간이라는 영감(?)이 나의 뇌리를 스치는 통에 다시 이를 악물고 기었다.
아, 정상에 도착한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다 죽어가는 소리로 널부러져 있는 이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인생의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꺼내 보겠다고... 능선 아래로 펼쳐진 명사산의 모습이란! 마치 외계에 온 듯한 적막과 신비에 싸여 우리는 한동안 얼이 빠진 것처럼 발 아래 펼쳐진 사막 구릉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유명한 일몰은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지만 말할 수 없는 충만감에 사로잡혀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10여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몰아닥치며 산꼭대기부터 모래가 뒤집히기 시작한다.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이 폭풍에 쫓기는 것처럼 산 아래로 내려 뛴다. 엉겁결에 우리도 마구 내달았다(스키 타는 폼으로 내려오면 매우 빠르고 안전함). 파도에 휩쓸려도 죽을 것 같은데 저 모래더미에 휩쓸리면 생매장되는 건 시간문제다 생각하니 정말 아찔했다. 산은 순식간에 비어버렸고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더니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빛이 빛나기 시작한다. 거짓말같이 고요하게 사막의 밤이 찾아든 것이다.
호주머니는 물론 입 안과 머리칼 속까지 들어찬 모래를 간신히 씻어내고 잠든 그날 밤 꿈속에서 썰매에 앉아 두 팔을 새처럼 펴고 산 아래를 향해 힘차게 미끄러지던 "날으는 돈까스"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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