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굴 하나 보기 위해 몇 만리를 달려온다는 모까오쿠 앞에 도착하니 멀찌감치 산 허리에 송송 뚫려 있는 무수한 석굴 구멍부터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치 3km에 걸쳐 있는이 석굴들은 기원 366년 이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조성된 것이 천 개는 넘었을 텐데 현재에는 492개만이 남아 있다.
(사진에 나온 굴들의 외벽은 물론 관광객을 위해 가공한 것들입니다)
막고굴 관람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입장료에 포함된 공개굴(13개)과 별도로 추가요금(60원, 200원)을 내고 보는 특별굴이 있다.
가이드를 따라다니지 않으면 문도 열어주지 않아 보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보지 못하고 대강 훑고 다녀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굴의 훼손을 최대한 막고자 하는 조치로 이해하였다. 또한 가이드의 설명이 없으면 관람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공개굴은 시대별로 굴을 하나씩 골라 보여주는데, 그러한 배려로 인해 북위부터 송대를 거치는 각 시대에 따라 신미관(神美觀)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불상, 민족 전통신화, 불경이야기. 장식 도안, 공양인 화상, 불교사적화 등으로 이루어진 벽화들을 감상할 때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각 시대의 사상들의 영향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관람이 더욱 흥미로워진다.
예를 들어 수당시대에 그려진 벽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정토사상의 영향으로 관세음상과 11면 관음상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에 그려진 벽화를 보면 도가사상의 신화가 어우러진 초기 불교의 면모를 나타내는 듯 동왕공, 서왕모가 용차와 봉황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나 사람 얼굴에 뱀 몸을 가진 복희씨와 여와씨의 모습이 보인다.
돈황 벽화의 백미로 꼽히는 비천도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바로 돈황시 입구에서 본 요염한 조각상 천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비천도처럼 독특한 소재 이외에도 막고굴벽화의 색깔이나 문양에는 중국 여느 절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서역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 동서교류의 흔적이리라.
수천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천연원료의 색깔 같이 변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온 인간의 불심, 그리고 각 시대를 지탱했던 정신세계와 파란만장한 인간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이 석굴이야말로 정성 들여 보존하여 후대로 이어주어야 할 진정한 인류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우리 석굴암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진다.
3시간의 짧은 관람이 끝나, 성능 좋은 손전등을 챙겨가지 않은 것과(빌려주는 손전등 빛은 희미하여 잘 안 보임) 궁금했던 등신불을 보지 못한 것(보호 차원에서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함)을 못내 아쉬워하며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12시 다 되어 돈황시로 돌아온 우리는 당일 표밖에 안 팔아 예매해두지 못한 우루무치행 워푸 표걱정에 일찌감치 유원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매시간 있는 유원행 중빠가 하필 3시발이 없어 어쩔 수 없이 2시발을 타기로 하고, 이대로 떠나기는 아쉬운 돈황에서의 마지막 한 건을 위해 점심도 거른 채 박물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런 껀수 위주의 관광은 정말 도움이 안 된다. 바쁜 시간에 쫓기면 제대로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사고 나기도 쉽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사고는 없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을 하나 만들 뻔했다(노 코멘트).
서안에서 돈황으로 오는 30시간짜리 열차여행을 거치고 나니 우루무치까지의 12시간은 그야말로 눈 잠깐 붙였다 뜨면 내리는 가벼운 여정이 되고 만다. 잠시 비가 스쳐갔는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쌍무지개가 뜨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 떼는 우리가 중국 땅 서쪽 끝자락을 달리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베이징 시각으로 밤 9시. 그러나 이제야 겨우 석양이 기울기 시작하여 산자락을 곱게 물들이는데 그 형용할 수 없는 이국적 정취에 젖어 여행자는 금방 울고 싶은 마음이 된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지만 12시에 기차가 하미역에 도착한다는 차내방송 때문에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하미역에서는 하미과를 사야 하기 때문에.
'여행일기 >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크로드 기행 8 - 카얼징, 교하고성, 천불동, 포도구 (0) | 2005.01.22 |
---|---|
실크로드 기행 7 -- 신강대학에 둥지를 틀다 (0) | 2005.01.21 |
실크로드 기행 5 -- 명사산의 밤 (0) | 2005.01.18 |
실크로드 기행 4 -- 사막을 가로질러 뚠황으로 (0) | 2005.01.18 |
실크로드 기행 3 -- 무고한 중생들을 살린 병마용 (0) | 2005.01.18 |